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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사람 박코리 Feb 08. 2018

'마음'은 '손'을 타고-

한겨울, 영하 이십 도 씨의 몬트리올과 퀘벡시티

2018년 첫 달, 첫 주에 친구가 토론토에 왔다. 쿠바에 가기 전 일주일 동안 같이 지내기로 했다. 새해 첫날 이사를 하고, 둘째 날 미국에서 부친 짐이 들어오고 나니 셋째 날엔 서울서 친구가 왔다. 고모 김치랑 엄마 반찬을 캐리어 하나 가득 채워서 왔다. 친구가 와서 반가워 그랬는지, 고모 김치 덕분인지 무섭게 추운 날씨에도 일주일 내내 잘 놀았다.


그림을 그리는 두 손이 나란히-

친구는 얼마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카페에 들어가서 잠깐씩 몸을 녹일 때면 작은 노트를 꺼내 뭔가를 그린다. 영하 23도의 날씨를 못 이겨 들어간 토론토 다운타운의 Dineen Cafe에서도 그랬다. 친구의 그림이 완성될 즈음 옆 자리에 앉은 여성 분이 노트를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손이 검은색 볼펜으로, 같은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한참을 흘깃거리다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의 그림이 근사하다고, 그리고 궁금하다는 말을 한 거 같다. 제법 두툼한 노트를 한 장씩 넘겨가며 그녀의 그림들을 기쁘게 읽어 내려갔다. 그녀는 나무, 그중에서도 나뭇잎과 가지를 좋아하고 사람의 몸을 선으로 남기는 걸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손은 사진을 찍고 문장을 써내려 간다면, 그녀의 손은 당신이 보고 겪은 일들을 선으로 그고 있었다.



몬트리올, 퀘벡시티에 다녀왔다,

몬트리올 근교에서 오래 살았다는 그녀와 그녀의 애인에게 친구와 함께 주말에 몬트리올과 퀘벡시티에 간다고 말했다. 노트 한 가득 단골 맛집이며 카페, 꼭 가봐야 하는 거리들을 한 페이지 가득 적어줬다. 추워도 너무 추워서 별 기대가 없던 겨울 여행은 그녀의 메모 덕분에 한결 수월해졌다.


Soupe Soup@Montreal

수프와 샐러드를 파는 곳이라며, 꼭 들리라고 해서 갔던 곳, Soupe Soup- 몇 군데가 있는데 우리는 몬트리올 미술관 바로 건너편에 있는 곳으로 갔다. 따뜻한 수프 한 입을 먹고 나니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피자만 화덕에 굽는 줄 알았는데 베이글도 화덕에 구울 수 있는 거였다. Bagel St-Viateur@Montreal

몬트리올 스타일의 베이글이 따로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뉴욕 베이글보다 얇은데 쫄깃함은 일품이라는 그녀의 추천에 아침을 먹으러 일부러 찾아갔다. 쫄깃한데 질기지가 않아서 먹기가 편하고 소화도 잘 됐다. 한 봉지 사 온다는 걸 깜빡하고 그냥 왔는데 자꾸만 생각난다.



그들이 겨울을 즐기는 방법

영어보다 불어가 편한 그녀와 그녀의 애인이 구글 번역기를 써가면서 여행 계획을 짜준 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새록새록 고맙다. 겨울의 회색 도시, 토론토에서의 매일은 팍팍하지만, 우연히 만나는 친절한 마음들 덕분에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날씨가 워낙 매서워서인지 길에서 마주치는 토론토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낯선 이를 배려해준다. 다운타운에서 남편을 기다리느라 달달 떨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안에 들어가 있으라며 건물 유리문을 열어준 적도 있다.


영하 이십 도의 날씨에도 그녀 덕분에 몬트리올에서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수프 집 건너편에 있는 미술관에 가고, 밤에는 맥길 대학 근처 라이브 뮤직 클럽에 갔다. 전화도 안 되고 인터넷 페이지도 먹통이길래 10시부터 공연 시작이라는데 멋모르고 두 시간 전에 갔다.

L'Escogriffe Bar Spectacle@Quebec City

밴드들이 리허설을 하길래 둘이서 흥에 겨워 들썩거리고 있었더니 텅 비었던 공연장이 금세 가득 찼다.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를 돌돌 두르고 들어온 학생들이 신나서 점프를 팡팡 뛰었다. 그러다 열이 올랐는지 한 꺼풀씩 웃옷을 벗어던졌다. 흰 반팔티를 입고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어설프게 트위스트를 추는데 귀여웠다. 가운데 껴서 팡팡팡 점프도 하고 (남편이 많이 창피해하는) 태권브이 춤까지 실컷 추다 왔다. 그래, 겨울의 캐나다는 고달프지만, 그 와중에도 여기 사람들은 그 겨울을 나는 법을 안다. 아직 멀었지만, 겨울을 즐길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필요하다.



눈에 파묻힌 퀘벡시티에서 가장 좋았던 건, 
'동네 커피집, Cantook'

퀘벡시티는 말로 들었던 것처럼 작은 도시 전체가 동화 같은 곳이었다. 드라마 '도깨비'의 남주인공 김신(공유)이 주인이라던 페어몬트 르 샤또 프롱트낙 호텔(Fairmont Le Château Frontenac), 눈에 뒤덮여 온통 하얗던 요새(Citadelle)의 성벽,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던 프티 샹플랭 거리(Rue du Petit-Champain), 노트르담 성당(Basilica of Notre-dame the Quebec)까지 유서 깊고 근사한 곳들이 넘쳐났다. 손이 얼어밖에선 카메라를 꺼내 보지도 못 했지만, 눈으로 마음으로 가득 담아왔다. 날씨가 선선하고 단풍이 멋지다는 가을에 남편과 다시 한번 가야지!


퀘벡시티엔 멋진 곳들이 많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작은 식료품점, 'Epicerie J.A Moisan'과 그 옆 3분 거리의 동네 커피집 'Cantook' 두 곳이었다. 이 두 곳 모두 그녀가 강력 추천해서 간 곳들이라 마지막 날 아침에 떠나기 전 급하게 들렸다. 안 들렸으면 큰일 날 뻔했다. Epicerie J.A.Moisan은 집 근처에 있으면 참새방앗간 삼아 매일 들락날락거리고 싶은 곳이다. 크기는 마트보다 훨씬 작은데 올리브유, 차, 커피 같은 식료품부터 립밤, 화장품 등 다양한 생필품까지 선택지가 많아서 하나 고르는데 오래 걸렸다. 마음 같아선 찬장마다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고 싶었다. 여기서 몬트리올 베이글, 잼, 치즈가 같이 나오는 베이글 세트와 과일 화채로 든든히 아침을 챙겨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다음 번엔 가장 먼저 찾아갈 곳, Cantook@Quebec City

우리가 들어서자 카페 앞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다가 말고 얼른 들어왔다. 오너 바리스타였다. 지난밤에 갔던 프렌치 식당에서 우리 둘을 봤다며, 로컬만 아는 곳을 찾아온 게 신기했단다. 자리에 앉히더니 뭘 마실지 묻지도 않고 케맥스에 커피를 내려준다. 낯선 우리를 알아봐 준 것부터 다정한 마음,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로 맛있는 커피까지 모두 고마워서 일어날 생각을 못 하고 앉아있었다.  내내 너무 추워서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 했는데 여기선 카메라로 사진을 잔뜩 찍었다. 그런 나를 흘깃 보던 옆에 있던 직원이 본인도, 본인의 아버지도 부자가 다 라이카 유저라며 말을 걸었다. 사진 이야기를 하느라 나갈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 옆에서 친구가 우버를 불렀다. 그 덕분에 겨우 시간에 맞춰 공항에 갔다. 돌아갈 생각을 못 할 만큼 아쉬운 마음이 컸다.

투명한 바닷 속 물고기가 되어 눈 덮인 바깥 풍경을 보는 것 같았던 아침


내 손으로 하고 싶은 일

토론토에 오고 나서 추운 게 싫고 음식이 안 맞아서 집 안에서 뒹굴뒹굴 거리기만 했다. 겨울 채소만 근근이 먹으면서 여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신기하게도 퀘벡시티에서 근사한 동네 커피집, 'Cantook'을 다녀오고 나서 삶에의 의지가 솟아다. Yelp에서 리뷰가 많은 것도 아니고 Instagram에서도 조용한 편이지만, 동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찾아오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 주인도 손님도 꾸준한 그곳을 보니 행복해졌다.


낯을 가리는 내게 처음은 언제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불편하다. 겨울을 나고, 봄, 여름, 가을 그렇게 4계절을 다시 겪으면서 이 곳을 더 조금씩 알아가야겠다. 친구 말마따나 억지로 여기를 좋아하려고 애쓰지 않으려 한다. 마음은 억지로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깐, 그냥 찬찬히 알아가야겠다.

 

몬트리올, 퀘백시티 덕분에 낯선 캐나다가 조금은 편해졌다. 고마워요, 토론토의 추운 겨울날 처음 만난 우리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친절을 베푼 낯선 당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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