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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느티나무 Nov 19. 2020

<설화> 은혜 갚은 지관(地官)1

<설화의 재탄생> 구미호 이야기1

옛날에 춘양 서벽을 지나던 한 지관이 있었다. 패철(佩鐵)을 가지고 풍수를 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워낙 용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갈 길이 멀어 미리 부싯깃을 넉넉히 만들어야 했다. 그전에는 성냥이 없었으므로 담뱃불(씨 불)을 간직하고 부싯깃을 챙겨야 했다. 부싯깃으로는 수루치(수뢰나물) 만한 게 없었는데 다행히 그해 가을 날이 좋아 한 덩어리 넉넉하게 꽉꽉 뭉쳐서 장만을 했다.

봉화는 해발 고도가 1천 미터를 넘는 곳이 많아 요즘도 만만한 산은 아니다. 그런 산골을 지나가야 했던 터라, 시월 이후로 금세 금세 날이 저물더니 동지가 되어서는 아침부터 숫제 캄캄했다. 

제우, 길을 헤치고 나가다 보면 낭떠러지길인 경우도 많아서 도로 돌아와서 다시 걷다 보면 하루 해가 금방 저물곤 했다. 


'아뿔싸, 야단났구나.'


눈(雪)을 만난 것이다.


'이런,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얼른 인가를 찾지 않으면 꼼짝없이 얼어죽겠구나.'


발을 부지런히 놀린 덕분에 저녁 무렵이 되어서, 겨우 다 쓰러져가는 움막을 하나 찾았다.


"응애, 응애!"


멀리서도 크게 울어제기는 아기 울음소리가 반가웠다. 지관은 문 앞까지 다가선 채로 말했다.


"이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갑시다."


그 말에 당황할 법도 했는데 주인장이 구체없이 "예, 주무시고 가십시오." 하는 게 아닌가.

방에 들어 앉아 있으니 구들이 따뜻한 게로 잠이 솔솔 오고 노곤하게 몸이 풀렸다. 생각 같아서는 벌렁 누워서 한잠 크게 자고 싶었지만 어디 그럴 수야 있을까?

방 한 칸에 주인 내외와 갓난아이, 지관이 함께 있으려니 무릎과 무릎이 닿을 지경이었다.

그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앉은 채로 밤을 꼬박 보내게 되었다. 새벽녘이 되어 깜빡 졸았는지 눈을 떴을 때엔 아무도 없었다. 기지개를 하고 헛기침을 하고 나갔더니 안주인이 행주치마를 꼭 쥔 채 서 있었다. 바깥 양반은 참나무 장작을 좀더 지르려고 산에 일찍 나섰고, 자기는 서숙(서속黍粟의 사투리)이라도 찧어오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좁쌀 밥이라' 벌써부터 구수한 냄새가 나는 듯하다.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 것 같다. 


"니에, 다녀오십시오." 하고는 지관은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아닌 다음에야 길을 떠나고 나면 개고생이라고 굶은 일이야 허다하고 잠도 잘동말동, 노루잠을 자다가 섬칫 놀라기도 여러 번. 토끼잠이라도 뜨신 방에 하루를 유숙한 어디인가. 헌데, 조밥을 해다 주신다니... 거기까지 생각을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괴나리 봇짐에서 기다란 곰방대를 꺼내어 문지방에 탁탁, 재를 떨어낸 뒤에 꾹꾹 눌러 담아 담배를 한 대 피우러 툇마루에 걸터 앉았다.


'옳거니. 산세가 험준해도 제법.'


봉화는 참말 산자락도 깊고 그만큼 추웠다.


'어이, 춥다. 들어가 있어야겠구나.' 하고 곰방대를 탁탁 털어갖고 문지방을 들어서는데 뭔가 물컹한 것이 발에 밟혔다.


'아이고, 이거 야단났구나.'


눈(雪)이 밤새 하얗게 쌓인 바깥을 바라보다 좁은 방에 들어갔더니 그만 눈(眼)이 어두워 한 살배기 갓난아기를 밟아 버리고 만 것이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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