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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느티나무 Nov 20. 2020

소울푸드

<승부역 해장국>

소울푸드가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나는 절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마음이 혼란스런 요즘.

승부역이 문득 떠올랐다.


'피식'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면서도 비식비식 웃음이 난다.

어째 데이트 장소도 그런 곳을 찾았는지... 순전히 타이틀에 속아 찾아간 승부역은 눈꽃여행이라는 낭만적 미사여구와 달리,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있는 그대로 얼굴을 때려 박는 고난의 장이었다. 

당황을 넘어 황당한 날씨에 갖은 눈총을 다 받으며, 그래도 분위기 반전하겠다며 어린아이 팔뚝 만한 고드름을 따다가 예전엔 이런 걸 먹었다며 추억을 곱씹던 나는 얼마나 멍청했던 걸까?(그 멍청함은 여태 있다)

사귄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에는 눈꽃여행 따위는 감춰뒀어야 했다.



승부역에 생각치 못했던 황망함만 있던 건 아니었다. 

인근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겨울 한가한 틈을 빌어 이것저것 팔고 계셨다. 묵나물이며 약초며, 그리고 해장국. 오랜만에 경험해 보는 생경한 풍경들. 열말들이 가마솥에 펄펄 끓여내는 해장국을 어찌 그냥 지날 수 있을까? 

오늘 문득 그곳이 떠올랐다. 새벽 출근길의 어스름이 그때의 풍경과 닮아서였을까?

어린시절, 요맘때의 시골은 아침마다 밥 짓는 푸른 연기로 가득했다. 연기마저 얼려 버릴 것 같은 살벌한 추위 속에서도 얼마나 낭만적이고 포근한 풍경으로 남아 있는지...

난데없이 떠오른 상상 덕분에 승부역에서 국밥을 팔던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에 이어...나는 어느새 어린 시절, 시골 보강지(아궁이)에 앉아 꾸벅 꾸벅 조는 상상에 이르렀다. 곁에는 쇠죽 끓이는 가마솥의 구수한 냄새가, 타닥거리는 소리가, 그 온기... 아니 열기가... 얼굴만 발갛게 달아오르고 발은 언 채로 나는 꾸벅 꾸벅 졸곤 했다.

사람으로 피곤한 요즘, 이곳과 이날의 정경이 떠올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 해장국 집이 근처에 없어 육개장으로 대신했다. 얼마나 맛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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