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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A May 02. 2022

열녀문과 루크레티아, 피해자의 자살

여성의 자살은 칭송받는다

제니퍼 마이클 헥트는 저작 <살아야  이유>의 첫 장에서 로마 자치의 역사는 자살로 시작한다고 운을 뗀다.

호시탐탐 이탈리아 반도를 노리던 에르투리아 왕자가 로마 귀족의 아내 루크레티아를 자살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있는 루크레티아에게 반한 왕자는 성범죄를 벌이고, 여차하면 루크레티아가 노비와 바람이 났다는 거짓을 퍼뜨리겠다고까지 협박했다.

루크레티아는 의연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된 후, 그는 단도를 들고 로마 귀족들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범죄자의 처단을 호소하며 그 자리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이 여성의 결기를 수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으로 되살려냈다.

그의 죽음이 이탈리아 자치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이유에서다.



현대로 치면 미투 피해자가 폭로 후 정의구현을 당부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셈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의 온세상은 끝나버렸다. 가해자가 죗값을 치른다 한들 그 생을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영광된 것으로 기억할 것이다.



한국의 열녀문이 떠오른다.

완전한 타의로, 혹은 자의라고 착각한 상태로 

조선시대 여성들은 가부장제의 살인 피해자가 되는 것을 선택하며 자신의 정절을 인증받았다.

열녀, 고결하고 순결할 것을 강요받는 것은  여성이다.

이런 여성상은 강요되고, 숭앙의 대상이 된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사치스러운 얘기다.



당시 사회에서는 성범죄의 피해자라고 해도 송사에 나서 끝내 이긴다는 선택지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목숨을 던져 자신이 깨끗한 피해자임을 강변해야만 했다.

배우자가 사망하는 경우에도 재혼은 커녕,

죽음으로 '정절에 해가 될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었으니까'라는 알리바이를 세상에 확인시켜주어야 했다.



여성의 자살은 많은 경우 사회적 타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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