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I may be wrong
스웨덴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고 다국적 기업 자회사 최연소 임원이 되려는 찰나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그 길로 사직서를 내고 태국의 숲속 승려가 된 비욘 나티코 스님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읽었다.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단 한 권 남긴 저작인 이 책은
평범한 청년이 수도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위트있는 필체로 보여준다.
머리를 깎고 이제는 돈을 만지지 않으며 최소한의 소지품만 가지고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인생은 그리 녹록치 않다.
동트기전 명상을 하다가 꾸벅꾸벅 졸아서 바닥에 만세를 하고 뻗은 기억, 혼자 수련하고 은둔할거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승려들이 북적북적한 절 안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묘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승려도 사람이기에 이유없이 싫은 사람도 있고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고치고 싶은 시스템도 많이 보일테다.
그때 나티코 스님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마법의 주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든것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하지만 정작 중요한 시기에는 미뤄버리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로서 배울 점이 많은 책이었다. 가끔은 일에 치여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출가를 해버릴까 수준까진 아니어도
버거운 프로젝트를 때려쳐버릴까, 가끔은 상사를 들이받고 회사를 탈출하는 꿈도 꾼다.
그러면 평화로운 세상이 있을것도 같다.
그러나 나티코 스님은 "모든 번뇌에서 해방된 것은 죽은 사람 뿐"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내맘처럼 될 수는 없다. 그게 보통의 상황임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여유가 중요하다. "내가 이랬어야 했는데, 돈을 더 벌었어야 했는데, 그 실수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적절한 말을 했어야 했는데"와 같은 후회가 의미없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버릇도 줄여보기로 했다. 과거를 가정하면서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고 늘어놓는 행위는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을 붙잡아보려고 허공을 허우적 거리는 것과 같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 다른 이의 깨달음 한 조각을 음미해본 여름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