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 다큐 3일
영화 <스펜서>는 일반적인 전기영화의 특성을 따르지 않는다.
관객이 기대할만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어린시절부터 일대기를 훑지 않고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가 외도한 남편을 참아내는 동안 왕실 사람들과 크리스마스 연휴를 어떻게 보내는지
그 3일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풀어낸다.
겨우 사흘은 긴 러닝타임동안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일생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사흘이면 충분했다는 생각으로 관객은 상영관을 나오게 된다.
포스터를 장식했던 인상적인 하얗고 풍성한 드레스 차림의 뒷모습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궁금한 사람은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초반에 왕가의 별장으로 미리 향하는 식재료를 실은 트럭들은 열 맞춰 이동한다.
도로 위에는 꿩 한 마리가 죽어 있는데
행렬의 첫 차가 아슬아슬하게 이 새의 사체를 비껴난다.
두번째, 세번째 차도 마찬가지다.
바퀴에 닿을 듯 닿을 듯 위태롭게 사체는 깃털을 떤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모습이 위태로운 다이애나의 왕실생활이었다는 점을
관객은 깨닫게 된다.
애초에 행렬은 꿩 한마리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 꿩을 왕세손이 사냥하는게 그들의 전통이다.
고지식한 행렬은 앞 차의 행로를 그대로 따른다.
그래서 사체를 훼손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이애나는 아침, 점심, 저녁식사마다 정해진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생활을 더 이상은 버틸수 없어한다.
그 생활은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사랑하는 아들들은 평범한 아이들처럼 크리스마스를 누리지 못하고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짐, 의미모를 왕실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짐을 지는 삶에 불과하다.
극중 캐릭터인 첫째 아들 윌리엄 왕자는 장차 왕이 될 몸이기 때문에 총으로 꿩을 사냥해 죽은 꿩들을 일꾼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짐을 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총을 쏘는 것도, 꿩을 죽이는 것도 내키지 않아 한다.
왕세자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다이애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비극이되 강인한 이야기였다.
긴긴 러닝타임 내내 왕실 대리체험을 통해 소박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눈이 즐겁되 마음은 아린 영화, 스펜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