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입장 정리

건조기 : ‘햇빛 냄새’를 더 이상 맡을 수 없다는 것

by 이이현


빨래 건조기를 처음 접한 건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였다. 아파트의 주방과 거실 사이에 있는 장을 열면 세탁기와 건조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빨래를 밖으로 보이게 널어 말리는 건 도시 미관 때문에 금지되어 있다나 어쨌다나. 타지에서 경찰과 말을 섞게 되거나 벌금을 내는 일이 벌어지는 건 원치 않았기 때문에 꼬박꼬박 건조기를 사용해 빨래를 말렸다. 가끔 티셔츠나 청바지가 약간 줄어들기는 했으나 다른 도리가 없었다. 편리하기는 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남자 여섯이 모여사는 좁은 아파트에서 빨래를 널어서 말렸다면, 집 안이 항상 빨래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집에 돌아올 때 가끔 아파트를 올려다보면 커다란 수건이나 물에 젖은 티셔츠가 널려 있을 때가 있었다. 빨래 말리기에 딱 좋은 호주의 볕이 아까웠던 건 나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빨래를 널기 전 두어 번 탁탁 털었다. 나도 자취를 하면서 스스로 빨래를 널어야 했을 때 그대로 했다. 빨래를 널 때 꼭 해야만 하는 의식 같았다. 군대에서도 빨래는 중요했다. ‘짬’이 안될 때는 손빨래를 해야 했지만,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빨래 말리는 일은 좋았다. 감히 군생활에서 제일 좋아했던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근무가 적은 주말이면 빨랫비누로 조물조물, 때로는 빨랫솔까지 이용해서 벅벅 빨래를 한다. 탈수기에 한 번 돌리고 (다행히 탈수기는 사용할 수 있었다) 큰 대야에 빨래를 가득 담아 옥상에 올라간다. 두어 번 탁탁 터는 의식을 치르고 옥상에 일렬로 늘어져있는 빨랫줄에 쫙쫙 펴서 넌다. 대부분 국방색 보급 내의와 양말이다. 가끔 고참의 빨래도 널어줘야 했지만, 많이 억울하지는 않았다. 빡빡한 군 생활에서 많지 않은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제대를 하고 좁은 원룸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여느 때와 같이 빨래를 털다가 문득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팔을 쭉 펴지도 못하고 애매하게 빨래를 터는 척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청소도 잘하지 않아 빨래를 털 때마다 방바닥에 쌓여있던 먼지들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빨래를 터는 사치스러운 의식은 생략했다.

결혼을 해서 아파트에 이사를 가니 베란다에 빨래를 널 수 있었다. 좁은 베란다에서 꾸역꾸역 빨래를 널었다. 역시 널기 전에 시원하게 탁탁 털기에는 공간이 부족했다. 천장에 매달린 건조대와 나, 빨래를 담은 대야만으로도 베란다는 꽉 찼다. 그래도 볕이 제일 잘 드는 곳에 말리고 싶었다. 다른 적당한 공간도 없었다.

아기가 태어나니, 빨래의 양이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결국 빨래는 거실과 침실까지 침범했다. 더 이상 좁은 베란다에서 낑낑대며 널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볕이 좋은 날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더구나 미세먼지까지 말썽이어서 마음대로 창문도 열지 못한다. 그렇게 빨래를 너는 일은 더 이상 나에게 평화를 주지 못했다.


그렇게 빨래의 공습에 지쳐가던 중, (가사와 육아노동에 몇 배 더 시달리는 아내는 더욱 그랬겠지만) ‘제습기’라는 나로서는 약간 이해 불가인 가전제품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제습기라니… 에어컨이 있는데 왜 제습기를 따로 사야 하는 거지? 인터넷 후기에는 장마철에 빨래 말리는데 최고라며 호평 일색이었다. 장마철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기후가 빨래를 말리는데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자취를 하던 시절 볕이 좋은 날에는 ‘빨래 하기 딱 좋은 날이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군대에서도 옥상에 빨래를 너는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그때그때 필요한 양말이며 속옷은 내무반 안에 널었다. 내무반에는 항상 빨랫줄이 쳐져있었다. 오죽하면 날씨가 좋은 주말에 ‘밀린 빨래’를 하라는 부대 내 방송까지 했을까. 게다가 볕이 아무리 좋아도 빨래를 온전히 햇볕에 말리는 게 쉽지만은 않다. 좁은 원룸이던 비교적 넓은 아파트던 옥상이나 마당이 없으면 볕이 잘 드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장마철에만 사용하는, 안 그래도 더운 계절에 주변을 더 덥게 만드는 제습기를 사는 건 내키지 않았다.

‘우리도 제습기 하나 살까’하는 아내의 말을 못 들은 척 넘기기를 여러 해, 얼리어답터를 지향하는 회사의 어느 차장님 집에 빨래건조기를 들였다는 말을 들었다. 세탁기에 딸려 있는 건조 기능과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호텔 수건같이 보송보송 해진다는 것이었다. “옷이 줄어들지 않나요?” 물으니 줄어드는 옷도 있지만 한번 줄어든 건 더 이상 줄지 않아서 크게 불편함은 없다고. 사실 그렇다. 맞춤복을 입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옷은 약간 작거나 약간 커도 입을 만하다. 제습기를 사는 것보다는 몇 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분이 설치했던 건 가스 건조기였다. 얼마 안가 전기 빨래건조기가 출시되었다. 하나 둘 입소문을 타더니, 이제는 가히 국민 필수품이 되었다. ‘신혼집이 좁아서 건조기 놓을 자리가 없어요ㅠㅠ’라는 인터넷 댓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 집도 하나 장만했다. 지난겨울 이사를 오며 베란다에 낑낑 설치했다. 설치해본 사람은 안다. 건조기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처음부터 건조기의 자리가 고려되지 않은 옛날식 아파트에는 들일 자리가 마땅치 않다. 어느 집에 가면 주방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런 집에 가면 코인 빨래방에 온 느낌도 든다. 자리야 어떻든 한번 들여놓으면 편리하게 사용한다. 가장 빛을 보는 순간은 물론 장마철이겠지만, 안 그래도 좁은 아파트에 빨래가 널려 있지 않으니 기분도 산뜻하다. 빨래를 말리는 가사 노동도 줄어들게 되고,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하는 날에도 걱정 없이 빨래를 한다.


너도 나도 ‘인생템’이니 ‘사기템’이니 라는 말을 한다. 거름망에 남아 있는 먼지를 보면 속이 다 후련하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요즈음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를 그나마 덜 마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그래도 나는 왠지 찝찝한 마음이 남는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의 굴뚝에서는 미세먼지가 배출된다. 건조기를 만드는 공장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건조기의 사용이 꼭 미세먼지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세먼지의 문제를 또 다른 미세먼지의 배출로 해결한다.


내 찝찝함이 이런 고지식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이유는 ‘햇빛 냄새’를 더 이상 맡을 수 없다는 것. 햇볕에 빨래가 고슬고슬, 때로는 빳빳이 말랐을 때의 냄새를 참 좋아했다. 바싹 마른 빨래에서는 바스락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때 나는 향을 스스로 ‘햇빛 냄새’라 칭하며 좋아했다. 빨래를 갤 때 일부러 코에 가까이 대고 향을 맡았다. 코가 민감하고, 향수며 샴푸 냄새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가장 좋아하는 향이라 할 만하다. 비누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향수도 나오는 것 같지만, 비누 향에 가히 비할 바 아니다. 계속 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빨래를 갤 때 잠깐, 운이 좋으면 그 옷을 입으려고 구멍에 머리를 쑤욱 넣을 때 한번 더.


얼마 전 제주도의 작고 예쁜 주택에 잠깐 머물 기회가 있었다. 잔디가 웃자란 아담한 마당이 있는 곳. 마당에 빨래를 널었다. 탁탁 털어 널었다. 빨래가 마르는 모습은 보기에 참 좋았다.

삶의 질을 말하는 시대다. 빨래에 있어서 만큼의 삶의 질은 아무래도 군대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제주도의 평화로웠던 빨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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