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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희 May 18. 2023

작은 매체서 기자로 살아남기_에필로그


7시 19분. 비몽사몽한채로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는다. 열차 안은 사람들이 내뿜는 온기로 데워져 있다. 시끄러운 쇠마찰음을 내는 열차는 멈췄다 섰다를 반복한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온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짜증과 권태가 묻어있다. 그 사이서 점점 더 서 있을 공간을 잃는다. 양발을 땅에 딛고 있지만 위태롭다. 누군가의 등과 팔과 머리는 올가미의 양태로 내 신체를 옭아맨다.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볼 여력조차 없다. 그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경제 소식을 기계처럼 귀에다 쑤셔 넣을 뿐이다. 유명 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짓는다더라,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요동칠 것이다 하는 내용들이 흘러나온다.


철로 된 순례길에 오른 교인들은 긴 여정을 함께한다. 터질 것 같은 긴장은 신도림에서 한 번, 신길에 서 한 번 다른 색깔의 노선으로 옮겨간다. 어쩌면 5호선의 상징이 보라색인 이유는 인파에 시퍼렇게 질린 얼굴색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다시 몸을 구긴다. 열차 안이 소란스럽다. 라디오의 진행자의 목소리를 내려놓고 무슨 일인지 확인에 나섰다.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다. 열차를 타기 위해 자신을 밀쳤다는 짜증 섞인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흔하디 흔한 다툼이구나 싶어 주의를 거둬드린다. 나의 공간을 침범한 철저한 타인을 여백으로 남긴다.


핸드폰을 들어 일보를 작성한다. 기사 계획을 쓰고, 메일함을 확인해 들어온 보도자료를 확인한다. 다른 매체에서 내놓은 기사를 갈무리한다. 괜히 비어있는 메일함을 새로고침하며 시간을 보낸다. 우르르. 지하철은 광화문에서 사람을 토해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를 향해 유영해 간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오롯이 타인으로 변해간다. 편의점에 들러 아침으로 먹을 초코바를 산다. 내용물을 씹으며 길을 걷는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계절과 상관없이 두터운 침낭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홈리스를 지나친다. 잠들어있는 것인지, 무료한 시간을 제 나름대로 보내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8시 27분.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나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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