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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I Dec 13. 2020

겁쟁이 쫄보 고양이 삼색이 임시보호 01

2020 코로나, 그리고 재택근무가 가져온 색다른 일상

작업실이 있는 공간에 이사를 오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일 중에 하나는 근처 길고양이들을 더 자주 보고, 직접 밥을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심X앙꼬 책에도 등장했던 턱시도 고양이 쫄보는 거의 매일 작업실에 와서 밥 먹고 낮잠 자고 친구 앙앙이와 하루 종일 놀다 갔었고, 처음 보는 다른 고양이들도 보게 되었다.


작업실에 밥을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들 중 삼색이는 그다지 기억에 남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자주 마주치지도 못 했고, 워낙 조용히 왔다가 밥만 먹고 또 조용히 가버리는 통에 오랜만에 얼굴이 보이면 그때서야 “아, 너도 있었지.” 했더랬다.

한 동안 그렇게 자주 보이지 않더니 올해 2월 초,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진 그때 즈음, 삼색이가 밥 먹으러 오는 게 눈에 띄었다. 태어난 지 두 달쯤 되어 보이는 작은 노란 고양이를 먼저 보았고, 아기 고양이가 밥을 먹으면 삼색이가 그 뒤에 밥을 먹었다. 같이 다니는 건 보지 못했지만, 노란 고양이의 엄마인가 싶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갑자기 삼색이의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도 삼색이를 마주쳤는데, 눈은 반 밖에 못 뜨고, 콧물을 흘렸는지 입 주변에 잔뜩 모래 같은 것을 묻히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감기 걸렸나, 어쩌니.” 하고는 출근이 바빠서 길게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출근하던 길에 바깥에 있던 길고양이 집을 보니 삼색이가 안에 들어가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고개를 꾸벅꾸벅하는 게 유난히 힘이 없어 보였는데, 그래도 집 안은 좀 따뜻하니까 괜찮겠거니 싶어서 출근을 했다.

그 날 오후, 작업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1층에 잠깐 나와있었는데, 2층 테라스에서 갑자기 삼색이가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졌다고.. 너무 놀라서 담요로 감싸서 카라 병원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면역력도 약해져서 감기인 허피스에 걸려있고, 선천적으로 약한 신장 때문에 수액을 맞고 있다고 하였다. 순간 마음이 덜컹하면서 아침에 꾸벅꾸벅 졸던 게 졸려서 자고 있던 게 아니라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랬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상태를 알아챘더라면, 아니면 요전날 콧물 흘리고 있을 때라도 허피스 약을 받아왔더라면 이렇게 쓰러지지 않았을 텐데, 내가 무심했구나 싶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이는 2-3살 추정, 몸무게는 2.7kg. 작고 마른 삼색이는 그 날 그렇게 카라에 입원을 하면서 우리 곁으로 왔다.


2월 초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재택을 하게 될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던 때였다. 카라에 입원한 삼색이를 보려면 병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가서 잠깐 보고 늦은 출근을 하거나, 이른 퇴근을 하고 병원 문을 닫기 전에 오는 방법밖에 없었다. 사실 처음 입원을 시켰을 때엔 하루하루가 고비라고 말씀을 해주셔서 어느 정도의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삼색이를 보러 갔었다. 눈도 뜨지 못하고 숨만 겨우 쉬고 있던 작은 아이. 사람이 보지 않을 때에만 찾아와서 밥만 조용히 먹고 가던 아이라 정이 많이 들었던 친구는 아니었지만 마지막이라도 잘 보내주자 싶어서 짠한 마음을 한 켠에 두고 있었다.


신장 수치는 계속 안 좋았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도 아닌 날들이 계속되었다. 입원실 한 켠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 얼굴이 보여도 눈을 뜨고 있는 걸 보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너무 아프고 힘든 삼색이를 이렇게 붙잡고 있는 게 더 나쁜 건 아닐까,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어떤 약으로도 좋아지지 않는다면서 조심스럽게 복막염이 아닐지 진단을 내리셨다.

고양이 복막염은 치료제도 없고, 걸리면 거의 살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우리의 고민은 더 심해졌다. 정식 치료제는 아니지만 중국에서 최근에 약이 나오기는 했는데 그 가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어디선가 들었고... 약값과 병원비 계산기를 두드리며 내가 키우던 고양이도 아닌 아이에게 이렇게 돈을 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안락사’라는 무시무시한 생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내가 싫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삼색이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더니 병원에 온 나를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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