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_태양커피 (서울 방배동)
카페첩의 첫 페이지는 이곳이어야만 할 것 같았다. 자주 가는 곳이고, 그만큼 아끼는 곳이다. 특별한 단골 카페가 없는 나도 이곳의 쿠폰은 몇 장정도 채운 것 같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이유. 커피가 맛있다.
인기 많고 유명한 메뉴는 많지만, 나는 이곳의 플랫 화이트를 가장 좋아한다. 우유가 많아 다소 부담스러운 라떼에 비해 플랫화이트는 아담한 사이즈라 자주 찾게 된다. 3500원이라는 착한 가격도 한몫한다. 뜨겁게 먹으면 라떼와의 차이를 잘 모르겠어서 아이스로만 마신다.
태양커피의 원두는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하는 이곳만의 맛과 질감을 갖고 있다. 마시기 전부터 산미를 강하게 풍긴다. 플랫화이트 위에서는 진한 크레마를 띠운다. 그만큼 맛도 진득하다. 롱블랙으로 먹으면 잘 못 느낄 수도 있지만, 플랫화이트로 우유와 함께 마시면 이곳 원두 특유의 입에 착 감기는 질감을 즐길 수 있다. 우유 위에 에스프레소를 부어주기 때문에 섞기 전에 한 모금 마셔보면 오로지 원두의 진한 맛만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러한 플랫화이트 맛을 즐기고 싶으나 양이 적다 싶을 때에는 라떼에 우유를 적게 넣어달라고 해서 먹기도 한다.
사실 이곳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면 플랫화이트보다는 아인슈페너나 시나몬 드라이 카푸치노가 더 유명한 것 같다. 아인슈페너는 에스프레소에 물이나 우유를 섞고 위에 직접 만든 크림을 올려주는 메뉴인데 개인적인 기준에는 크림 양이 많고 조금 느끼한 것 같아서 한두 번 먹고 잘 안 찾게 되었다. 시나몬 드라이 카푸치노는 일단 비주얼이 신기해서 눈이 가고, 원두와 우유가 어우러지는 풍미 또한 훌륭하다. 그러나 한겨울에도 뜨거운 커피는 잘 안 찾는 나에게 아이스가 안 되는 이 메뉴는 그닥 인기가 없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시그니처 메뉴이니 처음 가보는 사람에게는 맛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이곳은 매우 특이한 공간이기도 하다. 일단 간판이라고는 외벽 한 곳에 작은 글씨로 ‘태양커피’라고 도장 세 번 찍은 게 전부이고, 내부도 굉장히 좁다. 통유리 창 너머로 보이는 커피 머신과 원두 통이 아니라면 카페인지 창고인지 싶은 곳이다. 벽이나 천장은 투박한 색감으로 페인트칠 되어있고, 의자와 테이블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나무 재질이기는 하나 등받이 없이 오직 나무뿐이라 오래 앉아있기에 편안하지는 않다. 그나마도 절반은 나란히 앉는 바와 벤치이다. 그런데도 매일같이 사람이 몰리고 특히 점심시간 끝나갈 무렵에는 주민과 주변 직장인들이 모두 모이는지 그 좁은 공간이 사람으로 가득가득하다. 합석은 기본이고 춥지 않은 날에는 밖에 놓인 평상 같은 나무벤치에도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커피를 마신다.
한편 이곳의 로고는 한없이 진지한 궁서체의 ‘태양커피’ 네 글자가 전부이다. 태와 양 사이에 스페이스바를 쳤다고 하기는 애매하게 좁은 알 수 없는 간격이 재미있다. 이 로고가 쿠폰에도 컵홀더에도 간판 대용의 외벽 도장에도 소박하게 찍혀있다. 색은 오로지 흑백.
그런데 의외로 디테일이 섬세하다. 라떼에 꽂혀 나오는 빨대 색은 벽 페인트 색과 같은 특이한 동색이고, 냅킨에도 귀여운 플랫화이트 잔이 그려져 있다. 카운터 앞에 붙여진 빈티지 보드도 센스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의 커피잔을 좋아하는데, 원색의 자기 잔이나 유리잔 모두 멋이 깃든 무게감이 있다. 신경 안 쓴 듯 신경 쓴 디자인에 기분이 은근히 좋아지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인테리어 비용을 최소화하고 커피 맛에 모든 투자를 한 건가 싶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몇 번 와보면 이곳만의 인테리어와 불편함의 매력에 끌리게 된다. 무엇보다 기본기가 훌륭하니 – 맛있는 커피가 있는 공간은 어디든 매력적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추천할 것 같다. 감히 말하지만, 내가 먹어본 중 최고의 커피라고.
여담 1. 디카페인이 된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카페인에 취약한 나로서는 매우 환영하는 바이다. 디카페인 원두가 빨리 떨어지는지 항상 되지는 않는다.
여담 2. 외부 디저트 반입을 환영한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커피가 너무 맛있는 바람에 디저트를 가져와 먹은 건 한두 번 밖에 없다. 주변에 괜찮은 베이커리와 디저트집이 많아 사람들이 종종 디저트를 사 와 함께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