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나 Mar 18. 2019

마음 놓고 망치는 용기

 어쩐지 그림이 그리고 싶어 졌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겨웠는지, 무언의 표현 욕구가 들었는지. 아주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뭘 그려야 할지는 모르겠고,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  홍대의 작은 작업실을 찾았다. 하이퍼 리얼리즘 화가와 함께 인물을 마치 사진처럼 리얼하게 그리는 클래스에 들어갔는데, 나는 고민하다가 당시 교양 과목에서 과제로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을 그렸다. 


 제법 그럴싸한 스케치에 만족하면서 밑그림으로 옅은 명암을 깔았는데, 그 후로는 영 진도가 안 나갔다. 내가 계속 깨작대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와서 "가장 어두운 곳부터 명암을 과감하게 깔고 들어가라"고 조언을 했다. 


그 말을 듣고도 한참을 서성이다,

"못 하겠어요."

하고 말했다.


"왜요?"

"망칠까 봐서요."


선생님은

"망치면 왜 안 돼요?" 

라고 되물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망쳐요? 이번 목표는 화끈하게 망치는 거예요. 이걸 아주 망쳐버리겠단 생각으로 과감하게 깔고 들어가요, 우리. 알겠죠?"


 그동안 망칠까 봐 주저했던 게 오히려 일을 더 그르치진 않았을까. 나는 그날 끝끝내, 지금까지는 꽤 마음에 드는 이 스케치를 망칠까 봐 선을 과감하게 깔지 못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잘해야만 한다", "망치고 싶지 않다"는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게으른 완벽 주의자'라고 표현하던데, 그 말이 내 정곡을 콕 찔렀다. 


 이번 100일 프로젝트의 목표는, 아주 망쳐버리는 거다. 똥글을 매일매일, 부지런히도 써 올리겠다. 5년 전에는 끝끝내 하지 못했던 '망치기'를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글을 써야겠다"는 각오로 다부진 목표를 세우지도 않고, 그저 글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은지, 무엇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으련다. 아무런 목적이나 방향 없이도, 그저 몸이- 이번 경우엔 내 손가락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