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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 Apr 19. 2020

사회와 거리를 두니 내가 보였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팔로우하고 있던 어느 인스타그래머가 "코로나 때문에 '일이 줄었으니 어렵겠다'는 말 대신 '한가해졌으니 공부할 시간이 늘었겠다'는 응원을 듣고 힘이 났다"고 한 말이 내 마음에도 자리를 잡고 앉았나 보다. 보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벚꽃이 피고 지는 동안에도 지속되면서 온 국민이 단절의 고통을 나누고 있다. 초록이 돋아나도 봄을 만끽하지 못하고, 주머니 사정이나 무엇 하나 마음처럼 되는 일 없이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앞서 언급한 인스타그래머가 남긴 말처럼 다르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마침 릴케의 편지를 읽고 '어쩔 수 없는 단절'을 '고독을 즐기는 시간'으로 바꿔보았다.



그러므로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운 비탄의 소리를 내며 당신에게 주는 고통을 견디십시오. 왜냐하면 당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멀게 여겨진다고 당신은 말합니다만, 그것은 당신의 주변이 넓어지기 시작한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의 가까운 것이 멀리에 있다면, 당신의 영역은 이미 별들 사이에까지 퍼져서 실로 커다란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39-40p., 문예출판사)



제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고뇌하는 젊은 시인에게 릴케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고독을 사랑하라 조언한다. 철저한 고독을 통해 "인생으로 하여금 제 길을 가게" 할 수 있는 것. 돌이켜보면 거리 두기 이전부터 우리는 너무 지쳐 있지 않았을까. 번잡한 도시가 내뿜는 소음, 과중한 업무가 주는 부담감, 그리고 여러 가지 관계가 빚어내는 신호로부터 우리는 종종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물론 내가 스스로 혼자 있는 시간을 선택하기보다는 미처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강제로(?) 고립의 시간에 갇힌 쪽에 가깝지만. 남을 배려하는 동안 정작 나에 대한 예의는 져버리지 않았는지, 이참에 고독을 있는 힘껏 껴안아보는 건 어떨까.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겁니다. 그뿐이죠."
 리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늘 그렇죠. 나도 그걸 알아요.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추어야 할 이유는 못 됩니다."
 "물론 이유는 못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게는 어떠한 의미인지 상상이 갑니다."
 "알아요." 리외가 말했다. "끊임없는 패배지요."
-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눈에 띄게 일상을 헤집어 놓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재난의 한가운데에서, 일시에 모든 노력이 수포에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맞서야만 한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온 힘을 다해 싸우는 의사 리외와 타루, 그랑으로 대표되는 그의 친구들이 그랬듯이 오늘날 국내에는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들이 코로나의 최전방에 기꺼이 섰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 이 불가항력에 맞서는 방법은 그저 포기하지 않는 데에 있다. 너무 쉽게 삶을 져버리지 않는 것. 그럼에도 봄은 오고 싹은 피어나니까.



우리의 거의 모든 슬픔은 긴장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긴장을 우리는 마비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마비라고 느끼는 것은, 이상하게 여기던 우리 감정이 살아 있는 소리가 이제는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내부로 들어온 낯선 자와 둘만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친숙하고 익숙하던 것이 모두 일순간에 우리에게서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머물러 설 수 없는 과도기의 한가운데 우리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64p., 문예출판사)



으레 있어야 할 것이 그 자리에 없다는 걸 발견할 때의 당혹감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요즘 우리의 일상이 그렇다.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 않다. 숱한 경험으로 쌓아 올린 나의 '성'이 깨진 곳에는 낯섬만이 자리한다. 때로는 이런 생경함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주기도 할 테다. 릴케가 묘사하듯 우리가 겪는 지금의 슬픔은 낯선 자와 단둘이 마주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슬픔도 역시 지나가버립니다. 우리 내부의 새로운 것, 부가된 것은 우리의 심장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심장의 제일 깊숙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만, 벌써 거기에도 없습니다. 이미 피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모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우리로 하여금 쉽게 믿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한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65p., 문예출판사)



 한치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어쩌면 <페스트> 속 리외가 말한 것처럼 패배만을 예견할 뿐인 이런 암담한 시기에 맞선다는 건 전혀 알지 못하는 상대와 싸우는 것과 같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시기를 극복해낼 수 있다. 생소한 것에 익숙해지는 동안 우리는 또다시 각자의 '성'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 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더 강해지고 있으며, 더 견고한 '성'을 다지고 있다.



 당신은 매우 젊고,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당신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마음속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를 가져주십시오. 그리고 물음 그 자체를 닫혀있는 방처럼, 아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해주십시오. 지금 당장은 해답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아마도 당신이 해답에 맞추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당신에게 그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산다는 것은 긴요한 일입니다.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당신은 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날, 해답 속으로 들어가서 해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35p., 문예출판사)



갑작스럽게 내몰린 고독의 시간에 방황하고 있다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추천한다. 지금의 혼란한 시기를 겪는 동안은 물론, 이후의 삶을 걸어가는 데에도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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