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하객 은퇴식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강렬하게 어딘가에 현재의 심정을 휘갈기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를 시작했다.
서른한 살의 끝자락,
아스라한 연심을 느껴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스물넷부터 친구들은 뒤질세라 바삐 결혼하기 시작했고, 오늘로써 내 절친의 마지막 결혼식이 막을 내렸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나에겐 결혼식 하객 은퇴식이다.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만원 지하철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발이 부서질 듯 아픈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이시여, 나에게 결함이 있는 걸까요? 당신은 나만 미워하십니까? 눈물 어린 절규를 속으로만 몇천 번은 외쳤다.
가장 소개팅이 잘 들어오던 스물일곱 무렵, 나는 꿈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 후 하고 싶은 다양한 경험과 목표를 하나씩 이루어오고 있다. 어리고 예뻤던 그 나이의 나보다, 현재의 나는 훨씬 반짝반짝하다.
그런데, 나에게 좀처럼 인연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누구나 연애는 필수로 해본다는 대학시절에도 나는 남자 친구가 있은 적이 없었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2개월 남짓의 짧은 만남 혹은 썸에서 끝나고는 했다. 이젠 그마저 지쳐서 '나는 나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지인들과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청첩장을 내밀고, 관계 때문에 안 갈 수는 없는데 다녀오는 내내 상대적 박탈감에 우울해서 하루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속도 모르고, 와줘서 고맙다고 하는 친구들은 마냥 행복해 보인다.
그러다 문득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객 중 한 명이 되기 위해 매번 나는 이리도 불행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 소개팅에서의 시장가치가 떨어진 나이인지 소개팅 좀 해달라고 이야기를 해도 영 들어오지 않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고. 그냥 체념하고 살 수 있는데, 굳이 결혼식의 들러리가 되어야 하는가?
난 자유롭고 싶다.
하객들도 모두 쌍이 되어오고 아이를 데려오고 나만 혼자인 이 결혼식은 나에게 이제 악몽이다.
나는 이제 이렇게 선언한다.
너의 결혼을 축하하나, 그 결혼식장에서 내가 맞닥뜨려야 할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감은 나를 무력하게 만드므로, 연애하지 않는 나는, 어쩌면 앞으로도 그저 '나'로서만 살아갈 나는 이제 결혼식의 하객이 되지 않겠다.
그러니 지인 여러분들, 저를 결혼식에 초대하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