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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쑥 Sep 04. 2022

나의 결정사 연대기 - 에피소드1

두근두근 첫 미팅

미지의 세계가 두려운가? 

일단 부딪혀보라. 


그 누구도 나에게 결혼정보회사를 추천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제 발로 그곳으로 갔다. 3년 전의 고민은 현재의 시작으로 귀결되었다. 

자, 그렇다면 나의 시작은 어땠을까? 


떨리는 마음의 첫 시작


제일 싼 가격으로 해 준다는 말은 마케팅이고, 새빨간 거짓말인 것 너무 잘 알았고

눈감고 코 베이러 간 심정으로 생애 최초로 두 달치 급여를 이 서비스에 투자했다. 두 달의 피,땀,눈물이 

계좌이체 되는 순간의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긴장감, 그리고 설레임이란 참으로 복잡미묘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람!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혼재하는 것이었다. 해방감과 구속감. 이제 소개팅 상대조차 잘 없다며 푸념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해방감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1년은 이 결혼정보회사라는 인력시장의 충실한 일꾼이되어 발품과 에너지를 팔아야한다는 구속된 느낌. 이 두가지 감정은 정확히 들어맞게 된다. 역시 직감은 크게 빗나가지 않더라니. 


그 날의 분위기


나는 굳이 꼽으라면 시각, 청각, 체감각 중 시각형 인간이다. 즉, 어떤 순간을 기억할 때 이미지를 스캔해서 저장하는 방식을 뇌가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날 만큼은 그 유명한 '온도, 습도, 분위기' 로 기억하고 싶고 그렇게 나의 뇌에 저장되었다. 무슨 말이 하고싶냐고요?


좋았다규.



하필 그 날은 내 생일이었고, 화창한 봄날이었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이미지에 맞게 청초하고 푸르른 날이었다. 그 날에, 역사적인 첫 미팅이 이루어졌다.(여기서 각주하나 달고싶은데, 이 결혼정보회사에서는 남녀의 만남을 "미팅"이라 명명한다. 비즈니스미팅도 아니고, 대학교 때 하는 n:n 미팅도 아니지만, 왠지 공식적인 느낌을 주는 이 단어에 대해 나의 심상은 계속적으로 바뀌어가기 때문에, 후속편에서 중간중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5.15. 강남 어떤 까페에서. 


이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실번호를 교환하지 않고 미팅 3일전 가상번호를 발급하여 서로에게 문자로 보내준다. 굉장히 획기적이지 않은가? 실번호는 개인정보이고 추후 원치않는 연락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말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띠링띠링! 그에게서 온 문자다. "안녕하세요, 오늘 만나기로 한 ***입니다. 강남의 **은 사람이 너무 붐비던데, **에서 만나는 게 어떨까요?"

'우와...센스 대박' 처음이지만, 대박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 남자, 뭔가 섬세하다. 내 얼굴조차 본 적이 없지만, 상대와 서로에 대한 배려가 탑재되어 있는 괜찮은 남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장소를 조율하고 나는 테라스가 있는 그 까페에 먼저 도착해, 따듯한 햇빛와 선선한 바람을 함께 맞으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타났다. 외모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앞으로도. 참고로 필자가 파트너로 기대하는 상대에게서 외모는 전혀 우선순위가 아니기에 그에 대한 바람을 결정사에도 전달한 바가 없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지. 

필자와 동갑인 그는 **병원의 레지던트였다. 

일단 소개팅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처음만나보지만, 필자와 여러가지 공통점이 있어보였따.

동갑이고, 원래의 전공과는 다르지만 꿈을 쫓아서 의전원에 들어가 현재의 길을 가고 있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성적인 호감을 떠나서 좋은 사람이라 느껴졌다. 

그와의 대화는 따듯했다. 편안했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서로의 관심사를 자연스럽게 물었고, 대답했고, 봄날의 햇살처럼 함께 웃었다. 


<갑분 Q&A>

Q. 소개팅인데, 까페에서 만났다구요? 

A. 네. 흔히 소개팅은 저녁시간에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런 경우가 많은데요, 결정사의 시스템은 좀 다르더라구요. 중간에서 매칭매니저들이 시간, 장소를 픽스해주는데 딱 점심시간이고 저녁시간이어도 까페로 장소를 픽스해줘요. 그래서 물어봤었어요. 왜 굳이 까페냐고. 그 때 들은 대답은 "서로 마음에 안 들 경우를 고려해서 까페에요."

일단 수긍은 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외모만 보고 상대를 알 수는 없는데, 슬쩍보고 판단해버리기에 까페만큼 부담없는 장소가 없다는 것이지요. 일단 가입비만 해도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부담이 있고, 낭만적 연애성향을 가진이라도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중에 제일 괜찮은 사람"을 찾고싶은 극대성향이 발휘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토록 효율적인 "미팅"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특성이 모두 다르기에, 괜찮은 사람을 분별할 수 있는 찬스이기도 해요. 붐비는 프랜차이즈 까페가 아닌, 멋진 로컬까페로 장소를 바꾸는 것, 식사 시간이기에 함께 식사하면서 좀 더 깊은 대화를 해 보는 것 등의 기본적인 매너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드러나요.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공감하시게 될거예요. 기대해주세요. 



테라스가 있는 까페에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니, 딱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고 어느덧 날이 추워졌다. 그는 자리를 이동하자고 제안했고, 그 자리에서 검색해서 두 개 정도의 옵션을 제시했다. 물론 이 정도의 센스만 봐도, 그는 괜찮은 사람이 분명했는데, 그날이 필자의 생일이라고 밝히니 "정말 좋은 곳 가야겠다."라고 말해주었다. 선물같은 만남이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엿볼 수 있는 배려심은, 연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래 그런사람임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담배꽁초 가득한 강남의 거리를 가로질러 가는동안 차가오는 도로 쪽에서 나를 안쪽으로 배려하거나,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수많은 신호들, 그런 것들이 나에게도 상대에게 오롯이 집중할수 밖에 없도록 했다. 이성적인 끌림과는 조금 달랐다. 참 괜찮은 사람을 만났을 때,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충분히 보여주고 싶은 그런 긴장감이었다. 


소개팅 명소인지 어색하지만 훈훈한 분위기가 감도는 수만은 커플들이 있는 그 곳에 도착했고,  두 세시간 동안 함께 음식과 와인, 후식을 나누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동갑이었기에, 우리의 계절에는 어쩐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었고, 좋은 친구를 만났을 때의 흡족함이 감돌았다. 참 열심히 살아온 그와 나. 모든 것이 훈훈한 시간이라 느꼈는데, 마동석이 나오는 영화의 개봉일정을 이야기 하다가, 함께 보러가자라는 이야기를 그가 했다. 애프터신청인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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