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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쑥 Oct 23. 2022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마음이 쓰릴 땐, 브런치에서 쉬어가세요.

#결혼정보회사 #미팅 #불토 #쓰리다



브런치에 자주 들르고 싶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또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하지만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자주 오진 못하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난 이야기꾼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커피 한 잔과 함께, 지금 시각, 05:57 am,


최근 재미있게? 보고 있는 나는 solo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엿볼 수 있다. 

그대 라이팅, 나 좋아하지 마세요, 나 삐졌어, 아무나 걸려라 등등. 상식적으로 상대를 눈앞에 두고 저런 말, 행동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여기게 되는 다소 판타지적인 요소가 자주 등장하기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어딜 가나 나는 솔로 안보는 사람이 없다.


나는 오늘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고, 코미디에 비유하자면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스토리를 몸소 겪었다. 살면서 다들 그런 순간이 있겠지. Why me...


결정사에 등록한 지 어언 5개월이 지났고, 아직 딱히 인연이랄만 한 만남이 없었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딱 한 명만 찾으면 되니 여유를 갖자, 마음을 다잡고 다잡아왔다. 그래서 오늘도, 한 껏 부푼 마음으로 상대에 대한 예의를 차린다고 헤어숍도 들르고 정성껏 꾸미고,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인 강남까지 나갔더랬지.



첫 번째 상대.

사실 하루에 두 명을 만나는 것은 스스로 피곤하기도 하고, 당최 이것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납득할 수 없어 매니저에게 거부감을 표현했었지만, 몇 번 나가다 보니 여기 시스템 자체가 그런 것이기에 상대들도 차 한잔 하고 일어나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고, 하루에도 두 건 세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그냥 그러려니, 체념 상태가 되었다. 


대기업 엔지니어라는 그는 멀끔했다. 겉으로는 그랬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은 나의 인생 전반에 걸쳐 발현되었는데, 오늘의 주제는 '자기모순'이라 명명하면 딱일 듯.

우선 여성 입장 - 같은 종교이고(특히 '신앙심이 좋다'라고 기재되어 있는 부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다소 기대를 하고 나갔지, '혹시 인연일지도 몰라'), 또래여서 다른 건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감


남성 입장- 본인 입으로 '신앙심 下', 부모님이 등록함. 기독교 여자만 만나고 싶음. 그러나 직업 좋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음. 학교는 안봄. 포르셰는 곧 살 것임.  등등


북클럽을 한다든가, 운동 취미가 있다든가, 애주가라든가 좋다 좋아, 취미며 무엇이며 말이 잘 통한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 겸손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SK ****, 좋은 회사지, 연봉 괜찮겠지. 주재원도 다녀왔구나, 집안 재력도 80억 정도, 요지는, 그래서 본인 눈에 차는 여자는 교회에 절대 없다, 기독교 중에도 없다.

(이게 무슨 논리지? ) 


일단 눈앞에 앉아있는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뇌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하는 타입이랄까. 학교 안 본다는 포인트에서 특히 푸흡. 같은 해에 수능을 쳤던 입장에서, 상대의 학력에 대한 감이 있을 텐데... 이것도 자신감이라고 치자. 그런데 결정사에서 계속 연상을 소개해준다느니, 주재원 가기 전에 일주일에 20개씩 들어오는 소개팅을 했었어야 한다느니... 이런 이야기들을 아무 여과 없이 해주어서 정말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조목조목 따지고들 자면, 할 말이 태산이었지만 굳이 댓글 달아주고 싶지 않은 마음. 혹여나 다음 만남에 도움이 될까 봐. 



두 번째 상대

사실 프로필 단계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매니저에게 말을 해두었다. 그런데 몇 번이고 밀어부쳐서 만나게 도니 상대이다. 이럴 땐 커플매니저들에게 회원들은 일종의 '카드'가 아닐까, 그 안에서도 상부상조. 일단 사람 인연 어찌 될지 모르고, 프로필만으로 모든 걸 판단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응했다.

결과는? 

시간낭비. 


상대의 입장 - 결정사에서 정말 많은 상처를 받음. 모든 조건이 뛰어난 남자들에게 만남이 몰리는 것 같음(자가진단 - 본인은 하위등급), 처음엔 꾸미고 뒤에 약속 없이 나왔지만, 상처받은 이후로는 노력을 내려놓음(이 말할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난 정말 편견이 없는 편이다. 상대의 외모, 학력, 능력, 재력 이런 조건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나 역시 그렇게 판단되어도 좋다는 의미이기에. 하지만 이 분은, 실컷 상처받았다고 이야기하고 그러므로, "나는 저녁 약속이 있다."라고 결론을 지었다. 5pm에 만났고,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했고, 딱 저녁시간이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전날 미리 인사하고 싶었다며 친근한 문자까지 보냈던 그.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잘해보려는 마음이 있기는 했던 걸까. 아니면, 본인의 저녁 약속을 과시하며 차 한잔 하고 그 자리를 뜨는 것으로, 지난날의 상처를 치유하고 좌 함이었을까. 분명한 건, 이 시스템은 수많은 상처와 시간낭비를 양산한다. 


참으로 씁쓸하다. 

내가 아무리 상대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여 두 시간 텀으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뒤에 약속을 만들어놓지 않아도

정성을 다해 꾸미고 나가도

상대에게 상처를 줄까 봐, 기분이 나쁠까 봐 언어와 행동에 신중을 기해도

돌아오는 것은 비상식적이니까. 오늘도 내 시간이라는 자원은 이렇게 소모되었다. 


마음이 쓸쓸할 때, 브런치에 온다. '임금님 귀 당나귀 귀'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혹여나 결정사를 하고 계신 분들이, 할 예정인 분들이, 혹은 하셨던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많은 부분 공감을 할 것이다. 오늘의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대우받고자 하는 대로 상대를 대우하자라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정말 이곳에서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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