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닌 것으로 칭찬 듣는 일
커머스는 매출을 일으키는 부서가 주요 부서다. 사실 이윤창출이 존재목적인 기업이라면 어디나 그럴 테다. 이전에 뉴미디어에 다닐 때도 그랬다. 대표는 브랜드를 고객사로 삼는 제작팀을 언급하면서 우리 팀을 ‘저쪽팀에서 벌어다준 돈으로 일하는 팀’으로 취급했다.
뉴미디어에서 대표의 발언이 눈치를 주는 차원이었다면, 브랜드사에서는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생각해 보면, 기업은 모두가 같은 일을 하려고 만든 조직이 아니다. 브랜드라는 인격체가 잘되길 바라되 누군가는 수족을, 누군가는 눈을, 누군가는 혈관을 맡을 뿐이다.
나는 콘텐츠팀이었고, 매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변방 부서의 장점은 명확하다. 간섭받지 않고, 자율권이 확보된다. 단점도 명확하다. 잘하고 있는 건지 종종 의심이 든다. 3년 차쯤에는 매주 기획회의가 두려웠다. 여기서 뭘 더 만드냐! 하는 게 주된 속마음이었다. 그러다 외부 활동에서 힌트를 찾았다. 소셜 커뮤니티에서 한 활동을 브랜드에 접목시켜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했고, 그 덕에 캠페인 성격으로 진행된 오프라인 모임도 주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취의 감각은 오래(생각해 보면 성취란 일주일도 못 가는 감각이었다) 가지 못했다. 자주 ‘나도 조직에 기여분이 선명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기여치를 증명하고 싶었다면, 보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 나는 오롯이 혼자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데이터 분석은 공부하지 않았다)
핵심 부서가 되고, 핵심 인력이 되고, 수치화된 성과를 말하기. 이를 위해서는 자사몰 MD와 꾸준히 협업하고, 데이터 트래킹만 했어도 좋았으리라. 제품이나 기획전을 콘텐츠와 연계한 몇 번의 시도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대개 단건으로 진행되었다. 나 역시 당장의 콘텐츠 발행에 급급해 커머스-콘텐츠 연계의 지속적인 고민은 하지 못했다.
아무튼 매출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거시적 차원에서는 사업에 대한 생각을 했다. 전방위인 일이 추후 내 사업체를 꾸릴 때 좋으리라는 짐작을 했다. (사주에서는 사업을 하지 말라는데) 그렇게 PM이라는 직무에 눈독을 들였다. 지금도 이 같은 사고의 흐름에는 순순히 끄덕이게 된다.
내밀하게는 에디터라는 직무에 특화된 삶이 이후 내 커리어를 제약할 거라는 두려움도 컸다. 언제나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을 들여다 본다. 이때는 몰랐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 약점과 결핍에서 출발한 직업을 갖는다는 건 매일이 자기확신과 증명을 요구한다는 것을.
어쩌면 이 모든 고민은 ‘인정받고 싶었다’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인정욕구는 모두에게 있다. 그러나 인정욕구를 채우는 수단은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나는 ‘타인에게 가시적으로 소용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을 택했다. 이는 조직에서 매출을 내는 직무로 귀결됐다. 그렇게 교육업을 하는 기업에 입사해 PM이 되었다.
중요한 점은 어느 조직이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매번 인정받을 순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해내더라도 제때 PR을 하지 못하면 가볍게 지나갈 수도, 나날이 고생만 늘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매번 인정을 갈구한다면 그만큼 피로한 직업 인생도 없다. 인정은 ‘때때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인정받았어야 했다.
PM이라고 당장 매출을 냈을까? 그럴 리 없다. 교육과정의 사이클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기획에 앞서 운영 업무부터 투입됐다. 매일 하는 배송이었으나, 어느 날 출고가 누락됐다. 실수가 발생한 지점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어드민 시스템상 주문완료와 결제완료간 간극에서 유실되는 데이터를 발견했다. 개발팀에 결제완료순으로 데이터 추출을 요청했다.
이날 부로 해당 직장에서 가장 자주 들은 칭찬은 ‘꼼꼼하다’였다. 하지만 난 자신을 알았다. 난 꼼꼼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완벽하게 해내는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글을 쓸 때도 ‘이만하면 됐지’ 했고, 나중에도 ‘이때는 이게 최선이었어~’하는 식이었다. 완벽함은 <내 속성>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칭찬을 들으면 째지는 기분 대신 한숨 돌리는 자신을 보았다.
성장이란, 더 나은 성과를 내서 더 많은 권한을 갖는 것. 올해 참여했던 트레바리의 비즈니스 모임에서 모임장 님이 한 말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난 얼마나 성장하기 용이한 상태에서 멀어져 왔는가. 에디터 업무는 매출이 아니었을 뿐, 매주 트래픽과 반응률을 보고했다. 스크롤 뎁쓰를 분석할 수도 있었다. 이에 선행되어야 할 콘텐츠 내실은 자신 있었다.
‘꼼꼼하다’를 칭찬으로 듣는 상황에서 내 성과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하지만 빠진 블록이 정해져 있는 난제가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저 정답이 정해진 낱알 고르기 아닐까. 5년 전 읽자마자 마음 속 고전이 된 나쓰메 소세키의 <나의 개인주의> 얘기를 해야겠다. 소세키는 한 사람이 자기실현을 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만약 팔 수 있는 곳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평생 불유쾌하고 시종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회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결국 우리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구나>하는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때야말로 ‘여러분의 일과 여러분의 개성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비로소 “아 여기에 내가 안주할 자리가 있었구나!”하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저 자신의 안심과 행복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나는 안주할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온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자신에게 선(good)이 됨으로써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어야 했다. 자기 효능감을 찾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테다. 나는 당장에 사람들이 찾아주는 일을 택했다.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고, 또 했다. 매출 내기가 핵심인 부서에서 조직의 목표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했는가. 대대적인 마케팅이 끝나고 매출이 나왔을 때 파트장은 내게 ‘기분이 어떻느냐’고 물었다. 질문에 답은 정해져 있었다. ‘뿌듯하다’ 따위의 만족스러운 대답을 원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오 매출이 나왔네요’하고 기계적 답변을 했다. (배경은 앞서 ‘커리어 미아 시리즈’ 1편 – 트리거가 부른 퇴사 편을 참고) 결과가 어떻든 과정이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콘텐츠를 만들 때도 콘텐츠가 확산되고, 반응률이 좋을 때 분명 기분 좋았지만, 짜릿함의 근원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탈고의 마지막 순간, 콘텐츠에 달린 댓글(좋아요 아님)과 리포스팅, 혹은 콘텐츠에 대한 선후배의 피드백. 다 정성적인 것들이었다. 나는 뼛속까지 정성적인 인간이었다. 이는 아웃풋을 생산하는 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배경과도 맞닿는다.
조직에의 매출도, 타인의 ‘꼼꼼하네요’라는 인정은 자기 효능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저 ‘남들에게 내가 쓸모있구나’하는 쓸모를 느끼는 데에 그쳤을 뿐이다. 어긋난 지점에서 타인과 조직에게서의 효용을 찾은 나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게 내가 원하던 그림이었나?
회의감을 뿌듯함으로 교체하려면 역량을 십분 발휘한 아웃풋으로 소비자 혹은 독자, 조직에 쓸모있음을 얻어내야 한다. 현 시점에서 PM이라는 직무에 맞고 안 맞고를 가늠하기엔 이르다고 본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늘어놨지만, 이번 경험으로도, 이전 직장에서 얻은 유의미한 경험도 있다. PM이라는 직무 자체의 회의감은 부적합하다.
대신 이렇게 정리해 보면 어떨까. 나는 생각보다 꼼꼼하게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지만, ‘철저한 수행’이 내 동력이나 장기는 아니라고. 결과에 흡족하려면 무엇보다 절차가 중요한 사람임도 깨달았다고. 나중에 어딜 가든 찬찬한 디벨롭이 가능한 업무 환경과 자율성이 주어진다면, 괜찮을 거다. 내 강점을 발휘되는 조직을 찾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로서 빛나는 자리’를. <3탄에서 계속>
타인 효용과 자기 효능을 헷갈릴 때 : Lesson Run 2.
-인정욕구를 채우는 길에는 타인에게 당장 쓸모있는 인간이 되는 길과 나 자신에게부터 유익한 인간이 되는 길이 나뉜다
-타인과 조직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도, 그 과정이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으면 이는 자기효능감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자기효능감을 발휘하는 최선의 길은 동기를 자극하고 장기를 발휘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자기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고 최소한 동기를 해치지 않는 환경이 필요하다
제목 이미지 | Jason Goodman @unsplash
마지막 이미지 | freddie marriage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