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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 Dec 29. 2020

연어초밥의 극적인 의미

극적인 하룻밤 (2015)

연어초밥을 다 드셨네요?


어느 결혼식 피로연장의 일식 코너.

뷔페 접시에 맛깔스러운 초밥을 하나씩 주워 담고 있던 정훈(윤계상)이 제일 좋아하는 연어초밥 하나를 냉큼 집어 먹는 순간, 시후(한예리)가 대뜸 시비조로 구박을 합니다. 정훈이 혼자 그 많은 연어초밥을 다 먹은 것도 아니고, 연어초밥은 처음부터 요리대 위에 달랑 하나뿐이었는데도 말이죠. 연이어 시후는 '결혼식은 보고 먹으러 왔냐'며  정훈을 구박하는데요, 정훈은 사실 결혼식을 보러 온 게 아니긴 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가 실은 정훈의 전 여자친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이사 결혼식을 보거나 말거나 웬 상관이냐 싶은데 놀랍게도 시후는 정훈을 아는 모양입니다. 정훈과 오늘의 신부인 주연(박효주)까지, 예전에 함께 인사동에서 막걸리를 마신 적 있다고 주장하는 시후. 하지만 정훈이 그런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자 시후는 다시 연어초밥 구박 모드로 돌아갑니다. 방금 정훈이 다 먹어치운 연어초밥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고 말이죠. 아니, 먹을 게 차고 넘치는 뷔페 코너에서 마지막 하나 남아있던 연어초밥 좀 먹었다고  '책임'을 지라니 이게 대체 무슨 경우인가요? 다른 먹거리도 많으니 먹어보라는 정훈의 권유에도 시후는 거절 모드를 고집합니다.  '육회'는 '포유류'라서 안 먹는다고 하고,  '해삼, 멍게, 개불'까지 다른 신선한 해산물들도 전부 다 싫다고만 합니다. 무조건, 오로지, 연어초밥이 먹고 싶다는 시후. 그녀의 기괴한 고집부림에 기가 막힌 정훈은 마지못해 명함을 건네주며 일단 이 상황을 수습해보려 합니다. 


일단 정훈은 다음에 연어초밥을 사주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급하게 피로연장을 빠져나왔는데요, 웬걸 주차장까지 정훈을 쫓아 나온 시후는 음주운전을 하려는 정훈의 차키를 빼앗아 대리운전까지 해주겠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시후의 진짜 의도는 '연어초밥'이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유정훈이라는 바로 이 남자를 먹... 아니,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것 아닐까요?


영화 <극적인 하룻밤> 스틸컷




영화 <극적인 하룻밤>(감독 하기호)는 사랑하고 싶지만 두려움이 앞서고, 연애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는 이 땅의 청춘남녀들에게 ‘현실’ 연애에 대한 공감과 고민을 동시에 던져주고 있습니다.


정훈과 시후는 무려 10개의 커피 쿠폰 도장을 찍으며 이른바 '몸친'으로서 뜨거운 만남을 이어나갔지만 아쉽게도 그 후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는데요, 그 이유는 정훈이 일종의 '연애 도망자'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직업은 '의사'가 아니라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일뿐이고, '마이너스 통장에 카드론, 지잡대' 출신인인 쥐뿔도 가진 게 없는 청춘이기에 연애조차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정훈. 그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삼포세대'였습니다. 


삼포세대(三抛世代)는 연애와 결혼,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한 세대를 일컫는 대한민국의 신조어. 한국의 많은 젊은 세대들은 생활비 증가, 등록금 지불, 그리고 적당한 가격의 주택 부족과 같은 사회적 압박과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이 세 가지를 포기했다. - 출처 : 위키백과 -


한창 썸 타던 정훈이 끝내 연애를 포기해 버리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 다시 솔로가 되어버린 시후. 그녀는 결혼정보업체에 미리 돈까지 다 내놓은 엄마의 등살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맞선을 계속 보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스펙 좋고 잘 나가는 남자들을 만나도 웬일인지 정훈이만큼 호감이 가는 남자는 없었습니다. '적당히 등급 좋은 남자 만나서 맘 편하게' 살라는 커플매니저의 말에 시후는 '등급이 밥 먹여주냐'며 당차게 반박도 해봤지만 그런 현실을 부정하긴 힘들다는 건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겠지요.   


연애는 정규직 직장인들이나 맘 편하게 할 수 있고, 결혼도 등급에 맞는 사람들이나 맘 편하게 할 수 있는 세상. 정훈과 시후에게 극적인 깨달음을 준 사람은 뜻밖에도 연애 갑질의 끝판왕이자 사랑의 원수였던, 준석(박병은)이었습니다. 돈 잘 버는 의사라는 직업 덕분에 연애할 때도 자기 맘대로 실컷 하고, 결혼도 자기 맘대로 등급이 맞는 여자와 했지만 하필 음주운전까지 자기 맘대로 하는 바람에 젊은 나이에 아까운 생을 마감한 준석. 그런데요, 생전에 준석이 했던 독설들과 그의 죽음을 통해 정훈은 뜻밖에도 한 가지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남들보다 스펙이 딸리고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과의 연애를 포기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도망쳐서는 안 된다는 것. 연어가 목숨을 걸고서도 힘들고 어렵게 강을 거슬러 돌아오는 이유도 사랑을 나누고 산란을 하기 위해서이거늘, 하물며 인간인 우리가 힘들고 어렵다고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해 버려선 안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영화 속에 자주 나오는 연어초밥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요?


사진: Unsplash의 Felippe Lo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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