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2006)
어우, 배고파. 맛있는 것 좀 해놨어?
혼자 분식집을 운영하며 똑 부러지게 살아가던 미라(문소리)의 집에 5년 만에 동생 형철(엄태웅)이 찾아왔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형철을 보자 미라는 마치 집 나갔다 돌아온 탕자를 보듯 너무나 동생이 반가워 가슴이 메이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요, 재회의 기쁨은 잠시뿐. 형철은 집 나갔던 동안 결혼을 했다면서 아내를 데리고 왔는데요, 그 아내라는 사람이 범상치가 않습니다. 무신(고두심)의 나이는 거의 이모뻘인 데다, 어딘가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듯한 올드한 인상의 여자를 올케로 받아들여야 하다니. 미라 입장에서는 정말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형철은 자연스레 아내인 무신과 함께 미라의 집에 식충이 빈대처럼 계속 들러붙어 얹혀살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데요, 설상가상! 며칠 후 또 한 명의 불청객이 미라의 집으로 찾아옵니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그 소녀의 정체는 '무신 씨의 전 남편의 전 부인의 딸'이라니! 마음 착한 미라도 이번에는 정말 뒷목을 잡고 쓰러질 판입니다.
어느 누가 이런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결국 미라는 형철과 무신, 그리고 누구의 딸인지도 모를 어린 소녀까지 모두 집에서 내보내려 합니다. 하지만 맘 약한 미라에게는 누굴 야박하게 내쫓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미라의 그런 심성을 잘 아는 형철이 밥 먹다 말고 갑자기 큰 절을 하더니 애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제발 좀 거두어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시집도 안 간 처녀에게 남의 딸을 키우라니. 미라는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고, 무신도 입을 굳게 다물고만 있습니다. 결국 설득을 포기한 형철은 미라의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 꺼내 들고 소주 한 병 사 오겠다며 말합니다. 그리곤 뭐 먹고 싶은 거 없냐며, 무신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 오겠다며 집을 나서는 형철.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해 도망치듯 나간 형철이 이 집으로 다시 돌아 올린 없습니다.
결국 이 집에 남겨진 무신과 집주인인 미라는 남은 밥을 마저 먹기 시작하는데요, 두 사람 사이로 어린 여자아이가 뛰노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듯한 묘한 장면이 연출되는데요, 이 장면은 제가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식탁 장면으로 꼽는 명장면입니다.
늘 혼자 밥을 먹던 미라는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누군가 앉아있는 것이 그리 싫지 않습니다. 마땅히 갈 데도 없는 무신은 평범한 집의 거실에서 따뜻한 집밥을 먹는 것이 내심 좋습니다. 친부모한테 버림받고 양부모한테도 버림받은 어린 채현은 자신을 지켜봐 주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습니다. 그리고 미라와 무신은 마당에서 뛰노는 채현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왠지 배가 부릅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사람이 밥상 앞에서 가족으로 탄생하는 기묘한 순간입니다.
영화 <가족의 탄생>(감독 김태용)은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우연히 가족으로 맺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인 <가족의 탄생>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국어사전(네이버)에 나온 가족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가족 : [명사]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사전적 정의와 연결 지어 봤을 때,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미라와 무신은 채현을 '입양'하면서 모녀 사이라는 가족으로 탄생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선경과 경석은 아빠는 다르지만 엄마가 같다는 '혈연'으로 인해 남매 사이라는 가족으로 탄생하였고요,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채현과 경석은 두 사람이 '혼인'을 하게 된다면 부부 사이라는 가족으로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보통 가족이라 하면 '피가 섞인 혈연관계'의 사람으로만 한정해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영화는 가족의 범위에 대해 좀 더 폭넓게 생각하기를 권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의 가족은, 가족이란 단어보다는 식구(食口)라는 단어가 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식구 : [명사] - 1.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서로 부대끼며 갈등하며 살더라도 끼니때가 되면 식탁 앞에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식구. 그게 바로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아닐까요? 그리고 식구들과 함께 삼시 세끼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