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4)
뭐, 오코노미야끼? 그런 거까지 하려고?
신혼집 주방에서 새댁 미영(신민아)이 열심히 ‘오코노미야키’를 만들고 있습니다. 거실에선 새신랑 영민(조정석)의 친구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술판을 벌이고 있는데, 그녀 혼자 주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유는 갑자기 ‘집들이’를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을 꿈꾸는 9급 공무원 영민과 미술학원 입시강사 미영. 4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두 신혼부부가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만끽하고 있긴 했지만, 남편 친구들과의 갑작스러운 집들이를 흔쾌히 허락할 아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미영은 절대 안 된다고 반대를 했지만 친구들 앞에서 아내에게 잡혀 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영민은 ‘오코노미야키’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집들이를 강행하고 맙니다.
갑작스럽게 집들이 준비를 하다 보니 부랴부랴 족발과 중국음식을 배달시키고, 남편 영민이 잔뜩 너스레를 떨어놓은 탓에 ‘오코노미야키’도 손수 만드느라 혼자 바쁜 미영. 그녀가 주방에서 혼자 음식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 영민의 짓궂은 친구들은 신혼집 거실에서 온갖 진상들을 부리고 앉았습니다. 남의 결혼 기념 액자를 꺼내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지를 않나, 시끄러운 노래를 부르며 보기 민망한 막춤을 추지 않나, 설상가상 남편의 ‘여자 사람 친구’라는 승희는 샹송까지 불러 젖히고 앉았습니다. 미영의 불편한 심기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기 직전, 다행히 영민이 주방에 와서 고맙고 사랑한다며 미영을 달래줍니다. 근데 딱 거기까지만 하면 좋았을 텐데, 영민은 꼭 쓸데없는 말을 해서 미영의 심기를 건드립니다. 여사친 승희가 뉴욕 일식집에서 먹었던 것보다 미영이 만든 오코노미야키가 더 맛있다고 했다는, 정말 쓰잘데끼 없는 말을 전달하는 영민.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납득이 안되죠, 납득이?
그 후 남편의 여자 사람 친구라는 승희가 왠지 눈에 거슬리는 미영. 그때, 영민의 친구들이 다가와서 미영에게 노래 한 곡 하라고 요청합니다. 다행히 남편 영민이 나서서 ‘노래 못 한다’고 막아주려고 하는데요, 하필 승희까지 나서서 ‘못하는 데 시키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며 도발하자 열받은 미영은 결국 날계란까지 하나 까먹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첫 도입부터 음정 박자 다 무시하고 잘 부르지도 않았지만 그럭저럭 꾹 참고 들어줄만했으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미영의 노래가 ‘삑사리’ 나자 결국 웃음보가 터지고 만 남편의 친구들! 그런데 그 와중에 제일 크게 웃는 놈이 남편 영민이라니!! 이놈에 남편은 집에서 쫓겨나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난 모양입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지나간 후,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집들이 현장. 이 모든 참사를 불러온 원흉인 남편 영민이 팔을 걷어 부치고 설거지를 시작합니다. 잠시 후 미영이 자다 깨서 나와 보니 말끔히 치워져 있는 거실과 주방. 그제야 미영의 화도 조금은 풀립니다. 샤워하는 남편의 속옷을 욕실 앞에 준비해 놓고, 거실과 주방 바닥을 청소하며 집들이 때 실수했던 노래를 다시 불러 보는 미영. 그리고 그런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남편은 화장실 거울에 손가락으로 ‘사랑해 미영’이란 글귀를 써놓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이 부부싸움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은 이유는 아직까지 두 사람은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짜장면 두 개만 주세요
서울 정릉의 한 중식당. 모처럼 신혼부부가 극장 데이트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왔는데요, 미영이 '게살스프랑 깐풍기랑 탕수육' 같은 비싼 음식들을 시키려고 하자 바로 딴지를 걸고는 '짜장면 두 개만' 시켜버립니다.
아내가 맛있는 거 좀 먹겠다는데 영민이 쪼잔하게 구는 이유는 조금 전 영화관에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민이 영화표를 뽑으러 간 사이, 미영은 같은 학원의 후배 강사를 우연히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는데요,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영민은 저 혼자 온갖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질투의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던 것이죠.
저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놓고 저 혼자 아내에게 삐쳐버리고 만 영민은 식사를 하러 갔을 때까지도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민의 그런 속마음은 전혀 알 리 없는 미영은 주문했던 짜장면이 나오자 얼른 비벼서 먹기 시작합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무나 맛있게 짜장면을 먹는 아내의 모습이 영민의 눈에는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습니다. '남편 앞에서 결혼한 여자가 외간 남자 보고 좋다고 시시덕거린 주제에 돼지처럼 더럽게도 처먹는' 것처럼 보일 정도니까 말이죠. 그렇게 마음속으로 험한 욕을 해대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영민은 결국 미영의 얼굴을 짜장면 그릇에 푹- 처박아 버리고 맙니다. 설상가상 미영의 얼굴에 짜장 소스 더 묻으라고 그릇을 한 바퀴 돌리기까지 하는 영민. 아내에게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도 이놈에 남편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요?
왜 라면을 먹어?
밥 해놨는데 데워먹는 것도 못해?
사소한 다툼을 유야무야 넘겨가며 그럭저럭 살아가던 어느 날, 두 부부는 처음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온 미영이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 남편 영민을 보자 그만 짜증을 내고 맙니다. 퇴근한 남편 먹으라고 바쁜 와중에 밥까지 다 해놓고 외출을 했었건만, 정작 밥은 안 먹고 라면이나 끓여 먹고 앉아있는 남편을 미영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요. 하지만 영민은 미영의 속을 더 긁는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전화는 왜 계속 안 받았으며, 장모님이 갖다 준 '파김치'는 대체 어디 있냐고 말이죠. 어이가 없는 미영은 고작 그것 때문에 계속 전화했었냐며 짜증을 내고 영민은 그런 아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서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벌어진 두 사람의 부부싸움은 결국 상대방의 외도를 의심하는 수순으로까지 나아갑니다. 급기야 먹다 남은 간식 그릇을 아무 데나 놔두는 남편에 대한 짜증까지 차오르자 미영은 결국 부부간에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맙니다. '딴 집 남자들은 자기가 먹은 거 자기가 치운다'라고 말이죠. 그 말에 발끈한 영민 또한 해서는 안 될 말로 응수를 하고 맙니다. '그런 놈 만나 살아'라고 말이죠. 말을 하면 할수록 서로의 감정만 더욱 상하게 만드는 두 사람.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 원인이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로 물 베기’라는 부부싸움은 아내 미영의 울음과 남편 영민의 사과로 결국 끝이 나고 맙니다. 남녀 간의 싸움에서 거의 항상 등장하는 전형적인 대사와 함께 말이죠.
남자 -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여자 - 뭘? 지금 뭘 잘못했는데?
내 입맛은 아니다
시인 등단 이후 들어온 청탁 원고를 쓰느라 바쁜 영민에게 미영이 잘 차린 저녁상을 권합니다. 요리책까지 봐가면서 '조미료 안 넣고 건새우 갈아서' 음식들을 만들었으니 아내는 남편의 입에서 ‘괜찮다’ 거나 ‘맛있다’ 거나 하는 말을 듣고 싶었건만 영민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겨우 '조미료 팍팍 넣으라;는 말이었습니다. 한국사람이 왜 조미료를 아끼냐고 말이죠.
아내가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도 마다한 채 급한 원고를 써야 한다며 식탁을 떠나는 남편이 야속하기만 한 미영. 어쩔 수 없이 혼자서 꾸역꾸역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요, 왠지 미영의 안색이 영 좋지가 않습니다. 요새 자꾸만 배가 아프다는 아내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영민은 결국 그날 밤, 너무 아파 쓰러진 아내의 신음소리마저 듣지를 못합니다.
다행히 미영은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간신히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영민에게 너무나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결국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이혼’이란 단어까지 나오고 맙니다. 몸과 마음 모두에 큰 상처를 입은 아내 미영을 병원에 홀로 남겨둔 채, 집으로 돌아온 영민은 내일까지 넘겨야 할 원고를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영민은 매일 하던 입버릇 같은 말을 합니다. 미영에게 커피 좀 타달라고 말이죠. 하지만 몇 초가 흘러도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그제야 영민은 아내 미영이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내가 없는 집안이 이토록 적막하고 쓸쓸한 것이었는지를, 그날 밤 영민은 결혼 후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습니다.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감독 임찬상)는 대한민국 보통 부부인 영민과 미영이 부부간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멜로 로맨스 코미디입니다. 1990년 이명세 감독의 동명영화를 2014년의 현실에 맞게 리메이크 작품인데요, 원작에도 리메이크작에도 결혼생활과 부부관계의 리얼한 단면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식탁 장면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제가 결혼 전에 1990년 원작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과 결혼 후에 2014년 리메이크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도 참 많이 달랐습니다. 당연히 결혼을 하고 난 이후에 봤을 때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공감했던 영화였죠.
20세기 결혼식의 흔한 주례 말씀 중에는 이런 관용구가 있었습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 아껴주고 사랑할 것을 맹세하는가?”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말은 잘 쓰이지 않게 되었는데요, 그 이유가 꼭 이 관용구가 너무 촌스럽고 진부한 표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오래도록 부부가 사랑하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부부들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화 속에서 아내 미영은 남편 영민에게 이렇게 따져 묻습니다.
“너는 내가 밥 먹을 때랑 하고 싶을 때만 필요하잖아.
파김치 찾을 때만 내가 필요하잖아. 아니야?”
그런데요, 필요할 때만 아내를 찾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표출한 이 말속엔 아이러니하게도 부부 백년해로의 비결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 세 번 밥 먹을 때와 밤에 잠자리에 들 때, 그렇게 하루에 딱 네 번만이라도 남편이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다면, 그런 부부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하루에 단 한 번도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 땅의 거의 모든 남편들에게, 이 땅의 모든 아내들이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외롭다는 말이었어. 사람이 집에 혼자 있고 그런 게 외로운 게 아니야. 같이 있는데 진짜 외로운 게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