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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 Nov 01. 2019

남자의 마음에 점을 찍은 딤섬

달콤한 인생 (2005) 

아저씨 해결사죠?


서울 시내의 퓨전 중식당. 

디저트로 나온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희수(신민아)가 말없이 ‘딤섬’을 먹고 있는 선우(이병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당돌한 질문을 던집니다. 선우 입장에선 밥 잘 먹고 이게 무슨 김밥 옆구리, 아니 딤섬 옆구리 터지는 소린가 싶겠지만, 희수 입장에선 선우의 정체가 진심으로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녀의 애인인 '보스'의 말에 따르면 '그 아저씨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말이죠. 


조직의 이인자인 선우에게 젊은 애인의 감시를 부탁한 조직 보스(김영철)가 설마 그녀에게 그런 얘길 했을 리 없다고 믿는 선우. 희수를 처음 만났던 날 건네준 명함을 다시 상기시켜 주며 자신은 '호텔에서 일하고 있다'라고 강조하는데요, 선우의 눈치를 살피던 희수가 이번엔 더욱 당돌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도 하는 일은 해결사' 아니냐고 말이죠. 


그러자 선우는 낮은 목소리지만 약간 버럭 하듯,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어필합니다. 물론 호텔에서 일하는 선우는 조직에 해가 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깔끔하게 처리하는 '해결사'가 맞긴 맞지만 왠지 그녀에게만큼은 '무서운 해결사 아저씨' 대접을 받고 싶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정작 희수는 해결사가 아니란 선우의 강한 부정에 안심하기보다는 '재미없다'는 전혀 뜻밖의 반응을 보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 스틸컷


만약 이때 선우가 자신이 하는 '진짜 일'을 솔직하게 대답을 했더라면, 그래서 희수가 선우에게 혹시라도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됐더라면, 이 영화의 결말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희수는 선우에게 '오늘 혼자 밥 먹기 싫었는데 같이 먹어줘서 고맙다'며 자신이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을 구경해도 좋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선우는 뜻밖에 클래식 연주 장면을 직관하게 되는데요, 스튜디오 안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아름다운 희수를 바라보는 동안 선우의 가슴속에는 난생처음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감독 김지운) 은 보스의 여자를 향한 단 한 번의 감정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 한 남자가

조직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데요, 영화 속에는 모두 세 번의 중요한 식탁 장면이 나옵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선우가 혼자서 초콜릿 무스를 먹는 첫 번째 식탁 신은 그의 인생이 더 이상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스인 강 사장과 함께 ‘전복(全鰒)’ 요리가 먹게 되는 두 번째 식탁 신은 선우가 음식을 먹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결국 선우의 적이 되고, 그들로 인해 선우의 인생도 ‘전복(顚覆. 차나 배 따위가 뒤집힘)’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우와 희수와 함께 한 세 번째 식탁 신. 

이때 희수가 먹는 아이스크림은 선우가 그토록 갈망하는 인생의 달콤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식탁에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희수 앞에만 놓여 있습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의 초콜릿 무스 케이크 이후 더 이상 선우에게는 달콤한 음식은 허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선우가 먹고 있는 딤섬은 과연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걸까요?


‘딤섬’은 주로 중국 남부지역에서 점심 전후로 먹는 간단한 음식을 통 들어서 이르는 말인데요, 딤섬’의 한자는 아침과 저녁 사이의 끼니를 뜻하는 ‘점심’(點心)을 씁니다. 그런데 불교용어에서 유래된 이 말은  ‘마음에 찍은 점’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선우가 딤섬을 먹고 있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점이 찍히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청순하면서도 도발적인 매력을 가진, 희수라는 이름의 점 하나.


어쩌면 그때 선우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고, 그녀가 연주하는 첼로의 선율을 들으며,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를 바라보던 그 순간이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달콤한  순간이 될 것이며, 그의 마음속에 깊이 찍힌 희수라는 점 하나는 그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그의 마음속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임을 말입니다. 


딤섬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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