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 있던 상상력과 색채 감각을 톡 건드리는 고전 문학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트와 헤어지는 순간부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행에 가져갈 책을 고를 때면 그 여행의 콘셉트가 분명해진다. 아닌 척 하지만 의미 부여하며 사는 꽤 로맨틱한 사람이다. 쉬기로 했으니 소설을 읽고 싶었다. 시간으로 사치 부릴 땐 역시 고전이 좋겠다. 요즘엔 넉넉한 시간과 마음이 갖춰져야 문학이 읽힌다. 조급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 같아 조금 울적해진다.
어쨌든, 짐을 다 싼 뒤엔 책장에서 책 등을 훑고 몇 가지 책을 꺼내 문장을 읽어 본다. 첫 문장이 유명한 소설이 몇 개 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도 분명 그 안에 들어야 할 것이다. 잠자고 있던 상상력을 깨운다. 저 밑에 간신히 숨 쉬고 있던 색채 감각을 톡 건드리자, 인상주의처럼 거칠고 빛과 색으로 이루어진 풍경, 그런 게 잡힐 듯 그려진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를 온전히 완성하기 위해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만 같다. 작가만이 할 수 있는 강력한 논리. 수식과 과학으로 증명되어야만 '논리'라고 생각했던 내 편협한 논리가 부끄러워졌다.
묘사가 아름다워서 이름만 한국 이름이었다면 한국 소설로도 읽힐 만큼 단어가 예쁘고 구체적이다. 번역은 김화영 교수가 했는데, <이방인> 번역으로 한 때 논란이 되었던 번역가이다.
책 읽는 걸 그저 유희로 삼는 내겐 문단의 논란거리가 그다지 중요하진 않다. 불어를 모르는 나는 어쨌든, 모디아노나 카뮈의 글을 읽을 수는 없다. 번역된 글을 번역가의 문체로 읽는다. 잘 읽히고, 재밌으면 일단 된 거다. 결과적으로 번역된 이 책은 무척이나 재밌었다.
자아를 찾아가는, 빛바랜 추억을 찾는, 미래가 아닌 과거에서 나를 찾는... 같은 수식어가 이 책과 작가에게 붙어있다. 문단의 평가라고도 하지만 난 일종의 마케팅 문구라고 생각한다. 상을 준 지식인들이 그렇게 읽었다면 나도 그렇게 읽어야 하는가? 글쎄. 내게 이 책은 자아 찾기는 아니었다. 그저 색채가 가득한 그림 같았다.
희미한 조각 끝을 붙잡고 안갯속으로 차근히 걸어가는 '기'. 그가 정말 '페드로'였는 지는 끝내 알 수는 없다. 또 한 조각을 손에 꼭 쥐고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이동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주인공 '기'가 자신이 '페드로'였다는 걸 알아가기 위한 일련의 이야기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기'가 골목을 걸어갈 때 같이 걸어가고, 지긋이 창문 너머를 쳐다볼 때 같이 상상해 보는 것. 그걸로 이 책의 재미는 충분했다. 또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 것 같아 기쁘다. 모디아노의 <슬픈 빌라>를 주문했다.
"잠깐만... 그의 이름은, 저... 페드로였어요..."
우리는 비탈길 가에 서 있었다. 또다시 그는 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냈고 어떤 이상한 작은 도구로 그것을 소제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태어났을 적에 내가 얻은 그 이름을, 내 생의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불렀던 그 이름을, 내 생애의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불렀던 그 이름을, 어떤 사람들에게 내 얼굴을 환기시켜주었던 그 이름을 스스로 되뇌어보았다. 페드로. p. 100
지금도 황혼의 그 인적 없는 대로며, 뒤꽁무니로 불똥을 튀기던 보라색 소형 전기 자동차를 탄 드니즈와 계집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들 두 사람은 웃고 있었고 계집아이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 계집아이는 누구였을까? p. 159
흐린 녹색 벽의 방. 붉은 커튼이 쳐져 있다. 빛은 침대의 왼쪽 머리맡의 등에서 나오고 있다. 나는 그녀의 향수 냄새를, 약간 톡 쏘는 냄새를 맡는다. 눈에 보이는 것은 피부의 주근깨들과 오른쪽 엉덩이에 난 점뿐이다. p.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