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도 같은 고민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
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내가 어느새 소피가 되어버린 첫 문장. 이 문장을 읽고 기분이 좋아졌다. 개운했달까. 그녀의 세계로 초대된 기분, 낯선 세계지만 '소피'가 되었으니 무섭지 않았다.
우리나라 말로 쓰인 문학을 읽겠다 다짐한 한 해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다양한 방법으로 잘 쓰인 글을 많이 보는 게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같은 언어는 거칠 것 없이 몰입이 되어 좋았다.
장르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 추리 소설만 가끔 읽었지만, SF라니. 그런 건 영화로 보는 게 좋았다. 글로는 이해하고 상상해야 할 세계가 너무 커서 스토리에 집중하기 힘들었었다. 하지만 이런 편견 속에서도 책을 향한 자자한 호평에 너무 궁금해졌다. 워낙 잘 쓴 글이라고 하니, 읽는 맛은 보장이 될 게 분명했다.
꽤 두꺼운 이 책은 7편의 단편 모음이다. 장편이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세 번째 에피소드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그때까지 몰랐던 이유는 주인공과 소재만 달라졌을 뿐, 큰 세계관과 캐릭터의 배경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초엽이란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고 어떤 세계를 꿈꾸는지 와 닿아서 좋았다. 한 작가가 한 번에 주욱 쓴 글 같아서.
SF 소설이라 분류해야 할까? 내게 이 책은 장르로 치자면 '드라마'에 가깝게 느껴진다. 굳이 과학 지식과 세계관을 다 이해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말하고자 하는 건 다른 세계가 아닌 여기서와 같은 인간이다. 결국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좋았던 단편 두 작품과 몇 문장을 적고 싶어 이 리뷰를 썼다.
어쩌면 일상이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
나에게는 분명한 균열이었던 그 울고 있던 남자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p. 19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을 거야. p. 53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p. 54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두려웠을까. 그렇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엄마.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 씨. p. 267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정말로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건 단지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느 쪽을 믿고 싶은 걸까? p. 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