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만으로도 30.
러닝 꾸준히 하니까 페이스가 높아졌다. 솔직히 덜 무리하는 상태라는 걸 아는데, 무릎이 아팠던 적이 있다 보니 무리하는 게 좀 무섭기도 하고, 그냥 천천~히 올리자는 생각이 든다. 즐겁게 오래 하는 게 목표다. 트위터에서 공감 가는 문장을 봤다. 6년 치 취미를 1년 만에 끝내면 5년을 손해 보는 거라고. 취미는 단계별 목표가 아니라 즐기는 거다.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로 3년 만이다. 자극은 러닝 크루 사람들의 멋쁨 + 무릎 부상으로 러닝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작한 유산소이다. 내가 즐기는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3년 만에 다시 시작하니, 동작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게 참 많다는 걸 깨달았다. 초급반에서도 진도는 쭉쭉 나가는 편이지만, 어서 평형하면서 오리발도 하고 싶다. 아침 수영 최고! 이태원 수영장은 참 재밌어.
다행히 내게 오래되고, 얼마든지 믿을 수 있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몇 있다. 오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멀어지기 마련인데, 아직 내 가까운 친구들은 결혼하지 않아서 그런지 언제든 불쑥 찾아가 술 한 잔 하고, 힘듦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여도 덤덤하게 받아줄 친구들이 있다.
참 시덥잖고, 여전히 지질하지만 또 예전보다 나아진 서로 모습을 보며 괜히 고맙기도 하고, 그냥 이런 친구가 내 친구라서 뿌듯하기도 하다.
결혼하면 멀어진다는데, 보내기 싫네. 나랑 같이 실버타운 가자...(이런 애들 특 제일 먼저 감)
또 새로 인연을 맺는 사람들도 많다. 이직한 지 8개월 정도 된 직장의 동료들, 달리면서 친해진 사람들과 그 와중에 좀 더 마음이 맞는 사람들. 사실 처음엔 러닝 하는 사람들이 너무 어색했다. 내가 익숙해하던 세계의 사람들이 아니라 생각도 행동도 모두 달랐다. 다행히 돌다리 똑똑 두드리며 그 세계에 발을 담가보니 위험하지 않아서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 이 세계의 관찰자 입장에서 주체자 되어가는 중. 그럼에도 몇몇 불편한 상황들은 있어서, 능숙해지는 법을 고민한다.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그 다름이 재밌고 흥미로워서 내게 주는 영향을 기꺼이 수용했는데, 역시나 버겁기는 하다. 다시 좁아지고 싶어.. 내가 안전한 선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다. 딜레마
고양이 수술은 중성화 이후로 처음이다. 200만 원이라는 큰돈도 들여 카레 발치 수술을 진행했다. 내 새끼가 가장 안전할 수 있는, 내가 안심할 수 있는 병원으로 겨우 예약했다. 그러다 다시 허피스가 터지는 바람에 꽤나 고생했다. 매년 생기는 허피스에 이제는 좀 익숙해져야 하는데, 또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아서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오히려 나보다 고양이가 더 침착한 듯..
수술은 잘 끝났고, 회복을 기다리는 중이다. 잘 버텨주고 바보같이 깨 발랄한 카레 덕분에 나는 걱정을 덜고 운동도 가고, 일상으로 빠르게 복귀했다.
어떻게 보면 토라진 후, 연락하지 않던 엄마와 6개월 만에 통화했다. 엄마는 들뜬 목소리였다.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잠시 멀어지고 싶어 했는지 다 알고 있었기에 서로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소소한 근황을 묻고, 그동안 그랬구나, 얘기했다.
지리적, 경제적으로도 완벽히 독립한 나는 가족과 밀착될 일이 크지 않다. 전적으로 사람은 독립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제야 보이는 나의 불편함, 소중함, 고마움 등이 있다.
아니 엄마는 1,200만 원짜리 시력 좋아지는 수술을 했더라. 뭐야, 나도 시켜줘...! (경제적 독립 안 하고 싶을 때 많음)
코로나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영화관을 갈 수 있게 되자, 영화관에 많이 갔다.
가장 재밌게 본 영화는 <탑건:매버릭>이다. 4DX로 두 번이나 봤는데, 솔직히 한 번 더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같이 봐야 재밌는데 내가 두 번 봤다니까 다들 같이 안 봐준다.
<헤어질 결심>은 곱씹을수록 재밌어서 세 번째 관람을 할까 생각 중이다. ‘연애 감정'을 떠나 ‘사랑'이라는 지독함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해본다. 잔인하고 섬세하다. 그냥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 이상으로 당신에게 상처를 내어서라도 남겨지고 싶다는 처절한 마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그리고 좋았던 건 이번에 알게 된 에릭 로메르 감독의 <녹색광선>과 <여름이야기>. 프랑스 우울함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된다. 이제는 우디 앨런의 무드는 우울을 흉내 내는 듯 힙스터병에 걸려 보여서 ‘우울' 그 자체를 주제로 삼아버리는 로메르 감독의 무드가 더 마음에 든다.
다 내려간 홍상수 영화를 보려고 정말 좋아하는 에무시네마를 몇 번이고 찾았다. 아, 행복해. 이곳을 너무 좋아한다. 에무시네마때문에 근처로 이사 오고 싶을 만큼.
여전히 어렵고 멀다. 돌아보니 내가 운동을 시작한 이유도 일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일 오래 하려면 체력전이라는 걸 깨달아서. 이제 주니어 티는 벗어났는데, 그때만큼의 뜨거움이 없는 것이 고민이었다. 매일매일 나 왜 이렇게 병신 같지? 자책하며 누구든 붙잡고 묻고, 어디든 찾아다니며 배우려 했던 날들이 있었다.
이제 그런 정도의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압박감이 느껴지면, 행동하면 된다. 그러면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했던 만큼 어느 정도 나아져 있다. 그러니 이 정도 스트레스를 다루는 법에는 스스로 믿음이 생겼다 해야 하나.
문제는 다음 단계로 가는 건 여전히 미궁 속이다. 주니어 때는 바로 다음 단계에 대한 힌트가 주변에 많았다. 책도 아티클도 강연도. 그런데 이다음 단계는 좀 베일에 쌓여있다. 그때와 다른 건 머리가 좀 굵어졌다고, 쪽팔림을 덜 감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쪽팔림은 한순간이지만 보상은 영원하리.. 뭣이 중헌디!
하반기에는 취미보다는 일 잘하는 데에 더 집중하려 한다. 그러려고 시작했던 운동이라. 하지만 가늘게라도 잡고 있어야 하는 생각은 있다. 10년 뒤에도 이 일을 하면서 돈을 (잘) 벌고 싶지만 내 인생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않기.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