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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om Apr 06. 2024

3월까지 읽고, 기록한 책들

3월까지 총 9권의 책을 읽었다. 작년엔 한달에 2권꼴이었는데 올해는 1분기 시작이 좋다. 아마 한국 문학을 접하다보니 술술 읽히는 영향이 큰 것같다. 올해 목표는 한국 작가 뿌수기다. 고전 문학 힙스터병에 시달리느라 사대주의에 찌들어있었는데 몇 년사이에 한국 작가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산산히 부서졌다. 온 몸으로 소화할 수있어 더 풍요롭다.


20살부터 책을 읽으며 늘 필사한다. 좋은 문장은 다 줍고, 꺼내먹을 수 있어야 한다. 필사를 못한 책은 좋은 문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소화가 너무 잘되어서 필사할 겨를이 없었거나, 출퇴근 길에 읽어서이다.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

진짜 너무 힘들었다. 사실 완독하지 못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고 감동에 벅차 바로 주문해서 읽었는데 깜짝 놀랐다. 이렇게 다른 책을 쓸 수가 있다니. 그는 글이라는 도구와 자신의 예술적 탐구력으로 꾸준히 시도하는 것같다. 정말 쉽게 읽혀지지 않는 책이다. 동일한 문장이 몇 페이지 넘게 반복이 된다. 강박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심리를 구조를 통해 그대로 재현해낸 듯하다.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

알라딘에 잠시 들렀다가 1시간 동안 반틈을 읽고 사서 집에 와서는 1시간만에 완독했다. 그는 간드러지고 수려한 단어들없이 정확하게, 그리고 긴장감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파과>를 당장 주문했다. 그녀를 디깅할 예정.



조니 톰슨의 <필로소피 팹>

간간히 알던 철학자와 그들의 철학을 간단하게 풀어놓았다. 목차를 잘 잡아 편집을 잘했다. 번역이 참 잘된 것 같은데, 한국 작가가 쓴 것처럼 문장이며 정서적인 면으로도 쉽게 읽힌다. 교양삼아 읽기 좋은 책

반항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는 의미심장한 행위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정의하는 순간이며, 그것만은 절대 빼앗길 수 없다고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 외치는 선언입니다.
라펠 뒤 비드, 허공의 매력
모든 것은 바래고, 상처입고, 시들고, 망가집니다. 그리고 아비사비는 모든 사물에서 그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물신숭배란 모든 사물을 교환 가치로만 보는 사고방방식과 가치 체계이며, 이 세계를 사용될 물건이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본다. 사회가 퍼뜨리는 '거짓말'은 모든 것에 가격이 있으며,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는 것.(...) 이런 거짓말은 모두 '문화산업'의 일부이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두꺼운데 재밌게 읽었다. 소재도 글도 참 이미지적이고 극적이라 영화로 만들기에 좋겠다 생각을 했는데, 영화화 확정 기사만 있고 그 뒤로 진전 소식은 전혀 없었다. 여러 이유로 무산되었나보다. 그 시점에 영화화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지금 다시 만들게 되면 아마 현 시대와 어울리기에는 여러 각색이 필요할 듯싶다. <윤희에게>가 생각날만큼 무척 서정적이나 지극히 남성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숲>의 한국 버전같았다. 다른 점은 여자 주인공이 '지독히 못생겼다'는 점이고, 같은 점은 그런 섬세한 '뮤즈'인 여성을 통해 남성이 그리움이 사무치다 성장한다는 지점이다. 뭐 어떤가, 예전엔 그런 남성들의 서사가 참 불쾌했는데, 요즘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은 참 지독히도 성장못했구나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여성을 통해 성장해야만 하는 그들과 또 그들에게 상처입으며 성장하는 여성들. 결국 우리는 비슷하지 않나 싶었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일 거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 p15
인간은 과연 실패작일까, 인간은 과연.. 성공작일까?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일까 (…)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p152
인생에 주어진 사랑의 시간은 왜 그토록 짧기만 한 것인가. 왜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왜 인간은 지금 자신의 곁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망각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p192
저는 당신에게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나라는 여자에게서 도망을 친 것입니다. p266
왜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런 이유로 우린 겨우 이곳에서의 외로움을 견디고 모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기대를 걸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포기를 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존재이다. p328


 

최진영의 <구의 증명>

작년 초에 보았던 <본즈앤올>과 큰 컨셉을 같이 한다. 너의 뼈까지 남김없이 먹을만큼, 너를 사랑해. 라던 본즈앤올의 이야기는 가히 폭력적이고 아름다웠었다. 충격적인 컨셉에는 그만큼 볼드한 서사가 필요한 점도 비슷하다. 웬만한 우여곡절로는 안된다. 게다가 정신병동에 넣어야만 할 두 주인공의 처절함이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해야하는데, 둘 다 그걸 해내었다. 추하고 불쾌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세상이 이해하지 못해도 그 둘만은 온전히 이해하고 이해할 수없더라도 받아들이고 사랑하면 되는 것. 그런 끈적이는 피맛을 입안에 움켜쥐고 살아도 너랑 함께여야 나는 내가 돼, 라는 광적인 사랑이어야 한다. 광적인 사랑. 앞과 뒤가 바뀌어도 말이 된다. 사랑은 원래 광적이다.


걱정하는 마음?
응, 그게 있어야 세상에 흉한 짓 안하고 산다. p110
우리 사이에는 ‘왜’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누나와 함께 있을 때면 나는 가끔 허공에 대고 물었다. 왜, 대체 왜, 당신과 내가 어째서(…) 이유가 필요했는데,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게 과연 사랑일까. p106
응, 그때… 노마 꿈이 되게 탐났거든. 그걸 다 잊고 살았는데, 며칠 전에 생각났어. 노마의 꿈, 그 꿈을 멋지다고 생각했던 거, 그때의 너, 그때의 나. 그런 게 갑자기 다 떠올랐어. 아주 선명하게. p171
그때 이모는 여름을 만들고 있었다. 여름을 만든다는 이모의 말만 기억날 뿐, 여름이 무엇인지는 까먹었다. p28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

작년 여름에 사서 올해 겨울 끝자락에 읽었다. 올 해 여름에 읽고 싶어서 아껴두었는데 이 아픈 겨울이 너무 지겨워서 여름을 미리 당기고 싶어 읽기 시작했다. 수수히 흐르는 표지에서 뜨겁기보단 잔잔한 여름 바다일거란 심상이 떠올랐었는데, 그게 맞았다. 유려한 표현과 문장이 아닌 수수하게 세공된 관찰력을 가진 작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흑설탕 캔디>가 가장 좋았다.


무. 당신의 집 거실에 적혀있던 글자처럼, 사실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그저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미욱해서 타인과 나 사이에 무언가 존재하길 번번이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걸까요. <여름의 빌라> p56
우습게도 느닷없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 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흑설탕 캔디> p201


 

장석주의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

나는 장석주 작가를 모른다. 단상을 담은 에세이 몇 편으로만 그를 언뜻 본다. 얼마나 학견이 넓고 깊은지, 영향력이 큰 지는 지금도 전혀 모른다. 다만 내가 어렴풋이 아는 그는 내가 좋아하는 점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가까운 친구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배적이고 자기 연민이 짙은 오래된 남성상이 느껴졌다. 취향과 문장은 세련되어 탐나지만, 모성을 그리워하는 고향으로 그리는 남성은 어딘가 불편하다. 이 또한 나의 편견일 수있지만 편견을 무릎쓰고 그의 책을 열심히 밑줄치고 있으니 이해해보려는 노력도 같이 하는 셈이다.

나는 에움길, 종이의 운명, 우연의 볼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평생을 읽고 쓰며 살았으나 끝내 아둔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p3
인생에서 구할 것은 죽는 모든 것을 감싸고 사랑하는 덕성과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아는 분별, 그리고 조용한 체념의 지혜다. p33
아름다움이 뭔지도 모른채 이 세상에는 온갖 아름다움이 흘러넘친다고 생각했다. p69
풋사랑의 서글픔이나 피맛나는 그리움에 대해서도.
어딘가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나는 나를 견딥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테다. p73
혼잣말로 외롭다, 외롭다고 하면 하늘에서 선물이 눈이 푸슬푸슬 내렸다.
우리는 사라진 시간과 상실들 위에 삶을 세웁니다. 돌이킬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언제나 상실이라는 토대이지요. p156
인간이 가진 불완전성때문에 삶에서 난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사는 동안 군데군데 부서지고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들로 물이 들어와 찬다. (…) 산다는 것은 고통의 날줄과 슬픔의 씨줄로 짜는 피륙이고. p179
우리는 기다림을 하나씩 꺼내 쓰면서 세월을 보낸다. p202
우리는 아름다움 앞에서 종종 슬퍼지는데, 정말 아름다운 것은 덧없고 쓸모가 없는 탓이다.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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