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다르덴, 뤽 다르덴
소녀들은 막 태어난 갓난아기를 안고 있다. 소녀들이 학교도 가지 않고, 옳지, 우리 아가, 배고프지, 말하고 있다.
미혼모 센터의 다섯 명의 소녀들이 자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자립.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꾸려나가는 것. 단어 뜻을 정확히 되새기고 나니, 다시 써야겠다.
소녀들은 결국 자립하지 못했다. 아마 평생 그럴 것이다. 소녀들은 계속 의지하고, 도움 받고, 보살핌 속에 살아갈 것이다. 자신이 아기에게 그러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늘 잊고 있지만 주변에는 늘 크고 작은 사랑이 있으니까. 그래서 결코 자립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
영화를 보면서 좋은 필름으로 찍은 다큐가 아닐까?라는 의심까지 들었다. 작은 숨소리조차 들리는 밀착된 카메라가 소녀들을 계속 따라다니고 배우들은 자신이 돌봐야 할 ‘나와 내 아기’에 지독하게 집중해 있다. 연기를 정말 이기적으로 한다.
‘내 아기’가 생기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정말 중요해진다. 그런 ‘나’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영화는 그 질문을 해소해야만 온전한 책임이란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어른은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질문을 영영 해소하지 못하거나 질문이 떠올라도 끝내 묵인한다면 어른의 몸을 가진 아이로 남는 것이 아닐까. 이 소녀들은 아직 어린 몸으로 순식간에 그 강을 건넌다.
<엄마의 시간>이 아름다운 이유이자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유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자기 질문을 풀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이었던 쥘리는 센터에서 아기를 돌보며 아빠가 될 파트너와 으쌰으쌰 힘을 낸다. 둘이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미숙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 세 사람에게 희미한 빛줄기가 비춘다. 그 빛 아래서 소녀는 자신의 아이를 품에 안고, 나지막이 말한다. 꼭 이겨낼게, 너를 걸고 맹세해. 저 작은 기도가 모든 신의 첫 번째 일이길.
그 맹세는 다음 날 저녁 바로 무너진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약을 투여해 입원을 한다. 병원 침대에서 실패자라며, 자신이 없다며 엉엉 우는 소녀를, 당신은 소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할 수 없었다. 나 아직 모자라지만 힘내볼래, 라던 아이가 나 여전히 힘들어,라고 말하고 있는데.
다른 소녀는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누군가는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엄마를 스토킹 하며, 다른 아이는 한 번쯤은 믿고 싶었던 엄마에게 다시 폭력을 당한다. 어려서 그랬을까, 아직 덜 배워서일까,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큼 어엿한 어른이 아니라서?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쓰러진다. 셀 수도 없이.
그런 면에서 어쩌면 소녀들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어려서, 아직 몰라서, 아직 배워할 것이 많아서, 그래서 다시 기회가 몇 번이고 있으니까.
기회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다. 살아갈 기회는, 아니, 살아간다는 건 기회가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나 힘들어,라는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그 주어지는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원래부터 내 것이었다.
파트너에게 버림받고 온 세상이 무너져 아기마저 포기하고 싶었던 페를라는 싸웠던 언니를 찾아간다. 이제 아기랑 나 둘밖에 없다며 우물쭈물 사실 무섭다고 말하고, 언니는 곧바로 페를라에게 그럼, 당연하지, 하며 왈칵 안는다.
아리안은 예쁜 분홍색 펜으로 18살이 된 자신의 딸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너보다 3살이나 어리지만, 하며. 폭력을 일삼고 사과하고 우린 이제 정말 다를 거야를 반복하는 엄마의 바람대로 살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 아리안. 내 딸에게 꼭 악기를 가르쳐달라고 당부하고, 아리안은 조종사의 꿈을 찾아 학교로 서두른다.
제시카는 자신을 버린 엄마를 자꾸 찾아간다. 그러니까, 당신은 나를 버렸지만 나는 아기를 버리지 않아요, 그런데 당신은 왜 나를 버렸어요,라고 끈질기게 스토킹 한다. 만삭의 몸으로도 아기를 낳고 나서도 그리고 아기를 데리고. ‘엄마’라는 말을 그 사람에게 하고 싶어서. 나는 너무 어려서 무서웠어, 마침내 대답한 아리안의 엄마. 잠깐 들어와, 하며 문을 열어 준다.
105분 장편 영화에 다섯 편의 단편이 있고, 그 단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넌 어떤 이야기가 가장 좋았어?라는 질문으로 이 영화의 수다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음, 나는 쥘리가 병원에서 엉엉 울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 근데 제시카가 엄마를 자꾸 찾아갈 때마다 진짜 눈물이 자꾸 나더라니까. 아리안이 편지를 보내면서 수업에 뒤쳐지기 싫다며 가방을 메는 걸 볼 땐 얼마나 기특하고 벅차던지. 야, 근데 진짜 못 고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