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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Feb 02. 2022

내가 응원할 팀을 내가 골라도 되는 걸까

<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 박태하

내가 응원할 팀을 내가 골라도 되는 걸까?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저마다 고향 인근의 팀을 응원했고, 가끔 가다 존재하던 K리그 팬 친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 점지해 주기라도 한 듯 고향의 팀을 응원하게 된 것이다. 가족이 응원해서, 친구들이 보러 가길래 등등 이유는 다양했지만 '출신지와 가까운 팀을 응원하게 된다'는 공식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물론 그들에게 "그 팀을 왜 응원하게 됐느냐"고 물어본 적은 없었다. 대전에서 태어나 버려 한화를 응원하게 된 친구를 보면서 '신은 감당할 만큼의 고난만 허락하신다'고 농하는 걸 즐겼던 이유는 내가 못돼서지 그게 한심해서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 공식을 내게 적용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었다. 경남 바닷가 시골마을 출신인 내가 응원할 만한 축구팀은 TV 속 국가대표팀뿐이었다. 본적이 경주고 대학을 포항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경주 한수원이나 포항스틸러스를 응원하는 건 '만들어낸 팬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해 봤다. 팬심이라는 게, 만든다고 정말로 팬심이 되겠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응원할 만한 팀이 없었다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 보지만 그냥 관심이 없었다는 말로 단번에 정리할 수 있겠다.

그의 글쓰기 방식이 꽤 익숙하다. 아내인 김혼비 작가의 그것과 닮아 있어서일까.

박태하는 일순간 나와 같은 고민을 했다. 먼저 고민한 그였기에 나는 그의 문장에 단번에 설득된 것이다. 우리는 아스날 팬에게 런던 출신이느냐고, 맨시티 팬에게 맨체스터나 그 주변 도시에서 자랐느냐고, 심지어는 영국에 가보긴 했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자면 서울살이 5년 차인 내가 서울FC나 서울 이랜드의 팬을 자처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고, 포항에서 학교를 나왔으니 포항스틸러스를 응원하지 못할 이유도 없는 셈이다. 박준 시인의 말마따나 "서울은 어떤 사람의 고향이 되기에는 너무 크고 뻔뻔한 도시"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응원할 팀 하나 고르는 일에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니, 일 아니면 살지도 않을 거라느니, 지옥 같다느니 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제야 내가 응원할 팀을 고를 수 있을까? 박태하가 늘어뜨린 고민처럼 쉽지만은 않다. 가끔 가서 경기를 직관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우면 좋겠고, 너무 못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다른 팀을 벌벌 떨게 할 스타 선수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너무 유명한 팀은 아니었으면 좋겠는 그런 마음. 생각해보면 홍대병이랑 비슷한 셈이다. 나의 가수가 가끔은 소극장에서 콘서트를 열어줘서 직접 공연을 볼 수 있으면 좋겠고, 괜히 방송 타서 티켓팅이 어려워지지는 않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누구나 들으면 다 아는 타이틀곡 한두 개는 있으면 좋겠고.. 인간의 애정이라는 건 전부가 비슷한 결로 흐르고 있는 걸까나.


닉 혼비의 말처럼 "온전히 같은 대상을 응원하고 그 소속감을 갖는 것의 가치"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정체성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약자의 존재와 관련돼 언급되는 경우가 많고, 소속감은 우월감과 배제로 왜곡되기 쉽기에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개념들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고정된 정체성 위에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겹칠 수 있고,(성남시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내가 성남FC의 팬이 되었듯이.) 꼭 자격과 규율을 필요로 하는 '조직'에서가 아니라도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이것들은 우리를 더 풍부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만든다. (<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 중에서)


어쩌면 우리나라 축구팬들이 바다 건너 가보지도 않은 지역에 연고를 둔 팀을 멀찍이서 응원하는 건 (사대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팀의 패배가 지역의 패배, 나의 패배로 실감되기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기실 수준이 어떻니 템포가 쳐지니 해도 K리그의 프로선수들은 나보다 무조건 잘하지 않는가? 내 분수를 알면 K리그 팀을 응원하는 게 조금은 기꺼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타인이 내가 되고 내가 타인이 될 수 있으려면 직접 마주하면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이 울고 웃을 수 있어야 하겠다.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팀이 될 뿐인데, 아니 따져보면 팀도 사람들의 총합일진대,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가 된다. 그렇게 자연스레 사랑할 팀이 하나쯤은 있겠지? 내가 응원할 팀을 내 의지로 한번 골라볼까 싶다. 저 멀리 바다 건너 말고,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가장 가까운 축구장에서 함께할 수 있는 팀이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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