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최초 사찰 리뷰(?)
(목사 아들이긴 하지만) 절에 들르는 걸 나름 즐기는 편이다. 종교 건축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위압감을 여러 번 접한 경험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절에 발을 들일 때면 기존의 것과 다른 의미에서 경건해지기도 한다.
적확한 단어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다양한 감정들을 통해서 종교 사이에 통하는 구석이 꽤 많다고 느낀다. 지난 일요일 방문한 낙산사는 그 같은 감정을 증폭시키기 충분했다. 산 중턱에 위치해 있고 꽤나 넓어서 한 바퀴 돌려면 수십 분은 족히 드는데, 위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면 감탄과 경외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입구부터 목탁 소리와 불경 외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야 구경하러 왔지만 이곳도 당연히 '종교시설'로 분류돼 집합 제한 조치가 적용되나 보다. 안내문엔 손을 모으는(합장)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거 묘하게 예수님 기도 손(?) 그림이랑 닮았다. (뭔지 알면 기독교 고인물) 역시 종교는 통하는 구석이 있는 건가. 이때부터였다. 계속 이 같은 종류의 공통점을 찾게 된 게..
사찰 군데군데엔 형광색의 소원 끈이 매달려 있었다. 소원을 끈에 써 줄에 매다는 건 일종의 종교 행위 같아 보이는데.. 무려 '소원 끈 공짜'라고 홍보(?)하며 각종 소원을 절찬 모집 중이었다. 따져 보면 개신교에서 기도제목(이라 하고 소원이라 읽는다) 써내는 거랑 별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더 적나라한 바람들을 써 놓는 경우가 많다는 건데, 이를테면 '카카오 상한가'나 '10만전자'와 같은.. 장난 섞인(물론 장난이 아닐 수도 있음) 소원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복신앙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는 많지만, 생각해보면 복을 빌지 않는 종교가 어딨는가. 사람들이 기복을 지레 숨기는 건, 어쩌면 질투 같은 감정일 수도 있다. 짙은 기복은 누구 소원은 듣고 내 소원은 안 듣는 신, 누구에게는 행복한 삶을 허락하고, 내게는 허락하지 않는 신을 향한 반항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나친 솔직함이 때론 마음을 가볍게 하기도 하는 걸 보면, 신앙심을 유지하는 데 기복은 분명 필요한 것일지도.
물론 '엄마 건강', '주변 사람들 다 행복하게 해 주세요', '코로나 사라지게 해 주세요'와 같은 진심 담긴 소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간절함을 보고 있자니 기독교식 중보기도(?)가 절로 나온다. 바닷가 절까지 와서 자기 소원을 적어 놓고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기 때문이려나.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끈(이자 꿈)들을 보며 괜히 여러 생각이 든다. 사람들 마음이, 소원이, 줄을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하지만 끈질기다. 자기 꿈을 끈에다 쓴 사람들은, 어쩌면 무얼 쓰고 어디에 매달았는지도 까먹었을 텐데… 여하튼 여전히 매달려 지나가는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 나부끼는 꿈들이 매여있지 않고 훨훨 날아가 이뤄졌으면 하고, 덩달아 손 모아 빌어 본다.
언덕배기를 올라 드디어 마주한 낙산사의 랜드마크 해수관음상.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중생(?)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불상이다. 실제로 '구원이 필요한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설명돼 있기도 하다. 한 연인은 커다란 불상 앞에서 "이것도 이렇게 큰데 리우 데 자네이루 예수상은 얼마나 큰 거야"라며 놀랐다. 어디서 들은 얘기인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그 예수상 앞에서는 나쁜 짓 안 하고 뒤에서만 한다던가. 이 거대한 관음상 앞에서도 괜히 몸가짐을 바로하게 된다.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관음상 밑에는 다리가 세 개인 두꺼비(삼족섬)가 있는데 이걸 만지고 가면 두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다리 세 개 두꺼비 2가지 <<< 알라딘 지니 3가지) 만지고 소원을 빌어 보려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그만뒀다. 교회 가서도 소원 잘 안 비는데.. 이런 건 아무래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홍련암 법당 앞에서는 재밌는 간증(?)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2005년 산불의 불길이 관세음보살님의 원력 때문에 법당에는 닿지 않았다는 이야기. 이런 거 보면 태클을 걸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일단은 참아본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지켜주셔서 코로나 안 걸린다'는 아무개교회와 별다르지 않은 거니까. 그나저나 그 관세음보살님(혹은 하나님) 코로나는 왜 못 막았대 증말..
나오는 길에는 '백만 원력 결집 불사', '국난 극복을 위한 희망의 기도'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마주할 수 있었는데, 이건 '40일 특별 새벽기도회'나 '일천번제', '건축헌금 작정' 따위의 이벤트를 떠오르게 한다. '세력이나 자원을 집중해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요청'은 사실 종교가 아니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종교의 탈을 쓰면 요청이고 참여고 훨씬 수월해지는 느낌은 왜 드는 걸까. 하여튼 다 통하는 구석이 있는 셈이라고 눙쳐 본다.
한 시간 가까이 둘러본 낙산사는 위치고 구조고 크기고 멋들어져서, 경외감이 절로 생기는 절이었다. 가끔은 사람들이 왜 종교를 가지는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내가 모태신앙이라 더 그러기도 하는 듯) 이날 든 생각이나 감정은 날 퍽 쉽게 이해시키고도 남았다. 한때는 그래도 목사 아들이라고 절이 부담되거나 꺼려지곤 했는데, 나도 자유로워진 탓인지 되려 절에 얽힌 이야기들에서 배울 점들을 찾고 있다.
따져보면 내가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제목이나 관음상 밑 두꺼비를 만지고 빌었을 소원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다. 엄마 아빠의 건강, 새로운 회사에서 잘 해낼 수 있게, 그러면서도 하루하루에 충실할 수 있게… '내가 잘하면 된다' 싶다가도, 한계를 마주할 때마다 나보다 더 큰 (혹은 크다고 믿는) 힘에 의지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항상 '신이 있으면 좋겠다'고 고백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 가르침이 나를 북돋우는 걸 완전히 부정할 수가 없는 걸 어쩌겠는가. 이럴 땐 목사 아들인 게 참 귀찮아진다. 여하튼 (불교식으로 빌어보자면) 다음 생엔 목사 아들은 말고, 다른 걸로 해주시죠,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