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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r 06. 2024

있지만 없는 아이들

이제 모른 척 하지 말기로 해요.

아픈데 병원에 가지 못한다, 보험을 들 수 없어 현장학습에서 나만 빠진다, 몇 년을 들여 공부했지만 수능을 치를 수 없다, 모두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벌어지는 현실이지만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모든 걸 포기하고 오직 오늘 하루만을 건너는 비루한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겐 모두 사정이 있었다. 체류자격이 없는 부모님, 국가 간의 원활하지 않은 협의라든가 우연히 잡힌다든가. 여러 사정으로 삶의 기본이 되는 ‘등록’을 하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가 있었다. 질병 등의 문제로 인해 판단능력이 없는 무능력자에게 은행 거래나 중요한 계약 등을 허락하지 않는 제도였다. 지금은 성년후견 한정후견으로 바뀌었지만.     


어쨌든 그들에게도 주민등록번호는 있었다. 이 국가의 주민으로 등록을 해주며 ‘신분’을 부여하는 것. 그런데 스스로 판단조차 못하는 이들에게도 있는 번호가 해당 국가의 국토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부모의 국적으로 인해 부여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 배제적이다. 등록마저 해주지 않는 나라는 사실 묵시적으로 “너네 나라로 돌아가!”를 말하고 있던 것 아닐까?     


삼권이 분립돼 있고 모든 시민에게 발언권이 있는 민주주의 그리고 능력껏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자본주의가 결합된 현시대의 우리나라에서 끝내 고치지 못하는 아주 못된 습성이 있는데. 나는 그게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미등록 이주아동에겐 매일 끊임없는 차별이 제공됐지만 이를 문제 삼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차순위에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여전히 묵시적으로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발언을 웃어넘기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법체류라는 문제를 용납하고 옹호할 입장은 아니다. 허락되지 않은 상태로 체류하는 건 범죄가 확실하다. 하지만 불법체류자의 자녀는 불법체류를 선택한 게 아니므로 온전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래서 책 속에서 확인한 수많은 어려움은 오래전 사라진 연좌제를 연상하게 했다.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들, 아파도 참고, 일찌감치 포기하는 아이들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하루속히 다가오길 바란다. 이와 관련된 사례가 수면 위로 드러날 때 한마디의 말이라도 보탤 수 있는 용기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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