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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r 15. 2024

파견자들

그래도 저는 범람체가 싫어요!

sf를 읽다 보면 심심치 않게 디스토피아를 목격한다. 상상 속에서 세상은 온통 밝지만은 않다. <파견자들>에서 사람들은 지하도시를 만들어 땅속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시들하고 부실한 식재료로 음식을 해 먹고 어렵사리 살아간다. 땅 위는 범람체가 지배했으니 어쩔 수 없다. 범람체에 대한 설명을 읽을수록 동충하초가 생각이 났다. 쭉쭉 뻗어나가는 뿌리 혹은 뿔과 같이 생긴 동충하초처럼 범람체는 쭉쭉 뻗어나가 광증 아포를 터뜨린다. 아포, 마치 곰팡이의 포자와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찾아든 범람체와 인간의 싸움에서 인간은 진다. 당연한 거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몸에 특별한 기능이 없다. 신체를 보자면 딱히 장점이 없다. 살은 무르고 머리는 무겁고 팔다리는 길어서 어딘가 부러지기 쉽다. 범람체로부터 지하로 도망친 인간들. 하지만 인간의 최대 강점은 굴하지 않는다는 것. 어떻게든 지상을 탈환하기 위해 애를 쓰고 연구하고 파견자라는 인재를 양성해 땅 위로 내보낸다. 비인간적인 실험도 진행한다. 이렇게 보면 범람체는 지구를 망치고 인간을 쫓아버리기 위해 찾아온 악마와 같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건 소설 중반부터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저자가 말하려는 공생의 의미라든가, 나라는 존재가 100% 나인지 의구심을 갖는다든가, 그런 부분에 있어 완전한 공감을 갖지 못했다. 범람체들이 늪에서 전하는 이야기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범람체는 인간을 쫓아버리고 죽이려는 게 아니라 서로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방식을 인간이 원했던가?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찾아와 우린 널 헤치려는 게 아니야! 그저 공존하려는 거야!라고 하는 타자를 그저 받아야들여야만 할까? 그렇게 보자면 여전히 범람체는 침입자다.


작품 초반에 등장한 새로 입양한 여자아이의 서사가 완벽히 풀리지 않은 것도 찝찝하다. 인물들이 서로에게 갖는 감정도 모호하다.

그래서 다 읽은 후에 ‘내가 이해한 게 맞나?’라는 의문과 더불어 모든 서사를 완벽히 풀어내기보다는 조금씩의 가능성을 열어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 김초엽 작가의 책을 워낙 좋아해서 많이 읽었는데, 이번은 뭐랄까. 책이 내게로 걸어 들어오던 중 방향을 바꿔 다른 곳으로 가버린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파견자들 이전에 읽은 게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였던가. 아직도 촉촉한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를 기원하고 있어서일까. 파견자들은 내 마음으로 곧장 들어오지 못하고 배회하다 범람체의 늪으로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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