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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r 27. 2024

지구를 항해하는 초록배에 탑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지구를 아껴줄 순 있잖아

‘환경’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 복잡한 감정과 기억이 동시에 떠오른다. 나에게 환경은 잘 간수해야 할 유형의 재산인데, 그 간수하는 과정이 조금 귀찮다는 느낌이 든다. 또 환경은 내 전공이었고 마지막으로 있었던 언론사는 환경 전문 언론이었다. 이런 이유로 ‘환경’에서 오래전 감겨있던 피로감과 약간의 지긋지긋함도 떠오른다. 조금 귀찮고 많이 피로한 환경. 그래도 환경이 잘 간수해야 할 재산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귀찮음과 피로감을 뛰어넘어 그다음 스텝을 밟는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다. <지구를 항해하는 초록배에 탑니다>의 저자 김연식이 그런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귀찮음과 피로감을 넘어 행동하는 사람, 그린피스의 액티비스트가 되는 것.


대중은 그런 직업을 갖는 사람은 뭔가 특별하고 특이하고 아주 박학다식한 전문가일 거라 짐작하지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누구나 할 수 있고, 그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언제든 손을 들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예전에 읽은 책을 통해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활동가는 반드시 특별하고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여성으로서의 내가 되어야 한다고 느낀 지점과 비슷하다.

그린피스 일원이 되려면 꼭 채식을 해야 할까? 환경운동은 완벽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건가? 나는 휘발유차를 신나게 몰고, 내 아버지는 온실가스의 주범이라는 한우를 평생 기르셨다. 그린피스가 추구하는 방향에 어렴풋이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그저 막연한 기대와 어느 정도의 소명 의식으로 레인보우 워리어에 올랐을 뿐이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건, 결국 내 행동이 가져올 책임을 생각한다는 것. 사소한 귀찮음을 받아들이는 너그러움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수고면 충분한 것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그 어렴풋한 감각이 모이고 모여 유의미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처음부터 일등항해사로 고용된 게 아니었다. 그저 배를 탈 줄 아는 사람으로서 자원봉사로 레인보우 워리어호에 타서 주방보조를 했을 뿐이다.

세상 어디에도, 그린피스에도 슈퍼맨은 없다. 배에 잠깐 찾아오는 사람들이 환경감시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마치 슈퍼맨이나 아이언맨처럼 대단하게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선원들은 전부 나처럼 요리하는 키친맨에 갑판을 정비하는 페이트맨, 기계를 고치는 드라이버맨 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완벽하게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해도 그린피스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줌으로써 저자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한다. 너도 액티비스트가 될 수 있다고, 북극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산호지대의 소중함을 알아달라고, 각자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환경보호에 참여해 달라고. 평범한 선원이었던 저자는 그린피스의 항해사가 되는 삶의 어떤 구간을 통과함으로써 좀 더 초록에 가까운 존재로 거듭났다.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완벽하게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더라도. 조금씩 나아가는 존재의 ‘최선’은 분명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나는 환경보다는 동물권을 생각해서 하루 한 두 끼는 반드시 채식, 일주일에 3일 채식을 하고 있다. 항상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일회용품이 가득 나오는 배달음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강아지 배변봉투는 1년 안에 분해되는 생분해성 옥수수 전분 봉투를 사용한다. 이런 나도 종종 쓰레기를 만들고 일회용품을 사용한다. 비닐장갑은 도무지 못 끊겠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고 나면 한동안이나마 바짝 친환경적 삶을 사느라 애를 쓰고 또 느슨해지곤 하지만. 그런 경험 역시 초록 물결에 포함되는 일 아닐까? 반드시 완벽할 필요는 없다. 채식 도중에 고기가 너무 먹고 싶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니까. 장바구니가 꽉 차서 일회용 봉투를 받는다고 해서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단절되는 건 아니니까. 조금씩 경계를 넘나드는 ‘최선’은 우리를 마음속 액티비스트로 이끌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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