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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pr 11. 2024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아마도 올해 최고의 책이 되지 않을까.

건축에 대해 이렇게 세세하게 읽어볼 기회가 또 있을까. 읽던 중에 앞쪽 작가 약력을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문과생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열심히 취재하고 공부하며 이 작품을 썼을까. 나는 어떤 건축가가 쓴 책보다도 이 책에서 건축의 시작과 쌓아 올라가는 과정을 눈에 펼쳐지듯 상상할 수 있었다. 이 작품 자체가 견고하고 빈틈없는 건축물이었다. 그 묵직함에 내내 매료됐다.


건축이라는 명제를 품은 사람들이 인생과 환경을 어떻게 관계 이루며 살아갈 것인지 경합이라는 이슈를 따라 보여준다. 난로 안에 우물 모양으로 쌓는 장작처럼 작은 부분에도 정석을 따르는 사람들, 연필을 하루에 몇 자루 쓰는지로 업무량을 가늠하고, 별장에 함께 머무르며 한 가지 목표에 몰입하며 여름 다음엔 가을로 발을 딛는 게 당연하듯 성장하는 사람들.


그래서 소설의 결론이 몹시 궁금하면서도 이렇게 정석을 밟으며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목표 혹은 역할을 다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과정은 몹시 차분했고, 이 단어를 어지간하면 잘 쓰지 않지만 온전한 감동이 있었다.


그리고 사카니시 군이 종종 느끼던 불안에 공감하면서 선생님이 쓰러지고, 사무소 사람들은 각기 흩어지고, 이구치의 사망 소식, 후지사와 씨와 관련된 아쉬움, 꽃이 떨어지듯 멀어지는 마리코와의 감정은 살면서 으레 겪는 희로애락을 순순히 그려낸다. 어쩔 수 없지만 삶이 언제나 웃음 만발할 수만은 없어서 더러 이별을 하고 설레고 완성도 높은 감정을 만들다가 마감하게 되기도 한다. 고작 스물셋이었던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변화는 아련한 늦여름 매미소리를 닮았다.


요즘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내 인생 중 1년을 아주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순간이 후회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결과물은 반드시 미래에만 알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나는 그저 성실하고 떳떳하게 오늘 몫의 일들에 마감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일상의 틈에서 읽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덕분에 조금 축축한 공기가 감도는 아오쿠리 마을의 별장에서 며칠 묵다 온 듯 산뜻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었고, 제목처럼 오래 마음에 남겠구나 예감했다. 좋은 구절은 너무 많아 차마 옮기지도 못했다. 아직 올해의 3분의 1만 흘렀지만, 아마도 이 책이 2024년 최고의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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