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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Feb 27. 2024

지구에서 한아뿐

인간이 꼭 0순위가 되야 하는 건 아닐지도.

몇 년 전 이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읽었는데 줄거리는 생각나지만 어떤 책이었는지는 하얗게 잊었다. 대강 괜찮다 정도의 감정으로 읽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이번 책모임을 앞두고 다시 읽어보니 아주 재밌는 거다. 대강 괜찮았던 소설, 적당히 재밌었던 건 아마 당시의 내가 적당히만 읽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었거나. 그래서 두 번째 읽은 지구에서 한아뿐은 아주아주 재미있는 sf 로맨스 소설이었다.    

 

어떤 콘텐츠를 접하든 고정성에서 벗어나는 작품을 선호하게 되고, 어떤 창작자든 고정성을 벗어나는 걸 어느 한편의 목표로 잡게 마련이다.     


글 속에서 경민 외형의 슈트를 입은 존재는 사실 외계‘인’이라고 말하긴 애매한 종류인데.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가 너무 인간중심 사고를 갖고 있어서 그 정도의 상상에 익숙한 것이다. 그래서 시선을 너무 인간중심으로 잡지 않고 조금 유연하게 가졌을 때 적합한 존재가 오히려 인간인 한아라고 생각한다.     


한아는 인간이 너무 많아서 인간을 더 낳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고, 비행기를 타며 낭비하는 에너지와 탄소발생을 고민하고, 하늘과 맞닿는 곳에서 직접 결혼식을 준비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한아는 인간중심이 아닌 세상의 모든 개체가 어우러지는 데 중심을 두고 살아간다. 환경을 생각하는 어떤 메시지가 있을 때 ‘우리 후손을 위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라는 말에 나는 공감을 못 한다.     


현존하는 존재들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길 바랄 뿐이지 후손이라든가 어린 인간을 위해서 뭘 해야 한다든가 이런 건 너무 인간중심적이다. 세상의 중심이 지성이 있다는 이유로 인간이 돼야 한다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을까?     


인간은 존재하는 수많은 종과 존재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한아가 광물이라도 사랑할 수 있고, 외계에서 온 다른 존재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거다. 한때 유행이었던 정치적 캐치프레이즈 ‘사람이 먼저다’가 있었는데 이걸 안 좋게 변질하면 인간중심, 개인주의가 된다.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으면 가을방학의 <취미는 사랑>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다정한 노래다. 나와 동종의 존재만을 생각하기보다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동등한 수준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이곳의 우리 모두 언젠가 우주 자유여행권을 받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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