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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브리즈번

순간이동할 수 있다면 매일매일 당일치기 여행을.

by 귀리밥

그것은 아주 한순간에 생긴 능력이었다. 어떤 계기나 행운이 작용한 건 아니었다. 눈을 떴을 때 즉시 알아차린 거였다. 내게 순간이동이 가능한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 능력이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주 현실적인 능력이었다. 그러면서도 언제 다시 수거될 수 있는 귀한 능력이라는 인지가 있었다. 눈을 뜨는 동시에 마음이 급해졌다. 눈을 뜨고 생긴 능력이라면 눈을 뜨며 없어질 수도 있으니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까?


그때 망설임 없이 고른 선택지는 브리즈번이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도시 브리즈번. 딱히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본 적도 없는 곳. 왜일까. 왜인지 입에서 처음 튀어나온 장소가 브리즈번이었을까.


일단 순간이동을 하기 위해 지도앱을 열었다. 정확한 주소가 필요했다. 가본 곳이라면 스스럼없이 이동할 수 있지만 한 번도 가지 못한 곳에 가려면 정확한 주소를 알아야 했다. 일단 유명한 장소를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두근거렸다. 만약 가야 한다면 오렌지색 햇살로 가득한 시티 보타닉 가든이 어떨까. 지도앱에 시티 보타닉 가든을 입력하자 주소가 뜬다. 주소를 훑어본 다음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놀랍게도 시티 보타닉 가든에 도착했다.


습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선선한 기후의 브리즈번이 눈앞에 펼쳐졌다. 크고 넉넉하게 자라난 나무들은 헤아릴 수 없이 종류가 많았다. 그 사이를 조금씩 조금씩 걸어 나갔다. 주변은 브리즈번 강이 감싼 모습이었다. 이곳이 현실이라는 감각이 피부에 닿았다.

그리고 가든에서 멀지 않은 퀸 스트리트 몰에 향했다. 카페가 줄지어 있는 거리를 걷다가 노란색 차양이 둘러진 카페의 야외석에 앉았다. 따뜻한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진한 농도의 플랫화이트를 받았다. 꿈만 같았다.

‘이게 꿈일 리 없어. 이렇게 오감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꿈은 없어.’


어느덧 해 질 녘이 되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눈을 뜨니 안온한 나의 집이다. 돌아온 후로 피곤함은 둘째치고 잠을 잘 수 없었다. 세계 어느 곳이든 당일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환상적인 인생인가. 긴 비행시간 없이, 숙박비를 열심히 비교하고 고민할 필요 없이 원하는 곳에 다녀올 수 있다는 현실. 집 앞 편의점을 가듯 편안한 마음으로 원하는 곳에 가고, 지역의 매력을 마음껏 누리고 잠들 시간 전에 돌아오는 삶. 어찌 잠을 이룰 수 있겠나.


다음으로 갈 곳을 즉시 계획해야 했다. 일단 안 가본 장소 중 영국의 타워브리지가 떠오른다. 프랑스의 몽솅미셸을 두 번째로 적어놓고, 세 번째는 이미 다녀왔지만 너무 좋아 다시 가고 싶은 오타루를 생각한다. 오타루에 갈 땐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가노라 다짐한다.


정말 허무맹랑한 이 경험은 짐작했겠지만 나의 하룻밤 꿈이었다. 주말 아침 꿈에서 깨어난 뒤 현실과 분리되지 않아 영국의 타워브리지에 갈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맡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리고, 반려견이 달려와 아침을 달라고 조르는 걸 보며 그제야 꿈이었다는 걸 알아챘다.


현실감이 둔한 나는 비척거리며 일어나 주방으로 가 반려견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거실 커튼을 열었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땅을 축축해 보였고, 잔뜩 더워지기 위해 준비 중인 하늘은 뭉게구름을 피워 올렸다.


꿈이었다는 게 분명하면서도 눈뜨면 사라질 거라 생각한 능력이 정말로 없어진 거라는 착각이 울렁댔다. 꿈이 정말 맞긴 할까. 내가 정말 브리즈번에 다녀온 건 아닐까. 그러다 잠이 들었다 깨면서 사라진 게 아닐까. 현실은 습기 가득한 대한민국 경기도의 어느 집에 있다는 거지만, 아무래도 나는 정말 브리즈번에 다녀온 거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곳에 다녀온 게 맞는 것 같다.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왠지 나는 간밤에 브리즈번에 다녀왔다는 확신이 든다. 어떤 절대자가 잠시 내게 순간이동 능력을 줬다 다시 수거해 간 거라 생각하니 이 생이, 이 경험이 너무나 이득이다. 착각이면 또 어떤가. 몹시 행복해졌으니 괜찮은 착각이다.

이제 아침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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