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른의 위인전 읽기

간송 전형필, 이충렬

by 귀리밥

내가 위인전을 읽게 되다니!


사실 책모임이 아니면 절대 읽지 않았을 장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여느 집이 다 그렇듯 세계아동문학전집과 세계위인전집이 있었다. 위인전을 심심해서 읽기야 했지만, 읽은 후가 문제였다. 내용 자체는 재미있었다. 다양한 삶을 만나는 재미는 실상 위인전에서 배웠다.


그러나 위인전을 읽고 난 다음 마지막에 등장하는 ‘본받을 점’ 페이지가 어린 나의 심사를 뒤틀곤 했다. 왜 반드시 본받아야 하는가? 본받을 점을 굳이 찾아야 하는가? 이해 안 가는 점도 많은데? 위인으로 칭송받는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특히 퀴리 부인을 읽을 때 분노가 극으로 치달았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 퀴리 부인의 퀴리는 남편의 성이었다. 업적을 세워도 본래 이름이 아닌 남편의 성이 내세워지는 부분에서 충격을 받았다. 방사능 단위의 이름도 퀴리였다. 물론 남편 역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과학자이지만, 남편과 별개로 퀴리 부인의 업적을 남편 이름으로 세워놓는 게 마뜩치않았다. 위인전이 싫어진 계기랄까. 그런 내가 이제 와서 간송 전형필의 전기를 읽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간송미술관에 애정이 깊으니까 찬찬히 읽어보기로 했다.


간송 전형필의 생애를 실감 나게 담아준 <간송 전형필>은 그의 생애와 특별했던 에피소드를 담아놓은 전기다. 단순 골동품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아닌 우리 문화를 지키기 위한 대수장가가 되는 여정이 소설처럼 술술 쓰여있어서 잘 읽혔다. 그러다 위인전이라는 접근보다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책으로 생각해 보니 꽤 재밌고 괜찮았다. 무언가 본받을 점, 위대한 점을 찾느라 눈에 불을 켜는 대신 타인의 특별했던 삶을 조명하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순간들을 들어보는 것. 그런 관점에서 이제야 읽는 위인전으로서 <간송 전형필>은 생애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 됐다.


간송은 장사치처럼 값을 흥정하지 않고 가치 있는 물건의 값을 제대로 치르고 사면서도, 아슬아슬한 순간에 배포를 보이는 승부사 기질도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건너면서 어느 집의 아궁이에 불쏘시개가 될 뻔한 겸재의 화첩을 구하고, 폐사지의 석탑이 뜯겨나가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을 막아서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되팔아 이득이 될 골동품을 수집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수장가로서 우리나라 최초로 개인 박물관을 지은 사람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그만의 독립운동을 진득하게 펼쳐가고 있던 것이다.

KakaoTalk_20251002_110357988_01.jpg

그 정신이 남아있는 덕분에 나는 한 해에 두 번 꼭 간송미술관에 간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버티고 살아남은 작품을 보러 봄과 겨울에 발길을 내민다. 꼭 그때가 아니어도 성북동에 가고 싶으면 전철 타고 슬렁슬렁 가곤 한다. 그때마다 봤던 석탑이 있는데 그저 마당을 꾸미는 조각품이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그 석탑의 실상을 책을 통해 알았다. 그동안 별생각 없이 그 앞을 수없이 지나친 걸 생각하니 내가 마치 까막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큰 뜻과 기원이 있을 때 그것을 이루는 방법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재산이 있고 성실하게 우리 문화를 공부하는 간송은 자기 방식으로 그 뜻을 이뤘다. 그 혜택을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누리고 감화받고 있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너무나 당연한 그 이치를 세상이 각박하다며 잠시 잊었던 건 아닐까 되새겨봤다. 이 가을에 이 책을 만나 많이 기뻤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동물을 통해 인간다움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