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와 함께 하는 수다타임의 중요성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이상효입니다. 벌써 2023년의 절반이 지나고 7월이 되었습니다. 7월은 제가 현재 회사에 입사한 달로, 벌써 입사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네요.
저는 회사에서 거의 매일 커피를 내리고 있습니다. 간단히 계산해 보니 제가 2년 동안 내린 커피잔이 3천 잔 정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디자이너인 제가 왜 회사에서 이렇게 커피를 많이 내리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와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보려고 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재택&대면 혼합근무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저는 회사와 집이 가깝고 회사에서 일이 더 잘 되는 편이라 별일 없으면 5일 모두 출근하고 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2021년 7월, 제가 입사했을 당시에는 한창 코로나가 유행할 때라 대부분의 구성원이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진행하고 있었거든요. 오피스는 쾌적했지만, 신규 입사자 입장에서 다른 구성원과 만나서 이야기 나눌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어요.
전 직장에서는 커피 원두와 드립 장비를 복지로 탕비실에 구비되어 있었어요. 반면 현 회사는 그 대신 캡슐 커피를 제공하고 있었어요. 캡슐 커피는 편리하고 빠르게 커피를 공급받을 수 있어서 좋지만, 커피 내리는 데 필요한 시간이 적은 만큼 다른 구성원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기는 어려웠어요. 저는 다양한 분들과 수다 떨 공간과 계기가 필요했고요! :D
그래서 저는 전 직장 경험을 살려 커피 원두를 내려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핸드드립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한 사전 설명: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려면 아래의 열 가지 재료가 필요해요.
1. 원두
2. 그라인더
3. 드립필터
4. 드리퍼(원두 필터 받침)
5. 드립서버
6. 드립포트
7. 1~6번을 보관할 장소
8. 커피 마실 장소
9. 뜨거운 물
10. 얼음
1~6은 너무 비싸지 않은 선에서 구매하거나 집에 있던 걸 가져왔고, 다행히 7~10번은 이미 회사에 있었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었어요. 원두와 드립필터 외에는 한 번 준비되면 계속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지 비용도 크지 않았습니다.
재료만 있다고 끝나는 건 아니에요. 실제 이 커피 모임을 완성시키는 건 사람들이니까요. 아래와 같은 요소가 필요합니다.
1. 커피 내리는 사람
2. 커피 마실 사람 3-5인
3. 시간 20분
1번은 제가 하면 되니까 항상 충족 가능하지만, 2와 3의 조합이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회사는 일하는 장소고, 구성원이 일하느라 바쁜 상태라면 커피 마시기에 동참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시간 여유 있는 구성원을 찾을 타이밍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1. 미팅이 적은 8~10시 (아침 시간대)
2. 본격 업무 시작 전인 1~2시 (점심식사~미팅 시간대)
3. 4~5시 (주요 미팅이 끝나는 시간대)
2년을 돌아보니 위 세 시간대에 커피를 내리게 되었는데요. 거의 매일 내리는 시간대는 1번, 아침뿐이에요. 회사에 출근하는 시간이 8~10시 사이로 유연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미팅을 잘 안 잡는 시간대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모집하면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출근하자마자 커피와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미팅 전 준비, 미팅, 점심약속 등으로 인해 2~3번 시간대는 저조차도 커피를 내리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아침에 내리면 추가로 내릴 생각을 잘 안 하게 되기도 했고요.
커피 내린 지 2주년이 되어 가는 기념으로 커피 관련 숫자를 추산해 봤습니다.
4.5일 - 1주일에 커피 내리는 일수입니다. 주말과 가끔 있는 재택, 휴가 일수를 제외했습니다.
1.3회 - 출근했을 때 커피 내리는 횟수입니다.
2년은 104주입니다.
5잔: 1회 내릴 때 발생하는 커피 잔 수입니다.
이를 합산하면 2년 간 3,042잔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추정치이므로 실제로 내린 잔과 차이가 있겠습니다)
재미 삼아 가상 매출로도 환산해 보았습니다. 드립커피 1잔 당 5천 원이라고 가정해 보니 = 3,042잔 → 15,210,000원이라는 숫자가 나왔습니다.
커피 내리기를 통해 정말 다양한 구성원 분들과 안면을 틀 수 있었고, 가벼운 수다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나눠볼 수 있었어요. 마시러 오신 분들끼리 이야기하며 서로가 어떤 팀에 있는지, 무슨 일 하고 있는지 알게 되기도 좋았습니다. 이런 가벼운 소통은 업무 소통으로 이어져 긍정적인 시너지를 냈다고 생각해요.
커피를 드셨던 동료 분들이 원두와 커피 필터를 선물해 주고 계세요. 덕분에 첫 1년 이후에는 유지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와 함께 만들어 가는 커피타임이 되어 가는 느낌이 들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다양한 커피 원두를 내려 보며 세계 각지 원두 저마다의 매력과 특성을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아직도 커피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카페에서도 다양한 원두의 드립커피를 주문해 먹어보게 되었고요. 최근에는 찬물로 내려 먹는 원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침 커피 내리기가 나만의 ‘일 시작 의식(Ritual)’으로 자리 잡았어요. 동료들과 여러 이야기를 하며 나를 일 시작 모드로 만드는 시간이 되었고요. 동료들과 함께 멋진 습관을 만든 것 같아 뿌듯합니다.
뜬금없지만 저는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일어나는 모든 희로애락이 제 삶 의미 있는 어떤 과정의 일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일만 잘하면 되지] 라는 말이 어떤 의미에서는 불균형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인생이 달콤하기만 해도 된다면, 사탕만 먹다가 이가 상할 것 같거든요. 이렇게 균형 있는 업무 환경을 위해서, 한 순간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모니터 앞에 앉아있기만 해서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쓸데없으면서 가볍고 웃기는 모든 순간들부터, 우리 팀이나 회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함께 실패하고 성공하는 모든 순간들을 조금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면 (역설적이게도)장기적으로 더 생산적일 수 있고, 우리 모두의 성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커피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저는 매일 아침 커피 내리는 순간을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조금 더 여유 있게 회사에서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3천 잔의 숫자만큼은 아니어도 커피타임을 함께한 조금이라도 여유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저와의 시간을 즐겼기를 바라 봅니다. 출근하면 또 다음에 있을 커피타임이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