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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뚱이 Nov 13. 2023

오손조손 여행기 - 목포는 항구다

소소한 에피소드의 연속

목포는 항구다


우리 가족은 전주 첫 여행을 기점으로 1년에 한 번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가족여행이라는 낯설었던 체계가 우리 집에 스며든 것이다. 올해는 할머니께서 먼저 이번엔 여행 언제 가냐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매년 가는 날짜는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겨울은 피해서 날이 따뜻할 때 가고 있다. 2022년, 지난해 다녀온 두 번째 여행지는 바로 목포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누구나 들어봤을 <목포는 항구다>를 보유한 목포는 전라남도 서해안에 자리 잡은 전남의 거점 도시다. 할머니는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 등에 <목포는 항구다>가 나오면 늘 힘차게 합창하실 정도로 이 노래를 좋아하신다. 그렇기에 여행지가 목포로 결정되기까지 노래의 지분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목포는 항구다‘ 이 노래 하나만 믿고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별다른 사전 조사도 없이.


이번엔 숙소 정도만 예약해 두고, 목포 케이블카를 타겠다는 아주 듬성한 계획 하나를 세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이렇게 해도 되나 싶어 초조해진 마음에 닭과 나는 서로를 재촉하기도 했다. (네가 짜, 아니 네가 짜.. 직장인들은 늘 피로했다) 그리고 어느 초여름 토요일, 온 가족 함께 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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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조용히 찾아와




목포는 버스를 타고 갔다. 집에서부터 시작된 버스 여정. 마을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가서, 터미널에서 목포 가는 버스를 탔다. 거동이 편치 않은 할머니를 위해 제일 앞 좌석에 닭, 할머니 그리고 통로 건너 나, 이렇게 앉았다.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 넓은 영산강 풍경이 차창으로 보이자 ‘오, 여행인가’ 그제야 여행을 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복도 건너편에 앉아 있는 할머니한테도 봐보라고, 좋은 걸 함께 보고 싶은 마음에 다급하게 할머니를 찾았는데, 할머니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버스 타고 2시간 남짓한 여정이었는데, 버스 타는 걸 워낙 즐기는 내가 (마침 스마트폰 배터리도 거의 다 떨어졌고) 차창을 보고 멍 때리는 시간을 누리고 있을 동안, 할머니는 인고의 시간을 감내하고 계셨던 것이다. 알고 보니 화장실이 급하셨던 것. 할머니는 집에 언제 가냐고 보채는 아이처럼, 얼마나 더 가야 되냐고, 3분에 한 번씩 초조하게 거듭 물어보셨다.  휴게소는 이미 지난 후였고, 할머니의 불안은 내게도 전파되어 느슨해졌던 내게도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온 가족이 도착만을 바라며 신호의 축복이 버스에 내리길 기원했다. 야속하게도 도로는 약간 막혔지만, 다행히 하느님 보우하사 위기를 모면했고, 다시 느슨함의 기쁨을 되찾았다.


위기가 지나가면 성찰과 교훈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를 계기로 깨달았다. 할머니와 여행은 화장실도 꼭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할머니뿐만 아니라 동네 할머니 모두 비슷한 고충을 겪고 계신다고 한다. 게다가 할머니는 화장실뿐만 아니라 버스에 오래 앉아계시는 걸 못 견뎌하시는데, 4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시며 내 대학 졸업식에 오셨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할머니가 왜 그때의 서울행을 얘기하며 스스로를 오져하시는지 피부에 와닿았다. 나는 그때 버스를 따로 타서 몰랐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졸업식에서 당신의 고된 서울행보다는 이렇게 추운 곳에서 어떻게 막뚱이 혼자 지냈냐는 이야기만 몇 번이고 말씀하셨었다.



밥도둑… 닭은 2인분 나는 0인분


여행을 하다 보면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게 쌓인다. 목포도 몇몇의 황당한 사건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닭(=언니)의 소행이다. 이번 목포 여행의 테마는 식도락이었다. 남도 맛투어. 엄청나게 유명한 가게들을 가진 않았지만, 무기력을 이겨 내고 검색해서 찾은 몇몇의 식당들에서 남도의 맛을 즐기고 왔다.


목포 여행 첫 끼니로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콩국수와 비빔밥을 파는 곳에 갔는데, 할머니 콩국수, 닭은 돌솥 비빔밥, 나는 육회비빔밥 이렇게 음식을 주문하고 나는 무엇이든 다 파는 곳에 가서 물건을 사서 돌아왔다. 이미 음식은 나와서 할머니는 거의 완그릇(클리어) 하신 상태셨고, 닭은 열심히 돌솥에 비비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내 육회비빔밥에 밥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저탄수가 유행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밥 없는 비빔밥은 아닌 것 같아서 밥이 안 나왔다고 말씀드렸고, “그럴 리가 없는데…?” 갸우뚱하시며 아주머니께서 밥공기를 가져다주셨다. 그리고 진실은 금방 밝혀졌다. 닭이 옆에서 한참을 밥을 비비고 있길래 봤더니, 1인분이라기엔 머슴밥처럼 유독 많은 닭의 돌솥비빔밥. 구한말 조선인 밥상 사진에서 봤던 그 고봉밥이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돌솥에는 밥이 기본적으로 바닥에 깔리고, 그 위에 야채가 덮여 있었고, 육회비빔밥은 비빔밥 재료와 밥이 따로 방식이었는데, 닭은 그 사실을 모르고 내 비빔밥에 딸려 나온 공깃밥을 신나게 탈탈 털어 본인 돌솥비빔밥에 넣고 비벼버렸던 것.


 밥이 따로 나오는 돌솥비빔밥이라니,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황당 그 자체였다. 덕분에 닭의 돌솥비빔밥은 희멀건한 저염식 아우라를 풍기게 되었고, 나는 대신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다행히 친절하신 아주머니 덕에 고추장을 더 섞어 맛 밸런스를 맞추고, 할머니와 비빔밥을 나눠먹음으로써 이 사건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진실이 밝혀진 후,  닭이 ‘헤헿, 몰랐다!’며 지었던 맑눈광 웃음이 가아끔 떠오른다.)



강제 디지털 디톡스와 할머니와 카페 놀이


약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밥 맛있게 먹고 나서 그다음 코스로 카페에 갔다.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카페였는데, 주말이어서 그런지 빈자리가 별로 없었다. 조금 기다렸더니 자리가 금방 나서 폭신한 소파 자리에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카페에 있는 우리 할머니는 약간 낯설었다. 반가운 신기함이었다. 어렸을 때 조르고 졸라 할머니 외출할 때 계란 동동 띄운 쌍화차가 나오는 다방에는 따라가 본 적이 있는데, 반대는 거의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배터리 부족으로 스마트폰 충전을 맡겼던 나는 활기와 평화로움이 섞인 토요일 오후의 분위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심심할 때 노트는 구원이었고, 할머니를 그린 그림을 보여드렸더니 할머니께서 좋아하셨다. 여행 중 카페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스마트폰 배터리가 부족한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카페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고 에너지를 충전한 후 근처 바다 같은 영산강이 보이는 평화광장에 갔다. 거기서도 소소한 에피소드가 이어지는데, 느슨한 여행도 촘촘히 보면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글을 쓰기 위해 그때의 기록을 자세히 보다 보면 잠들었던 비극(다툼들)도 떠오르지만, 시간은 그걸 유머로, 해프닝으로 승화할 여유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 목표 여행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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