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 단톡방에 한 친구 A는 이런 질문을 한다.
'요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봐 봐'
그러면서 나는 독일에 있으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도 똑같지, 뭐'라고 답했다. 나를 포함해 6명의 친구 중 한 명만이 지금 잘 살고 있다고 외쳤다.
잘 산다는 건 어떤 걸 의미할까.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현재 내 인생이 만족스러운가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나도 똑같지, 뭐', 즉 나도 그렇게 잘 살고 있는 건 같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우선 독일이건 한국이건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손발이 완전히 묶여있다.
이제야 이 곳의 레스토랑들도 PCR테스트나 백신을 맞았다는 확인 증서가 있으면 출입이 가능해지고 있다. 또 무엇보다 내가 생각할 때 유럽에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점 중 하나가 유럽 내 여행이 아주 용이하다는 점이었는데, 여행이 근 1년여의 시간 동안 불가하다 보니 답답해질 수밖에 없었다. 창고에 나의 여행 캐리어와 함께 넣어둔 나의 여행 의지도 불투명한 '코시국' 속에서 먼지 쌓여만 갔다. 최근에는 그래도 백신 접종이 가속화되면서 슬슬 여행이 가능해지는 것 같아 설레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여전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 독일어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왜 내 독일어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가를 생각해보자면, 아주 간단한 답이 나온다. 독일어 공부를 안 한다. 그 답이 나오기까지의 풀이과정을 들여다보면 또 간단하지만은 않다.(라고 주장하고 싶다)
공부를 해야 실력이 느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집에서 공부를 안 한다. 자기 주도적 학습의 의지가 아주 부족하다. 독일어의 필요성은 항상 절실히 느낀다. 어딘가에 전화를 해야 할 때, 방문을 해야 할 때 먼 미래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 내가 맞닥뜨려야 할 수많은 상황에서 오늘날 공부하지 않은 나 자신을 원망하게 되리라는 너무나도 눈에 보이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의 공부를 하고자 하는 현재의 나의 절실함은 부족한 모양이다. 그래도, 전에 독일어 학원을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숙제와 교실에 퇴근 후 그냥 앉아라도 있으면 들리고, 말하게 되고, 쓰게 되는 상황 속에서 배우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마저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학원 운영을 하지 않는다.
사실 나도 다 이게 다 핑계인 건 알지만, 하면 된다는 건 알지만 하고 있지 않는다는 게 내게 죄책감과, 동시에 자괴감도 준다.(물론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내가 언제나 느껴온 것처럼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나의 미래도 불안하다. 언제까지 나는 회사에서 '노동자'로 일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이후에 나의 삶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대비하고자 남들 다 하고 있다는 재테크를 해보려고 하는데, 그것마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급변하는 정세에 나의 실오라기 같은 주식들은 휘청휘청하는 것 같은데 장기투자를 외치던 나지만, 내 두 눈은 벌써 여러 번 투자 애플리케이션에서 차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훑고 있다. 게다가 오랜만에 입은 셔츠는 이게 원래 쫄티였나 싶을 정도로 착하고 달라붙는다. 예전 사진을 보면 헐렁하게 남던 핏이었는데, 오늘 사진을 찍어보니 네 번째 단추가 탈출 직전이다.
이 외에도 내 삶을 불안하게 하고, 불만족스럽게 하는 건 찾아보고자 하면 한 두 개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친구 A가 내게 '너네 요즘 살아가는 거 행복하니?'라고 물어보면 나는 그렇다고 답했을 것이다.(실제로 A는 인생, 행복에 관한 질문을 자주 던지고는 하는 친구다. 학생 때부터 봐도 가장 열심히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친구 중 하나인데 끝없이 인생의 답을 찾아가려고 하고, 나는 그게 멋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기에 삶의 만족도는 어쩌면 이성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면, 행복은 감정, 감성의 영역에 있지 않을까 싶다.
힘겹게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할 때도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오늘도 힘내자'라는 응원과 뮤즐리, 블루베리, 요거트에 우유로 아침을 한 끼 챙겨 먹으면 몸도 마음도 든든하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처럼 큰 회사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다닌 어떤 회사보다 가장 효율적이고, 회사가 작은 만큼 내 의견이 바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내가 나름대로 일을 잘 해내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기분이 좋다.
퇴근하고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때면 거의 터질뻔한 셔츠가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행복하다. 특히 내가 요리한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을 때면 그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그리고 혼자 이어폰을 꽂고 책상에 앉아, 아침 일찍부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같은 혼자만의 시간도 가끔 가질 때면 내 인생에 여유가 있다고 느껴져, 이 또한 너무 행복한 시간 중 하나다.
아마 본인의 인생에 100퍼센트 만족도를 느끼는 사람은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어떤 백만장자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거고, 몇 평이되지 않는 고시원 한편에서 하루 종일 공부만 하고 있는 고시생에게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슈퍼맘에게도 모두 고충이 있고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진 게 없는 사람보다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여러 방면에서 삶에 만족할 확률이 클 수도 있다. 당장 오늘 먹을 게 없는 사람과, 그날 만족스러운 세 끼 식사를 모두 마친 사람이 같을 수는 없으니.
다만, 우리 모두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의 인생을 보고, 그들의 삶이 누가 봐도 불만족스러운 상황 같다고 해서 당연히 그들이 불행하리라는 색안경을 끼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삶에 있어서 만족도와 행복은 같지 않다는 어쩌면 새삼스러울 수 있는 말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