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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May 28. 2021

사랑의 상태 변화.

 최근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인생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프랑스 사상가 모리스 리즐링이 말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들어가는 말 출발' 중

 출근길 새삼 이런 글을 읽어서 그런지 이어폰에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와서 그런지 다소 감정적이지만 쓸데없는 생각을 떠올렸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떤 형태일까. 우리의 사랑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까? 단단할까? 푸딩처럼 매끈하고 폭신할까? 그것도 아니면 향수처럼 은은하지만 확실한 향을 가지고 있을까? 철학이란 학문은 쓸데없는 데서 쓸데 있는 답을 내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 글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다 보니, 우리가 으레 써오던 말들이 떠올랐다. 굳이 사랑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유형'의 단어들을 여러 가지 떠올려 보게 되었다.

 자유로운 연애 상태(사실 페이스북에서 이 단어를 처음 봤을 때는 음? 싶었다. 자유로운 연애 상태라니.), 너에게 빠져들었어, 단단한 우리 사랑, 너에게 중독됐나 봐 등등.

 여기까지만 슬쩍 보아도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형태, 상태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고 느껴졌다. 기껏해야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랑의 이미지는 하트 모양 그리고 붉은빛의 색깔 정도의 시각적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언젠가부터 심장, 마음에서 기호화되기 시작한 핑크색 하트라는 이미지에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노출된 탓이리라.(마치 북극곰과 산타와 코카콜라처럼)


 이왕 철학적으로 접근을 시작한 김에, 그 옛날 고대 그리스 시대, 과학과 철학이 하나이던 시절을 떠올리며 과학에 기대어 접근해 보기로 했다.

 최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한 프로그램에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상욱 교수님이 나오신다. 김상욱 교수님은 가끔씩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실 때 화학 분자식을 보여주시며 설명을 해주시는데 그렇게 재미있고 유익할 수가 없다. 나도 그 접근법을 살짝 빌려보기로 한다. (물론, 접근법만 빌릴 뿐 유익과 재미 모두를 놓칠 수도 있다.)


물질의 상태 변화


 가운데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체, 액체, 고체 순이다.

 각 그림에서 동그라미는 분자를 나타내고, 기체 액체 분자에 있는 실선들은 (다리가 아니라) 분자의 움직임으로 인한 속도 표시(?) 정도로 볼 수 있겠다. 한눈에 봐도 고체는 분자들이 빽빽하고, 액체는 좀 덜 붐비고, 기체는 자유로운 운동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도 표시한 것처럼 빨간색 화살표는 열의 흡수를 나타내고, 파란색 화살표는 열을 방출을 나타낸다. 각 상태가 변할 때 이렇게 열이 흡수되기도, 방출하기도 하며 이 열이 각 상태로 변화하는데 필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로서, 조금은 딱딱한 과학시간을 넘어서 다시 우리의 주제인 말랑 말랑한 사랑으로 넘어가보자.


사랑의 상태 변화


 놀랍게도(?) 과학시간에 배운 그 그림과 거의 같은 모습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끼워 맞췄기 때문이지만.)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자유로운 연애 상태 a.k.a. 솔로, 썸 or 연애 초중반 or 방황형 연애 상태, 마지막으로 견고한 연애 상태를 나타낸다. 사랑의 상태를 나타낼 때도 분자와 같은 사랑 알갱이들로 표현해 보았다.

 비슷해 보이지만 화살표의 방향은 물질의 상태변화와 반대이다. 화살표가 나타내는 성질은 열이 아닌 '신뢰'로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려놓고, 쓰고 보니 약간 내가 우기는 꼴이 되었지만, 이왕 시작한 김에 몇 가지 더 우겨보기로 했다.


1) 분자 간에 인력(당기는 힘)이 작용해 물질의 상태는 달라지게 된다.

 = 얼음은 왜 단단하고, 물은 흐르고 수증기는 있는지도 모르게 공기 중을 떠다닐까. 모든 건 분자 간에 인력이라고 한다. 인력, 즉 당기는 힘. 분자 간에 당기는 힘에 의해 얼음은 단단하게 굳어있고, 액체의 분자 사이의 인력에 의해 선배에게 소주를 한잔 따라줄 때도 가득 따르며 표면장력! 을 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사랑으로 넘어가 보자. 자유로운 솔로 상태일 때는 가끔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긴 한가 싶을 정도로 사랑 알갱이들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이 없다. 그러다가 썸을 타거나, 사랑을 시작할 때는 말랑 말랑하고 끈적한 감정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사랑이 무르익어 서로 간의 사랑이 단단해지게 되면 그 무엇도 쉽게 사랑 알갱이 사이의 인력을 끊어버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2) 물질이 고체 상태일 때는 진동운동만 한다.

 = 얼음 한 조각, 물 한 컵, 그리고 수증기가 가득 담긴 네모난 큐브 박스를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놓고 뚫어지게 쳐다봐도 어느 하나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주 자세히, 보다 자세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분자들을 살펴볼 정도의 시력을 갖게 된다면 각 분자들이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분자 사이의 인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기체 상태의 분자는 정말 자유롭다. 여기저기 튀어 다닌다. 액체는 그보다는 덜하지만 어느 정도의 움직임은 가능하다. 하지만 고체의 경우 다르다. 그 자리에서 가만히 진동만 할 뿐이다.


 우리의 사랑에 이 분자의 움직임을 대입해보자. 내 마음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사랑 알갱이들은 오늘 나와 1020번 버스를 함께 탄 긴 머리 학생에게 빠졌다가, 내일은 또 슈퍼에서 스치듯 만난 숏컷 학생에게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액체상태에 비유할 수 있는 애정의 초중반 단계에서는 어떨까. 거의 움직임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아직은 이 사람과 긴 나날을 함께 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물길을 왼쪽으로 내놓으면 왼쪽으로도 흘렀다가 오른쪽으로 내놓으면 오른쪽으로도 흐르듯, 아직은 확신이 없다.

 그렇다면 견고하고 단단한 사랑의 형태에서는 어떨까.

 진동뿐이다. 그 자리에서 가만히 묵묵히 분자끼리 자리도 한번 바꾸지 않고 알갱이들이 다 같이 손을 꼭 맞잡고 위아래로만 뛰고 있는 셈이다.


3) 열에너지로 인해 상태 변화를 한다.

= 앞서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태변화를 할 때는 열이 흡수되기도, 방출되기도 한다. 얼음에 열을 가하면, 물이 되고, 더 끓여 100도가 넘으면서 수증기로 변화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열에너지로 인해 물질이 상태변화를 하게 된다.

 사실 이 부분에서 오류 아닌 오류가 생긴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사랑의 상태변화에서는 신뢰로 인해 사랑 알갱이들이 서로를 당기게 되고, 그렇게 견고한 사랑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이 100도가 되기 전에 끓지 않듯, 더 끈끈하고 더 단단한 사랑은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특정 신뢰도의 범위를 넘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4) 물질 특성에 따라 녹는점, 끓는점이 다르다.

= 어떤 사람은 흔히 말하는 금사빠로, 기체 상태에서 언제든 썸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사랑을 시작하는 단계에 수많은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각각 물질도 녹는점, 끓는점이 다르듯 사람들은 각각의 성향에 따라서 더 쉽게 사랑에 빠질 수도, 사랑에 빠지는데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물을 끓일 때 기압을 높여, 끓는점을 낮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서 더 쉽게 사랑에 빠지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물질의 특성이 다르듯, 사람의 사랑 온도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닌 것이다.

 단지 다 다를 뿐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적다 보니, 어쩌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논할 때도 일단 우기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누군가는 반박을 하고, 다시 누군가는 그 반박의 반박을 하겠지만. (물론 이렇게 글을 쓰며, 감히 그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마음은 1도 없습니다)

 철학 이야기로 시작해, 어쩌면 시시하게 끝나버린 글이지만 사랑의 상태변화를 논하고 있는 이 크게 의미 없는 이 말장난 같은 글에도, 누군가는 '이건 아닌데'하며 반박을 하려나. 그렇다면 나도 철학자가 된 것 같은 아주 근사한 기분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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