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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May 23. 2021

나는 출근길에 레이스를 한다.

 나는 한국으로 따지면 지하철이라고 볼 수 있는 U-Bahn을 타고 출퇴근한다. 매일 아침 7시 48분 차를 탄다. 왜 굳이 7시 48분 차냐 하면, 회사 방향으로 가는 차는 15분에 한 번씩 오는데 이때 차를 타야 출근 시간인 8시 30분에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도착하게 된다.

 

 7시 48분에 집 근처 역에서 타고 회사 근처 역에서 내리면, 거의 매번 나와 같은 차에서 내려 회사로 향하는 길로 똑같이 걸어가시는 한 분이 계신다. 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왜 나는 이 분을 인지하고 있는 걸까. 이 분은 내 맘 속에서는 경쟁 상대가 되어버렸다. 내가 가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고, 목적지도 거의 비슷하다 보니(우리 회사 도착하기 조금 전에 좌측으로 꺾어가시는 듯하다) 어떤 날은 내가 더 빨리, 어떤 날은 그분이 빠르게 걸어가게 된다.



 처음에는 물론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가 이 '레이스'에서 이긴다고 해서 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뒤쳐진다고 해서 벌을 받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조금 한심하기도, 어떻게 보면 웃기기도 하는데 나름의 전략도 서게 된다.


 역에서 회사까지 멀지도 않은 길이지만 신호등이 3개가 있다. 이 3개의 신호등이 '역전'할 수 있는 스팟이 된다. 3개 중 첫 신호등은 역이 찻길 중앙에 있어, 역에서 인도로 가는 신호등이기에 항상 같이 건너게 된다. 그다음 2개의 신호등이 중요한데 이 신호등은 신호도 굉장히 짧고, 금방 바뀐다. 이 분은 발걸음이 참 빠르시기에 나보다 한 차례 빠른 초록색 불에 건너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는 이미 나는 경주에서 진 거다. 반대로 어쩌다 보니 내가 더 빠르게 걸어 앞선 초록색 불에 건너면 그 날은 내가 이기게 되는 거다.



 이런 날이 있던 중 문득 아주 원초적이고, 진작에 머릿속에 떠올랐어야 할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앞서 말한 것처럼 이기고 진다고 해도 상벌이 없고, 우선 무엇보다 왜 혼자 이기고 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심지어 상대 동의도 없이(머릿속에서 일지라도) 혼자 이 의미 없는 경주를 시작하게 된 걸까 싶었다.

 왜 나는 그 분보다 뒤쳐질 때는 마음이 조급해질까. 같은 회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아는 사람도 아니고, 게다가 지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출근길에 나를 재촉할까 싶었다.

 

 나는 이제는 이 경주를 그만두었다. 그분이 나보다 앞서도 (가끔은 순간순간 조급해질 때도 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내 원래 걸음대로 걸어간다. 혹시 내가 어쩌다 보니 발걸음이 빨라져 앞서더라도 그러려니 한다. (이 때도 이유모를 성취감을 느낄 때가 있는 걸 보면, 내가 아직 정신 못 차린 것도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내 인생에서 비단 출근길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여기저기서 가상화폐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속출'했다.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배가 매우 아플 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온라인 상의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소액 거래를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에 독일에서 가상화폐 계좌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당장 오늘이 아닌, 내일 시작해도 늦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외국인으로도 개설이 가능한 가상화폐 계좌를 열었다. 업체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순간에는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이미 내 돈이 입금이 되어있었고 한 동안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리뷰를 찾아보고, 내가 잘못된 업체를 택했다는 걸 깨달았다. 거래는 한 번도 하지 않고 바로 입금한 돈을 돌려받으려고 했다. 돈을 돌려받을 때도, 내가 거래할 돈을 다시 넣고 빼는 건데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이때의 스트레스는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가상화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주식과는 달리 24시간 시장이 열리다 보니, 하루 종일 마음을 졸여가며 오르고 내리는 변동상황에서 올라도 '아, 더 넣을걸' 떨어지면 '아, 하지 말걸'했을 전형적인 일희일비 새가슴의 투자자였을 걸 내가 가장 잘 알면서도 뛰어들 생각을 했다. 괜한 '조급함' 때문이었다. 남들은 다들 하는 것 같고, 나는 뒤쳐진 것 같아서.

 출근길 레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내가 늦지 말아야 할 건 나의 출근시간일 뿐인데, 그분은 출근시간에 조급하게 걸어가야만 하는 상황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저 혼자서 이유모를 조급함에 휩싸였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때가 있다', '우리는 모두 꽃이다, 다만 피어나는 시기가 다를 뿐', '인생에 목표와 방향이 중요할 뿐'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격언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조급해지기만 했다.

 출근시간이 정해져 있듯, 내 인생에 있어 정해진 목표가 있다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목표에만 다다른다면 우린 조금 여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출근길 레이스를 포기한 뒤, 햇살의 감사함과 음악 한 곡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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