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나와 살면서 다른 건 크게 불편하거나, 아쉽지 않은데 가족에게 해야 할 당연한 것들을 못할 때가 많이 아쉽다. 가족의 생일이나 부모님 결혼기념일 등 기념일을 직접 챙기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이런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가족이 보고 싶을 때 쉽사리 못 보는 건 참 아쉽고 개인적으로는 나 없이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형에게 미안함도 가지게 된다.
우리 집은 아들만 둘인데, 내가 둘째다. 그나마 어렸을 때부터 딸 같은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갑게 살아왔으나,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아무리 '딸 같은 아들'이어도 딸만큼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최근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지나간 아버지 생신도, 부모님 결혼기념일도 멀리서 메신저를 통해 연락만 하는 게 전부였다. 올해는 어버이날이 되기 전에 이번에는 형에게만 맡기지 말고 뭐라도 좀 챙기자는 생각에 여자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풍선 꽃바구니'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여자 친구 어머니 생신 때 그냥 꽃바구니도 아닌, 풍선에 담긴 꽃, 사진, 그리고 메시지까지 적힌 풍선 꽃바구니를 선물해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여자 친구와 같이 알아보고, 두 분의 첫 유럽여행 때 찍어드린 사진 중에 잘 나온 사진을 고르고, 메시지를 적어 신청했다. 추가로 꽃바구니 아래에는 인터넷에서만 보던 뽑는 재미가 있다는 '줄줄이 용돈'도 함께 신청했다. 꽃바구니가 도착하는 날짜도 너무 늦지 않게 날짜 조정을 해두었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았다.
택배 도착 당일에는 부모님이 외가댁에서 식사를 하느라 집에 안 계셔서 못 받아보셨는지 연락이 없으셨는데, 다음날 어머니는 아버지가 줄줄이 용돈을 목에 걸고 있는 사진과 함께 동영상을 보내셨다. 동영상은 꽃바구니와 함께 용돈을 뽑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동영상 속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큐'에 맞춰서 용돈도 뽑으시고 웃기도 하시고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동영상에서 '아들 덕분에 이런 것도 받아보네'라는 말씀도 하셨다.
나는 정말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좋기도 하고, 동시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만 해봐도 이렇게나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게다가 용돈을 드리면서도 좀 적은 것 같은데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걱정이 소용없을 만큼 좋아하셨다.(아, 물론 더 많으면 더 좋아하셨을지도 모르지만 ㅎ)
내가 직접 부모님께 꽃바구니를 드린 게 아마 중학교 다닐 때쯤 어버이날에 드리고는 처음인 것 같다.
이번 일 뿐만 아니라,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나는 정말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서 잘 모른다'라고 느낀 적이 몇 번 있다.
이번 꽃바구니에 넣은 사진을 찍은 장소인 스위스에 두 분과 함께 여행할 때였다. '융프라우'에 올라 설산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아버지 어머니의 동영상을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는데, 당시 우리 아버지가 양손을 펼치시고는 빙글빙글 돌고 계셨다. 이 장면은 아직도 내게는 충격이다.
우리 아버지는 육군 장교 출신으로, 내가 태어날 때쯤에는 군을 떠나셨음에도 어렸을 적부터 우리 집에서 아버지 말씀은 법이었고 정말 무서워했다. 아버지께 혼나는 형을 보고자라며, 나는 절대 저렇게 혼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말썽도 안 부리며 자라왔던 것 같다. 심지어 어머니와 장사를 하실 때도 아버지는 규율과 원칙을 워낙에 중시하시고, 딱딱하셔서 어머니 계실 때만 오는 손님도 있을 정도였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 아버지도 많이 유해지시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스위스에서의 아버지의 그 표정과 '턴'이 담긴 동영상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동시에 내가 독일에 와서 살면서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최애 영상'이다. 아직도 그 영상을 보면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새삼 또 내가 너무 부모님을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 때긴 하지만 어머니와는 둘이서 패키지로 단양 여행도 가고, 이모와 셋이 일본 여행도 가기도 하고 여행이 아니더라도 아침에 장 보러 가실 때 따라나가서 같이 짐도 들기도 하고 빵도 사 오고 했기에 당연히 어머니는 내가 잘 알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형과 어머니, 나 이렇게 셋이서 외식을 할 계획이었고 외식메뉴를 고르다가, 한정식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머니는 그때 '한식은 집에서 맨날 먹는데 다른 거 먹자'는 이야기를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내게는 당시에 저 이야기가 너무 충격이었다.
왜인지 당연히 어머니는 한식만 좋아하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 우리는 형이 예약한 부암동에 있는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갔다. 이름이 길어 기억하기도 힘든 파스타를 비롯해서 다양한 음식을 시키고, 와인도 한 병 시켰다. 어머니는 정말 맛있게 드셨고, 와인도 한 병 모두 비었다.
그 날을 생각하면 나는 또 가슴이 좀 아린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정말 잘 몰랐구나.
정작 나도 매일 한식을 먹으면 질리면서, 부모님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지. 또 여행을 가고 좋으면 아이처럼 웃을 줄도 아시는데 왜 모르고 살았는지. 지금은 그걸 알면서도 부모님을 위해서는 꼭 대단한 게 필요하다고만 생각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철이 들지 않았다. 다만 바라는 건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때 두 분이 내 곁에 있었으면 한다는 것.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