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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Jul 10. 2021

서른두 번째생일을 맞으며

 며칠 전 서른두 번째 생일날을 맞았다.

 가족부터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그리고 오랜 시간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에게도 축하를 받았고, 다시 한번 감사한 하루가 되었다. 그런데 새삼 '생일', 즉 내가 태어난 날에 대한 기쁨이랄까, 기대가 이제는 옅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만 해도, 나에게 생일날은 크리스마스, 설날과 더불어서 가장 기대되는 날 중 하나였다. 친구들을 불러 생일 파티를 하고, 생일 선물을 받고, 다 같이 모여 앉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면 눈을 꼭 감고 촛불을 불고. 사실 어렸을 적부터 '인싸'적 기질이 없어서 많은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생일 파티를 했던 건 한 번 정도 기억이 나지만. 어쨌든 조금 자라고 나서 중고등학교 때는 친한 친구들과 밥 먹고, 노래방도 가고 그랬던 것 같다. 십 대 때까지 내게 생일은 말 그대로 '선물'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에 나와서 살아가는 걸 축하하는 날.


 점차 시간이 지나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처음으로 자유로이 술도 마시고 (물론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게 술도 잘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하다 보니, 내 생일을 비롯해서 친구들 생일날은 특히 놀아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서 놀곤 했던 것 같다.


 사회 초년생으로, 처음 일을 시작하고 나서 내게 생일날의 의미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일을 시작하며, 태어나서 계속 부모님과 함께 살던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혼자 떨어져 살기 시작했기에 가족의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멀리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매일이 바쁜 일상 속에서, 내 생일날은 큰 의미 없이 또 다른 바쁜 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당시 회사를 다닐 때 한창 바쁠 때라서 새벽같이 나가,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별 보면서 퇴근하고 하던 때에 생일이 토요일이었다. 그래서 생일날만큼은 가족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회사에 일이 터져 토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었다. 출근을 하고 일을 마치고, 오후가 되어서야 퇴근을 했다. 굳이 '오늘 제 생일입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성격도 아니기에 그렇게 지나가는가 싶었다. 저녁이 되니, 그날이 내 생일인 걸 회사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같은 팀 동기 녀석은 고맙게도 그 밤에 혼자 있는 내게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초를 붙여 가져다주었다.


 독일로 온 이후에도, 생일은 내게 그렇게까지 큰 의미는 없었다. 오히려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더 들게 되는 날이 될 뿐이었다. 지금은 다행히도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미역국도 끓여주고 케이크도 한 조각씩 사 와서 둘 만의 생일 파티를 하기에 (아쉽게도 다이어트 중이라서 케이크는 둘 다 아직 못 먹어봤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에서 혼자 지내던 날 중 생일을 맞으면,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문득 '외로운 건가'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가기도 했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런 생각은 정말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이긴 하다)



 생일의 의미가 점차 옅어지는 건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나 자신이 인식하는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어렸을 때의 나는 뭐든 될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이 '나'인 상태였지만 점차 자라며 생각보다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작은 존재구나, 스쳐가는 존재구나를 깨닫게 되고 그렇다 보니 내가 이 세상에 나타난 날, 생일의 의미도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 글만 보면, 다소 내 생일에 대해 자조적인 시각을 가지고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나는 내가 살아가는 내 삶이 너무나 좋고 행복해서 내가 태어난 그 여름날이 감사하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기쁜 날인게 아니라, 나를 이렇게나 재미있는 세상에 태어나고 건강하게 자라게 해 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감사한 날이면서도, 새삼 또 이렇게 나이 먹는구나를 느낄 수밖에 없는 날이기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드는 날이 되었다.


 이 글을 보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생일을 축하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보내시길 빌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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