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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Aug 22. 2021

나는 1237억 원짜리 종이를 산다.

 물론 1237억 원을 들여서 사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것도 수많은 변수, 다시 말해 95,344,200분의 1의 확률로 1등이 당첨되었을 때의 가치긴 하지만, 나는 그 종이 한 장을 사며 이 종이가 1237억 원 짜리겠지 하며 샀다. 복권을 사는 사람 중 누군들 1등이 아니겠거니 하면서 사겠는가.


 한국에서는 지금은 당첨금도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코인, 부동산으로 인해 시들해진 것 같긴 하지만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로또 열풍이 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도 한국의 로또처럼, 독일 로또가 있고 유럽의 몇 개국이 함께 운영하는 '유로 잭팟'이 있는데 이 유로 잭팟 당첨자가 몇 주 째 나오지 않다 보니 당첨금이 쌓이고 쌓여 90 밀리언 유로, 한화로 무려 1237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 되어 여기저기서 행운의 주인공이 되어보시라며 광고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행운의 주인공, 내가 되지 않으리란 법 없소' 하며 여자 친구와 머리를 맞대 번호를 직접 찍어서 한 장, 자동으로 한 장을 샀다. 으레 복권을 사는 사람이 그러하듯, 당첨되면 수령은 어디서 해야 하며 금액은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미래를 계획하는 행복하지만 걱정도 하는 (왜 걱정을 이렇게까지 미리 할까 싶지만) 고민에 빠졌었다.

 참 재미있는 게 사람들과 '복권 당첨되면 뭐할래?'라는 질문을 하면 생각보다 다들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마무리는 항상 '일단 사고 말해'로 끝나기는 하지만 나는 일단 샀으니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사실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큰 불만도 없고, 큰 빚이 있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직장인이 그러하듯, 언제나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꿈꾸고 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주 적은 자본으로 평생 쓸 돈을 벌 수도 있는(95,344,200분의 1의 확률임에도 불구하고) 복권을 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내게 천 억원이 넘는 돈이 생기게 되더라도, 좋은 차를 사거나 정말 넓은 펜트하우스를 사거나 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물론 아직 손에 쥐어본 돈이 아니기에, 내게 그 돈이 있다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나 여자 친구나 예를 들어 옷의 브랜드나,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기에 생각해보면 한 번에 큰돈을 쓴다기보다는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유가 가장 큰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여기 독일에서 살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고, 그 비자 때문이 아니라도 월세도 내야 하고,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벌이가 필요하다. 이는 사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한 사람 몫의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지 돈을 벌어야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직장인으로서는 짧게든 길게든, 원하든 원치 않든 정착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디지털 노마드'라는 신조어에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처럼 개인의 능력에 따라 원하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내 일을 하고, 여가시간에 그 나라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래도 사람을 꼭 대면해야 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만 일을 할 수 있는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보니 나도 관심을 가지고 코딩 등을 공부하곤 했었다. 안타깝게도, 코딩을 공부하면서 나와는 맞지 않겠다 싶어 금방 그만두었지만.

 여하튼 관심을 가지고 찾다 보니, 예전 유목민들의 삶이 그러하듯 디지털 노마드의 삶에도 분명 쉽지 않은 점이 있는 것 같았다. 우선, 내가 알아보기로는 프리랜서의 삶이 많았는데 그렇다 보니 매달 일정한 수입을 내는 것은 아니었고, 두 번째로는 끊임없이 정착하다 보니 향수병이 오기도 하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현자 타임'이 오기도 한다는 글도 읽었다.(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는 누구나 한 번씩은 고민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결론은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사람도 곁에 있으니, 함께 살아가며 일로서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들 가령 글을 쓰는 일이나, 요즘 갑자기 배우고 싶어진 트럼펫을 배우는 일이나 외국어를 배우는 일로 하루를 채우고 싶었다. 또 한국에서 지내고 싶을 땐 언제든 한국에서 지내고 동남아에서 서핑과 요가를 배우다가 해산물과 열대과일을 먹고 싶을 때는 한 달씩 살아보다가, 다시 유럽이 그리워질 때면 유럽에 한참 있어보는 꿈같은 삶이 복권을 사는 가장 큰 이유였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1237억 원까지는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원한다면 방법을 생각해볼 수 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막상 모든 것이 더 나아질 것 같아도,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또 다른 문제도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 본 내 사주에 복권 같은 갑작스러운 금전운은 없다고도 했다.


 결론은 21유로를 투자한 내 복권은 한 게임에서 12등을 달성하며, 8.9유로의 당첨금을 남겼다. 따라서, 12.1유로의 손실을 보았지만 같은 차수에 두 명의 1등이 나오며 각각 4천5백만 유로씩을 나눠 수령한다고 한다.


아이, 배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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