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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Oct 16. 2021

그녀에게 '잘한 결혼'이라 말하지만

 이미 코로나로 인해 늦어질 대로 늦어졌지만 다음 달쯤에는 한국에 가서 양가에 정식으로 인사도 드리고, 기회가 되면 상견례도 하고 결혼 날짜를 잡고는 내년 2022년쯤에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었'다. 코로나로 인해 더 늦어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회사에 이런저런 사정이 생기면서 올해는 장기간 자리를 비우기가 힘들어지면서 올해 한국행 계획은 모두 틀어지게 되었다. 자연스레 계획했던 일정들도 미뤄지면서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특히 나도 나지만, 독일로 온 이후 한 번도 한국에 못 갔던 내 짝꿍은 가족들도 보고 싶을 거고, 한국에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싶었을 테고, 우리가 계획한 모든 일정까지 미뤄진 게 아쉽다 못해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상황을 모두 이해해주었고, 어쩔 수 없지만 다음 해로 미뤄보기로 했다.



 우리는 아직 결혼식을 하기 전이긴 하지만, 함께 살고 있다. 벌써 함께 살고 있는지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까지 지내면서 한 번도 다툰 적이 없고(물론 서로 간의 가벼운 '삐짐'은 있어왔지만) 앞으로도 우리는 가끔 우리가 어떤 일로 다투게 될까? 생각하고는 한다.

 집안일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는 서로 정해진 룰이 있어 다툴 일이 없다. 나는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새로운 걸 먹어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내가 요리 담당이지만, 정리 정돈을 정말 못한다. 한국에서 가족들이랑 살 때도 내가 방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해놓으면 어머니가 나중에 들어오시면서 방 정리 좀 하라고 이야기하시곤 했을 정도였다.


 반면에 그녀는 청소하고 정리하는 데서 힘을 얻는다고 할 정도로 정리를 좋아하고, 각 잡힌 것들을 보면 뿌듯해한다. 내가 이것저것 쓰고는 어디에 둘지, 어디에 뒀는지 한 지붕 아래 있으면서도 모르면 그녀에게 물어본다.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그렇듯, 나는 못 찾는 물건도 한 번에 찾아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아예 요리를 안 하고, 내가 아예 청소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각자의 '특기'가 있는 것이다. 마치 레스토랑에서 파스타 담당 따로, 스테이크 담당 따로 있듯이 서로 잘하는 분야의 집안일을 서로가 존중하고, 각자 담당하는 분야를 맡는다.


 다만, 요리라는 건 상대적으로 티가 많이 난다. 아무래도 잘하는 티도 못하는 티도 많이 나기 마련이다. 식사도 만들어보고, 디저트도 만들어보고 하다 보니 그녀는 사진을 찍어 '한국에 우리 잘 살고 있어요'하고 보내거나 아니면 직장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요리는 남자 친구가 다 한다고 이야기하면 '결혼을 잘했다'거나 '부럽다'라는 이야기도 듣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사람인지라 겸손해야 하지만 으쓱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은 '잘한 결혼'이라면 내가 더 잘한 결혼이라는 것이다.



 나는 앞서 글에도 몇 번 쓰곤 했지만, 가끔 글이 쓰고 싶으면 글도 썼다가,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면 그림도 그렸다가, 지금은 거의 하고 있지 않지만 어렸을 적부터 내 동경의 대상이었던 음악 관련해서도 이것저것 해보곤 했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잘 해내고 있다면 팔방미인이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냥 메뚜기다. 이것도 조금 해봤다가 저기로 풀쩍 뛰어서 다른 것도 조금 해보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뛰어가는 메뚜기같이 끈기도 없고, 집중력도 길지 않다. 이런 내게 그녀는 용기도 주고, 뮤즈도 되어준다.


 벌써 2년 전이지만 그녀와 함께 했던 프랑스 여행이 내게 가사가 되어 곡도 한 곡 쓰게 만들었고, 얼마 전에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어 바탕 삼아 그림도 그렸고, 오늘처럼 우리 사이를 두고 글도 쓰게 되었다. 메뚜기 같은 내게 맘껏 뛰어다닐 풀밭을 주는 사람이다. 나의 이런 특성상 어떤 일 하나로 성공을 하기에는 좀 힘들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매우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해 준다.


 게다가 나는 생긴 건 '곰'인데, 그 속이 '미어캣'인지라 매우 예민하다. 또 뭔가 하나에 꽂히면 해결이 안 되는 이상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사실 이런 내 특성은 우리 가족만 알고 있기는 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예민하지 않은 것처럼 '좋은 게 좋은 거죠' 스타일로 대하곤 하지만 속으로는 그 꽂힌 일이 하루 종일 생각나기도 하고, 파고 들어가기도 한다. 그게 위장병이나 두통으로 오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생긴 게 곰이기도 하고, 대게는 사람들을 대하며 어느 정도는 가면도 쓰고 행동하기에 정말 가까운 사람 말고는 이런 내 특성을 잘 모른다.


 그런데도 요즘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어쩌면 가족에게 보다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더 드러내고, 남들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을 내 가장 유치한 모습도 보여주게 되는데도 그녀는 다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귀여워해주기까지 한다.


 메뚜기이자 미어캣인 내게 이렇게나 넓은 들판을 선물해주는 그녀와의 삶이 내게 행복이고, '잘한 결혼'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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