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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Feb 13. 2022

자기야, 왜 또 칭얼거려.

 지난 주말, 근교에 있는 스키장에 다녀왔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로 운전을 해야 한다는 것. 둘째로 스노보드를 타야 한다는 것. 왜 이 두 가지가 문제인가 하면, 나는 둘 다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스노보드는 그렇다 치고, 어떻게 운전을 못하는 데 운전대를 잡을 생각을 하냐는 건데, 실상은 이렇다.

 운전면허를 무려 2009년에 땄으니, 운전면허 취득은 이미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운전대를 잡은 날은 아마 1년 미만이었을 것이다. 자차가 없지만, 그나마 한국에서 쏘카와 같은 카쉐어링 서비스를 간혹 이용했기에 운전을 하긴 했지만 독일에 와서는 더더욱 운전을 할 일이 없었다.


 한국 면허증에서 독일 면허증을 바꾸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거니와, 독일에서도 당장 차를 구매할 일이 없었기에 카쉐어링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는데 이건 또 변경하고 나서 1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운전석에 앉았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 한국도 아닌 독일에서 운전을 해야 한다니. 운전 표지판이나 도로 규칙 등은 인터넷으로 미리 공부할 수 있었지만 만약이라도 사고가 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찔했다.


 게다가 우선, 이런 것들은 '변명'이라고 해둘 만큼, 나는 운전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라면 이거였다.

 독일 구석구석 좋은 곳을 가기 위해서는 운전을 하는 게 당연히 유리하고, 이번에 다녀온 스키장도 운전해서는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기차를 세 번은 갈아타서 다섯 시간이나 걸려 도착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운전은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거의 필수인 걸 알기 때문에 호기롭게 가보자! 했지만 출발하기 전부터 온갖 걱정이 있었다.



 일단 도착했다 치더라도, 두 번째 문제가 스르륵하고 피어올랐다. 나는 스키는 아예 못 타고, 스노보드도 '탈 줄 안다'라는 표현보다 '보드 위에 일어서는 봤다'라는 표현이 맞을 만큼 거의 못 타는 수준이었다.

 이번이 독일에 와서 처음 가는 스키장은 아니었다. 몇 년 전에 패키지로 버스, 리프트권까지 해서 알프스 산맥 쪽 스키장으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투어가 있어 다녀왔지만, 그때 기억도 썩 좋지가 않았다.

 한국처럼 인공적으로 스키장으로 만든 게 아니라 산맥에 눈이 쌓여있는 자연 그대로였기 때문에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본 풍경은 장관이고, 절경이고,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그렇지만 그 좁은 슬로프 옆으로 깎아내리는 절벽을 보면 내 목숨은 한 개뿐이다 라는 당연한 이치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그날을 기억해보자면 속도 줄인다고 넘어지고, 피한다고 자빠지고, 보드를 타고 내려오기보다 엉덩이로 내려오는 기억뿐이었다.

(게다가 하필 남아있는 자리가 스키장 마감 후 파티를 하고 돌아오는 투어뿐이라서 가긴 갔는데, 나는 술도 잘 못 마시고 혼자였다. 음. 확실히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그나마 이번에 가는 스키장은 나름 슬로프가 넓은 곳이 많고, 초보자도 도전하기 좋은 슬로프들이 있는 곳으로 전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유튜브로 여러 번 동영상을 보며, 기억을 되살리고자 했다. 지난번보다 더 낫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때만큼만 하더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론만 말하자면 스키장을 가는 길에 한 번 아주 크게 사고가 날 뻔했고, 스키장에서 나는 주저앉아 아무것도 못했다.


 안 그래도 오랜만에 잡은 운전대에 긴장을 잔뜩 했는데, 크게 한 번 사고까지 날 뻔하자 신경이 너무 곤두섰고 어찌어찌 스키장까지 도착했으나 마음도 몸도 너무 지쳤었다. 우선 리프트 권을 교환하고 렌털 샵에 가서는, 장비를 받는데 직원이 보드화를 준 게 아니라, 스키화를 줬고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바보 같은데 나는 그걸 또 받아서 신고 나서도 '음? 원래 이렇게 무거웠나'싶었다.

 다른 직원이 '너 신발 잘 못 받았어'해서 그때서야 땀 뻘뻘 흘리며 신은 스키화를 벗고, 다시 보드화를 받아 신으면서 곤두선 신경은 폭발해버렸다. 아마 같이 간 짝꿍은 그 때서부터 알았을 것 같다. 내 표정은 한 껏 굳어있었고, 이미 얼굴만 봐도 짜증을 한껏 내고 있었다.


 슬로프에 나가 보드를 타기 위해 앉았는데, 한창 살이 빠졌을 때 입은 보드복 바지는 꽉 끼어서 보드까지 향하는 내 몸을 꽉 잡아매고 있었다. 이 때도 짜증이 났다.(이 정도면 성격 파탄 수준이다.) 왜 나는 보드도 제대로 못 타는가 혼자 성질이 났고, 막상 일어나긴 했는데 어떻게 내려갈 수 있었는지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일어서면 넘어지고 또 일어서면 넘어졌다. 우선 짝꿍에게 내려가라고 하고 따라간다고 했지만 몇 번 해보다가 의지가 꺾여버렸다. 나 자신에게 짜증도 나면서 무기력해지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포기하나 싶다가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났다.


 보드 바인딩을 풀어 옆구리에 끼고 짝꿍이 기다리는 곳에 걸어내려갔다. 내려가서 사람이 잔뜩 기다리고 있는 리프트 앞에서 주저앉아 말했다.

 '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

 이걸 들은 짝꿍이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창피하고, 인터스텔라처럼 그때로 돌아가 'No!'를 외치고 싶지만 이미 일어난 현실이었다. 그렇게 주저앉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후에 짝꿍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까지 나에게서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나도 당시에 당황스러웠다. 이런 내가 너무 싫지만, 다른 방도가 없는, 꼭 내 안에 알맹이가 빠져나가버린 느낌이랄까.



 다만,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딱 하나 희망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서른세 살짜리 '꼬마애'를 옆에 둔 이 사람이 아주 현명하다는 거였다.

 만약 이 사람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게 앉아있을 수 있냐고 시간이, 돈이 아깝지 않냐고 몰아세웠다거나 혹은 논리적으로 나를 설득시키려고 했다거나 아니면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옆에서 계속 말을 걸었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그래, 이대로도, 여기 온 것만으로도 좋아. 그러니까 괜찮아'라며 충분히 즐기고 있다고 얘기해줬다. 또, 그럼 나 여기서 사진 찍어달라며 그저 사진만 찍으면 된다 하고, 내 사진을 칭찬해줬다.


 적고 나서 보니 더더욱, 이건 거의 오은영 박사님이 아이 달래듯, 나를 달래준 거구나 싶다.

 그러다가 짝꿍은 내가 신경 쓰지 않게 사람이 많이 없는 곳에서 슬슬 걸어 올라가 스키를 타고 내려오길 반복하며, 나름의 방법으로 즐기고 있다고 보여줬다. 나도 이때쯤에는 진정이 되었고, 아주 짧지만 보드를 밟고 어색하게나마 눈길을 타고 내려왔다.



 비록 이 날 리프트권은 전혀 사용하지 못했고, 내가 해본 거라고는 아주 짧은 오르막길에서 보드를 한 번 밟아본 거였고 대부분의 시간은 거의 앉아있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스키장을 가보고 싶다. 이번에는 제대로 배우고 타더라도,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만약 이 날, 이렇게 눈 밭에 앉아 칭얼대는 나를 비난하거나, 설득하거나, 혹은 함께 짜증을 냈어도 되는 상황임에도 꾹 참아 준 짝꿍이 없었더라면 다시는 스키장은 가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지도 몰랐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날은 지금까지 만나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던 우리가 처음으로 크게 다툴 수도 있는 날이었다. 아마 내 입장에서 글로 적어서 덜하면 덜했지. 아마 이때 내 모습을 누군가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면 여기저기서 너 그렇게 살지 말라며 연락이 왔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날이 될 수도 있는 이 날은 뜻밖에도 내게 매우 값진 날이었다.

 우선, 생각보다 독일에서 운전하는 데 겁먹을 필요도, 쫄 필요도 없다는 걸 배워서 돌아오는 길 운전은 매우 수월했다는 것. 더더욱 가치 있는 건 이 '꼴배기'인 내 모습조차도 곁에서 묵묵히 다독여 줄 수 있는 이 사람이 내 곁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것이다.

 생긴 것과는 달리 몸도, 멘털도 유리구슬 같은 이 덩치만 큰 아이와 살아가며, 이런저런 위기 상황이 오더라도 현명한 이 사람은 나를 끌고, 밀어가며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 그렇게 온갖 짜증을 낸 나는 정말 아직 많이 모자란 사람이구나 느끼게 한 하루였다.


  물통에 물이 가득할  건네는  한잔은 그리 어렵지 않을  있다. 물통에 물이 조금 남았을  타인에게 건네는   모금이 어렵다. 그래서 나는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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