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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석이 May 21. 2023

23.05.13 - 52번 버스와 호랑이

가진 게 나 밖에 없어서요

#1. 52번 버스.


좇됐다.


현재시간 28분. 오송역에서 37분 기차인데, 그러니까 오송역에서 내렸어야 했는데 한참을 졸다 눈을 뜨니 버스는 오송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잠들지 말 걸. 아까 잠시 눈떴을 때 그냥 깨있을 걸. 여기서 자면 얼마나 많이 잔다고. 이른 아침부터 일찍 가야 한다고 설치던 내 모습과 그러고도 버스 시간을 맞추지 못해 버스표를 반환하고 다시 기차 표를 끊던 모습들이 미련스럽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버스는 이제 오송역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게이트 앞에 잠깐 멈춰 서 있었고, 나는 그 잠깐 사이 기사님께 사정을 말하고 한번만 세워달라고 염치불구하고 빌어 볼 깡조차 없어서 우선 하차 벨부터 눌렀다. 그리고는 빠르게 카카오맵으로 다음 하차 정류장과 거기서 오송역으로 오는 버스가 언제 오는지,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같은 것들을 순서대로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첫줄에 써두었다.


이미 시간은 30분을 넘어가고 있었고, 제일 빠른 502번 버스는 약 3분에서 4분 뒤 도착, 탑승 후 역까지의 소요 시간은 5분 남짓. 그럼 제일 빨라도 최소 소요시간은 8~9분. 나에게 남은 시간은 7분에서 이제 막 6분이 되어가는 찰나. 희망이 점점 사그라드는 게 느껴졌고, 평생을 빨리 움직이지 못하며 살았던 탓에 중요한 행사나 일정을 차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절망했던 과거의 기억들과 기억마다 새겨진 그 익숙한 좌절감이 스멀스멀 마음 속 에서 어둡게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어떡하지.


나는 꽤 멀리 떨어진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고, 버스는 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내가 탈 기차 출발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 이 가망 없는 상황에서,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어떡하지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뱉는 것조차 엄두를 못 내면서도 두 번 정도 ‘어떡하지’를 외쳤을 때쯤. 늘 보던 모양과는 다른 버스가 멀리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꼭 서울에서 봤던 마을버스처럼 생긴 52번 버스였다. 52번 버스? 한 번도 들어보지도 본 적도 없는 버스지만 지금 여기서 오송역으로 두 발로 뛰어가는 것 말고 탈 것이라고는, 버스가 언제 들어온다고 알려주는 버스 배차 디지털 표지판에도 뜨지 않고 카카오맵에도 뜨지 않았지만 눈앞에 갑자기 등장한 이 52번 버스뿐이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이윽고 버스가 속도를 줄이며 정류장에 멈춰섰다. 지금 시간은 33분. 남은 시간은 4분.

타는 곳과 내리는 곳이 한 곳 뿐인 미니버스의 문이 열리고, 나는 내가 살아오면서 선의로 행동했던 모든 기억들에 기대어 조심스레 버스 기사님께 여쭈었다.


“기사님, 오송역 가요?”


간다고 말해주세요. 제발.


“...?”


기사님은 내가 너무 조심스럽다 못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뱉은 말을 잘 못 들으셨는지 약간 애매한 표정을 지으셨다.

내 잘못이다. 유일하게 찾아 온 천금 같은 기회를 대하는 태도가 이 모양이라니. 몸 구석구석에 힘을 주고 의사표현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나는 다시 한 번 입술에 힘을 주고, 그렇지만 ‘기사님이 잘 알아듣지 못하신 것은 절대 기사님의 탓이 아님’을 적절히 어필하면서 기사님께 질문을 던졌다.


“이거, ‘오송역’ 가요?”


제발.


“...(끄덕)”


신이시여.


(그리고 뒤 따라 탄 다른 승객이

‘기사님 오송역 가요?’

라고 물었을 때 너무나도 불경스러움을 느꼈지만, 꾹 참았다. 내가 물어본 걸 바로 뒤에 있었으면서 또 묻느라 시간이 지체되어서가 아니라 그저 이 소중하고 천금 같은 대중교통을 대하는 태도가 불경스러워서였을 뿐이다.)


버스는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간절한 마음이 기사님의 오른쪽 발끝에 닫기를 기원했다.

‘기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조금만 더 빨리 가주시면 진심으로 더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버스에 탄 승객이라고는 나와 불경스러운 이 둘 뿐이었는데, 흐릿한 기억에 따르면 내가 온 몸으로 기사님 제발 조금만 더 빨리 가주세요 하지만 전 그걸 입 밖에 내뱉는 끔찍한 짓은 할 용의가 없습니다. 안전운전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밟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같은 사인을 몸을 비비꼬고 안절부절하며 보냈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비언어적 언어도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했던가. 기사님은 그런 짓거리들을 눈치 채신 듯, 어쩐지 속도를 높이며 달려 주셨고 나는 36분에 기적적으로 오송역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와 함께 바로 튀어나가기 위해 미리 문 앞에 서서 헛기침으로 목까지 가다듬고 기다리고 있던 나는 엔진소리를 겨우 뚫을 만큼의 볼륨으로 기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52번 버스를 개같이 뛰어나갔다.


제발. 연착돼라. 지연이라고 떠있어라. 오송역 안으로 달려 들어가서 에스컬레이터가 아닌 그냥 계단에 발을 디디는 순간 ‘계단으로 가는 건 조금 실수군’이라고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37분. 제발. 제발.

그냥 2층도 아니고 긴 계단을 한 번, 두 번, 세 번이나 거쳐서 올라가야 하는 오송역의 구조를 저주하며 두, 세 칸씩 뛰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더 이상 들이쉬어 지지도 않는 것 같을 때 쯤 플랫폼 번호가 4번임을 확인하고 4번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계단의 출발 지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38분. 담배 피우고 누워 있다가 다시 담배 피우러 나갔던 그 시간들을 원망하고 증오하며 쥐어짜지는 폐를 부여잡고 계단을 오르는데 위에서 싸한 적막 대신 웅성이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제발, 제발. 김범수의 제발 이소라의 제발 진짜 제발 진짜 졸라 제발.




계단을 다 올라 심리적 심정지 상태에 이르러서 만난 풍경은 사람들이 기차를 막 타고 있는 모습. 그리고 열차 번호가 다른 기차가 연결되어 있어서 본인이 예매한 좌석이 있는 열차를 찾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뛰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이렇게 사람들을 사랑했던가.

얼마 전 q&a영상에서 인류애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필요하다고는 생각하는데 억지로 가지기엔 저도 이제 나이 먹다보니 쉽지 않아진 것 같다고 경솔하게 대답했던 것이 생각났다. 아니었다. 나는 이 순간 내가 오늘 만났던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직 차를 타고 있는 이들. 분주히 자기 열차 칸을 찾아가는 이들. 날 실어 날라 주셨던 버스 기사님. 오송역에서 다음 역까지 날 실어 날라 주셨던 기사님과 52번 버스를 탈 때 불경스러웠던 그 이 까지도.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충만한 사랑을 느끼며 나는 열차에 올랐다.







#2. 호랑이.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었다. 다행히도 내가 있던 지하철역에는 공용 충전기가 있었고 나는 공용 충전기에 핸드폰을 꽂고 옆에 있는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북으로 이걸 쓰고 있었는데.


“그거는 이거랑 많이 다릅니꺼?”


라며 옆에 앉아 책을 읽으시던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질문을 하셨다.


“네?”


“그거 그 콤퓨타는 이거 핸드폰이랑 많이 다릅니꺼?”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말씀인즉슨, 스마트폰과 내가 쓰는 노트북의 기능이 많이 다르냐는 거였다. 나는 잠깐 고민했지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내 기준에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비롯한 PC나, 사실 어르신들이 쓰시기에는 크게 다르게 기능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시더니 나에게 오셔서 다시 질문을 하셨다.


“이거는 그럼 어디서 배울 수 있습니꺼?”


예상하지 못 한 질문에 잠시 멈칫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미디어 교육 보조 강사인데 성심성의껏 대답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지역의 미디어 콘텐츠 교육기관들 정도를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그렇구나 알겠다며 다시 자리로 돌아가셨다. 그리고는 또 다시 일어서시더니 나에게 다시 오셔서 또 질문을 하셨다.


"주민센터나 이런데서는 안하는가?"


"아마 그런데서도 할 거예요."


"아아, 그래요. 그럼 여기로 가면 이걸 배울 수 있는가?"


나는 사실 기본적인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기에 해당 기관들을 검색해서 기관명과 전화번호를 적어 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신 채로 봇물 터지듯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아니 요즘에는 이거 모르니까 돈 있어도 쓸 수도 없고 희안하더라고."


할아버지는 얼마 전 영덕에 가려고 차표를 끊으려고 하셨는데, 터미널에 와보니 온통 키오스크로 되어 있으니 쓰실 수가 없으셨고 사람이랑 이야기해서 직접 표 끊는데는 어딘지도 모르겠고 하셔서 키오스크 옆에 있는 젊은 사람에게 '돈 줄 테니 이거 좀 끊어달라'고 하셨댔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내가 뭐 몇년이나 더 살겠냐만은 그래도 이거 안배우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그래."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으레 사람들이 하는 '사람은 죽을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식의 뭉실뭉실한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할아버지는 그 차표를 끊을때 진심으로 답답하셨었고,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셨으며,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셨고 그래서 배움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리셨고 오늘도 옆에 있는 컴퓨터를 만지는 젊은이에게 도움을 청하신거였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는데 할아버지는 공부하는데 자꾸 방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시며 자리를 뜨셨다.


그 날의 대화는 꽤 길었는데, 할아버지는 그 역에서 자주 앉아 책을 읽으시는지 역에 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막 뛰어가는걸 자주 보신댔다. 그래서


"거 뒤에 호랑이 쫓아옵니꺼?"


하며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너무 급해졌다고. 사람들이 너무 바쁘고 인색하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계속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말과 사람들이 너무 급해졌다는 말을 한참을 쏟아내셨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자리를 떠나시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어떻게든 컴퓨터를 꼭 배우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컴퓨터를 배우지 않으실까봐, 정확히 말하면 배우지 못하실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혹시 더 도와드릴 수 있는게 있을까 싶어 전화번호라도 알려드릴 요량으로 할아버지가 가신 방향으로 급하게 뛰어 쫓아 갔는데 할아버지는 이미 어디론가 떠나시고 없으셨다. 할아버지도 호랑이가 쫓아오셨던걸까. 호랑이는 사람을 안가리고 쫓아다니는 걸까.


공교롭게도 하루종일 전전긍긍 뛰어다녔던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왜 겁이 났는지, 무슨 생각을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질문은 머리속에 계속 남았다.


"거 뒤에 호랑이 쫓아옵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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