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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Dec 13. 2020

<동경가족> 7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이야기

영화 <동경가족> 줄거리 및 리뷰

도쿄에서 살아가고 있는 코이치네 가족. 그런 그들에게 코이치의 부모인 슈키치와 토미코가 찾아온다.


장녀인 시게코까지 코이치의 집을 찾아 기다리고 있는데 이 집의 막내인 쇼지는 오늘도 사고를 일으켜버린다. 시나가와 역으로 가라는 시게코의 말을 까먹고 도쿄 역에서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던 것.


영화 <동경가족> 줄거리


한편, 이미 시나가와 역에 도착한 코이치의 부모인 슈키치와 토미코. 쇼지가 서둘러 간다고 했지만 성격 급한 아버지는 택시를 잡아 코이치네로 발걸음을 향한다. 온 식구들이 모이고 역을 착각한 쇼지 역시 집으로 돌아온다. 도쿄에 나와 독립을 했지만 부모님 입장에선 여전히 쇼지는 개구쟁이 막내아들처럼 보이는 듯했다. 오랜만에 자식들 얼굴도 보고, 손자들 재롱도 보며 이 부부는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음 날, 장녀인 시게코의 집. 그는 남편인 쿠라조와 밥을 먹으며 부모님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쿠라조는 장인어른을 대하는 게 영 어려운 듯 보인다. 다소 깐깐한 성격의 장인인 슈키치가 어려웠던 것.


코이치의 집에서는 삼대가 나들이 갈 준비로 한창이다. 모두가 준비를 끝내고 나가려고 하던 이때 급한 왕진 요청이 들어와 코이치는 진료를 떠난다. 오래간만에 나들이가 취소당한 이사무는 시무룩해진다. 그러자 코이치를 대신해 토미코가 이사무를 데리고 나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손자를 달래준다.


다음 날, 병원 일로 바쁜 코이치네를 떠나 시게코의 집을 찾은 이들 부부. 때마침 비까지 오며 어디 놀러 갈 수도 없는 상황. 불편한 상황에서도 사위 쿠라조는 온천욕 제안을 하고 슈키치는 흔쾌히 길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이 다음 날이 되자 일이 바빴던 시게코가 쇼지에게 부모님을 떠넘기게 된다. 함께 시티 투어 버스를 타며 시간을 보내게 된 쇼지와 부모님. 꽤 훈훈한 시간이 만들어지나 했지만 장어 덮밥을 먹기로 한 곳에서 아버지 슈키치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그걸로 먹고살 순 있는 거냐?

그리고 때마침 무대 세트 일을 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오며 자리를 뜨게 된 쇼지.


한편, 시게코와 코이치는 부모님을 요코하마 호텔로 모실 생각을 한다. 부모님을 관광시켜준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호텔로 떠넘길 계획을 세웠던 것. 그렇게 고급 호텔에 묵게 된 이들 부부. 저녁에는 고급 레스토랑도 경험하며 호캉스를 즐기게 된다.


다음 날, 요코하마 앞바다를 구경하며 하루를 열게 된 두 사람. 그런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토미코가 주저 앉는다. 다행히 별 일 아니라는 말에 슈키치는 곧장 시게코의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시게코.


그러자 슈키치는 오랜 기간 함께 교직에 몸 담았던 핫토리를 조문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토미코는 막내아들 쇼지의 집을 찾아가 저녁밥을 지어주는데 뜻밖의 손님 노리코가 찾아온다.

예상했던 것처럼 노리코는 쇼지의 여자 친구였다. 그런 노리코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들.


다음 날 아침엔 노리코가 반찬거리를 사 오기도 한다. 그런 노리코가 마음에 들었는지 토미코는 쇼지 몰래 돈 봉투를 그녀에게 쥐어준다. 이런 말과 함께,


이거 네게 맡길게
무슨 일 생기면 써

하루를 따로 지냈던 이들 부부는 코이치네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이사무와 계단을 오르던 토미코. 그런데 갑작스레 정신을 잃은 토미코.


코이치가 구급차를 불렀고 토미코가 입원한 병실에 모이게 된 가족들. 그리고 토미코 외에는 아무도 본 적 없던 노리코 역시 그녀의 병문을 오게 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노리코를 쳐다보는 코이치 식구들. 그리고 진심으로 토미코의 회복을 바라던 노리코. 이들은 과연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명작의 리메이크


이 작품은 2013년에 만들어진 일본 영화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알기 위해선 이 작품의 원작 격인 <동경이야기>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걸작인 <동경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리메이크작답게 이 작품은 꽤 비슷한 줄기로 흘러간다.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 이들에게 소홀한 도쿄 가족들. 그리고 이런 부모님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며느리까지.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재창작된 경향이 짙은 작품이었다.


달랐던 건 아마도 시대상이었을 것이다. 원작인 <동경이야기>는 태평양 전쟁을 치르고 난 뒤 일본을 다시 재건하는 상황 속, 고향을 떠나 도쿄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담는다.

반면, <동경가족>은 본격적인 핵가족화, 개인주의 사회가 팽배해지는 현대가 배경이 된다. 전쟁을 치른 뒤만큼 정신없는 건 아닐 테지만, 그 어떤 시기보다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만 하는 현대 사회 속 이들은 가족의 소중함보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자식인 만큼 어느 정도 부모의 대해 의식하고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고급 호텔로의 호캉스를 그 예로 들 수 있는데, 이 선택에도 사실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 제대로 여행을 시켜드리지 못하는 자식들 입장에서 호텔 예약은 꽤 큰 투자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죄의식을 지우려는 하나의 면죄부였으며, 귀찮은 짐을 비교적 싸게 처리할 수 있다는 철저한 계산에 따른 투자였다.


점점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가 느슨해지고 개개인의 안위와 이익이 가장 중요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원작과는 다르게 이 작품에서 막내아들 쇼지가 큰 비중으로 다뤄진다. 철딱서니 없는 막내로 묘사되지만 그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비록 아버지가 만족할 직업은 아니었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돌본 것 역시 쇼지 쪽이었다.


굳이 두드러지던 등장인물이 아닌 쇼지의 역할을 강화시킨 건, 개인주의로 묘사되는 척박한 현대사회를 꼬집는 대목이자, 막연할 수도 있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그렸으면 하는 감독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죽음과 삶, 그 경계에서


이 작품은 죽음과 삶의 그 경계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비교적 정정했던 토미코의 죽음 이후, 이 가족은 전보다 더 빠르게 유대감을 상실해 버린다.


노부부를 도쿄까지 오게 한 건 수많은 가족이었다. 단순히 한 세대의 가족이 모이는 게 아니라 그다음 세대라 볼 수 있는 손자 아이까지 등장하며 여러 세대의 결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세대의 결합이 된 이 시점에 한 세대가 저무는 사건이 일어난다. 영원할 것 같았던 한 생명의 죽음은 인류가 살아온 보편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집약체이자, 이전 세대들의 숙명에 대해서도 보여주는 듯했다.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인간의 수명은 어느 시점에 그 한계를 맞이하고, 빛이든 어둠이든 그 무언가를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결합은 태생적으로 불편한 동거라 볼 수 있다. 기성세대를 불편해하는 젊은 세대, 그리고 그런 불편함을 느끼고 스스로 거리를 두는 기성세대. 꽤 극적인 전개로 이어졌지만 이는 당연할 수밖에 없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한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핫토리를 조문하기 위해 찾았던 곳에서 대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쇼지가 봉사활동을 하러 후쿠시마로 떠났던 이야기를 담기도 하면서 말이다.


21세기 일본 사회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 그리고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을 갈라놓았던 사건. 동일본대지진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단순한 순환이 아닌 형태로도 올 수 있으며, 우리의 생활과도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또한 <동경이야기>와 유사한 메시지라 볼 수 있다. <동경이야기>가 태평양 전쟁 이후 피해를 복구하고 패배감에 휩싸인 일본 국민들이 일어서는 과정을 응원하는 시점에서 바라본 것이라면, 이 작품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허무주의에 빠진 일본 국민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70년 전 이야기지만 여전히 우리 이야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53년 작품이 원작인 만큼, 이 작품은 거의 70년 전 이야기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시대상도 다르고 현대인이 겪고 있는 문제점도 그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문제들도 있다. 세대 간의 단절, 도시 생활이 만드는 팍팍한 현실, 안정된 직장을 원하는 기성세대의 모습까지. 시대상을 다룬 문제들도 있지만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문제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야스지로 감독은 이 작품을 70년 후인 2020년까지도 되뇌게끔 만들어 뒀다.


이 작품을 보며 우리는 부모님한테 무신경한 가족 구성원들에게 분노하기도, 그런 푸대접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연민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냉정히 돌아본다면 그 분노의 화살은 다른 곳이 아닌 본인에게로 향한다는 걸 알게 된다. 가족에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맘처럼 잘되지 않는 우리네 모습을 작품은 과하지 않게 담아내고 있다.


부모에게 무신경한 것 같았던 코이치와 시게코의 모습도 나름대로 효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저 조금 더 비중 있고 조금 더 부모에게 잘하던 쇼지와 노리코에게 몰입해 다른 등장인물들을 평가해 그들을 비난하고자 했을 뿐이란 걸 깨닫게 될 뿐이었다.


이는 우리 세대가 유난히 냉정하고 팍팍한 삶을 살기 때문은 아닐 거다. 70년 전에도 그래 왔던 일이고 앞으로도 반복될 일일 뿐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 특징이고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완전히 하나로 엮일 수 없는 하나의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JPEuWGOV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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