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영화 <조제> 줄거리 및 리뷰
많은 사람들의 인생 영화 중 하나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되었다.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 등으로 독립 영화 씬에서 많은 호평을 끌어낸 김종관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원작과 같았던 것과 달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원작과 같았던 조제
작품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인 조제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우연히 목격한 남주인공 영석이 도움을 주며 흘러가게 된다.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밥 한 끼를 얻어먹는 영석. 그 후로도 영석은 자주 그녀에게 도움을 주며 가까워진다.
사회복지 기관에 아는 사람이 있던 수경의 도움을 받아 조제의 집을 수리해주고, 이후 미묘한 삼각관계에 휩싸였던 것 역시 원작과 같았다고 봐야겠다. 그 과정에서 조제와 남주인공의 헤어짐. 그리고 조제를 돌보던 할머니의 죽음. 영화는 아주 유사한 흐름으로 흘러갔다.
사랑이었음에도 사랑임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남주인공과, 그런 사랑을 알고 있음에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던 조제.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애틋했던 건 이렇게 수없이 엇갈리고 다시 가까워지는 과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작과 달랐던 조제
하지만 기본적인 틀은 원작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왔다 해도 분명히 다른 점은 있다. 먼저 원작에 없던 등장인물의 등장이다. 혜선이라는 대학 교수가 큰 비중으로 다뤄지고, 집수리를 돕는 사회복지사의 비중도 늘어났다.
혜선의 등장은 조제와 남주인공의 사랑이 삼각관계를 넘어 사각관계 혹은 그 이상이 되게끔 했는데 다소 뜬금없는 등장인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혜선과 영석의 관계를 꼬아놨는지, 왜 그토록 허무하게 두 사람 사이가 정해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반면 사회복지사의 비중이 늘어난 부분은 충분히 해석 가능한 부분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회복지사는 손 한쪽이 없는 장애인이다. 본인 역시 장애인임에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조제 역시 보통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던진다.
물론 작위적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마치 이 부분을 보며 이 등식을 떠올리라고 강요받는 듯했는데 그래서인지 조제가 장애를 극복하려는 장면 등에서 느껴져야 할 감동 같은 것들이 많이 희석되어 버리고 말았다.
또한 리메이크작은 원작처럼 극적인 장면의 연출이 없다. 이미 주도적으로 전동 휠체어를 타는 조제, 그리고 남주인공의 호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보통의 로맨스 장르처럼 흘러가게 될 뿐.
물론 이 부분은 원작이 꽤 과감한 연출을 택했던 탓이라고도 볼 수 있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칼을 휘둘러 대는 장면이나 조금 더 구체적이었던 두 배우의 노출씬 등 훨씬 높은 수위에서 원작은 제작되었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 로맨스 감성과는 많이 동떨어진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아름다운 장면으로 덧칠해 두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 원작보다 좀 더 조심스러운, 원작보다 더 풋풋한 연출을 통해 마치 첫사랑을 알아보는 것 같은 영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조제>의 좋았던 점
영화는 엄청난 영상미를 선사하고 있다. 이전 작품들 역시 뛰어난 영상미로 호평을 받았던 김종관 감독의 작품인 만큼 적절한 미술의 사용과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오래된 조제의 집을 담아내는 감성적인 연출과 뒷문으로 겹쳐 보이던 두 주인공의 모습 등은 원작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원작 이상의 아름다운 장면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우리나라 감성으로 재해석되었지만 두근거리는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는 점도 좋았던 점. 일본의 멜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농밀한 러브씬이 아니라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들의 감정을 표현해낸 듯했다.
두 주연배우의 호연도 주목해야 할 부분. 원작과 달리 두 사람의 나이차는 제법 난다. (이케와키 치즈루 - 츠마부키 사토시의 나이차가 한 살인데 반해, 한지민 - 남주혁의 나이차는 12살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무색한 로맨스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사랑이 시작되는 부분에서는 조제가 확실히 어른의 느낌이 나는 부분이 있지만,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서로를 원하고 사랑이 시작된 시점에서부터는 이 연인의 나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넘치는 비주얼뿐 아니라 뛰어났던 연인 연기를 통해 두 사람은 원작에 뒤지지 않는 씬들을 연출해 냈다.
<조제>의 아쉬웠던 점
다만 아쉬운 요소 역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만남과 시작, 헤어짐과 재회. 원작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운명적으로 연결된다. 우연에 기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개연성 있고 짜임새 있게 하나의 메시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리메이크작은 이 부분에서 빈틈이 생겨버린다. 두 사람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 문제인데, 마치 조제는 남주인공의 도움을 기다렸던 것처럼 보인다. 원작에서의 만남이 강아지 산책에서 비롯된 우연과 운명의 만남이었다면, 리메이크는 작위적인 만남으로 시작되었던 것.
원작에서 중요했던 호랑이와 물고기의 이야기도 빠져 있었다. 제목에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사라져서 인지 두 이야기는 아주 약한 연결고리로만 겨우 붙어 있었다. 의도를 숨겨 놓은 은유라고도 볼 수 있지만 각각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소재들이 다소 무의미하게 소비된 느낌이 있다.
또한 너무 아름답게만 담아둔 영상도 아쉬웠다. 원작이 아름다울 수 있던 건 두 사람이 지나온 과정 덕이었다. 친해지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호랑이를 함께 보며, 물고기를 보러 떠나는 과정 속에서 이들은 가까워지고 또 멀어진다.
그 덕분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엔딩 씬에서 많은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공감을 하며 슬퍼할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두 사람의 관계를 너무나 아름답게만 그리려고 해 놓았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들 개개인의 매력은 반감되고 이야기의 개연성에서도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별이 아름다운 이유
별이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건 그만큼 짙게 깔린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원작의 두 사람의 아름다울 수 있던 건, 그들의 사랑이 가는 과정에 그만큼 험난한 사건들이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슬픔이 극도로 절제된 리메이크작의 사랑은 마치 대낮에 떠있는 별 같았다. 분명 아름답고 절절한 사랑일 텐데 주변의 빛 때문에, 혹은 이들의 사랑의 과정이 너무나 작위적이고 순탄했기에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이 돋보일 수 있을 만큼의 약간의 어둠을 남겨두었다면 훨씬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할 만한 인물이 한 명 더 추가된 상황임에도 두 사람의 사랑은 아주 매끄럽게 이어졌다. 원작에서 두 사람을 방해하던 동급생(리메이크작에서는 후배)의 활약도 극히 미미해 두 사람이 이어진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원작과 다른 분위기를 내고 싶었던 건 이해하지만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이야기 역시 억지스러운 결합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한국식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리메이크작 역시 만족할 만한 대안이지만, 원작을 좋아했던 사람이나 개연성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글쎄.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영화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DF03joF-p0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