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예술가의 고백 Vol.2
그림과의 작별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림과 나의 관계를 비유하자면 나만 손을 놓으면 끝나버리는 연인 관계 같았다.
그런데 내가 일방적으로 너무 좋아하다 보니 놓았다가도 다시 붙잡고 놓았다가도 다시 붙잡는
지지부진한 과정이 지금껏 이어져왔던 것이다.
그림이 참 얄미운 것이, 다시 붙잡았을 때마다 참 큰 위로를 주고 무너진 나를 일으켜준다.
놓았던 이유가 잊힐 만큼 더 재밌어지고, 심지어는 쉬었다가 다시 그리면 그림이 는 게 느껴질 때도 있어
또 희망고문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는 될 것 같아, 이번엔 뭔가 다를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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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시간을 그림을 그리는 데 썼다.
늘 그림에 대해 고민하고 그림 때문에 울고 웃고 아프기까지 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직업란, 특기란, 취미란 어디에도 '그림'을 쓸 수 없는
웃픈 상황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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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았는데 경단녀가 되어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
나이는 나이대로 먹었는데 그 사이에 한 일은 혼자서 그림 그리던 것뿐이라 새롭게 갈 수 있는 곳도 없다.
혼자서 벌리는 일은 말아먹은 게 너무 많아서 이제 시도해 볼 힘도 용기도 나지 않는다. (돈도 없다.)
열정은 솔직히 처음보다 식었고, 그림에 대한 꿈도 이제는 거의 없다시피 한데
그림으로밖에 탈출할 수 없는 방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이러나저러나 남은 건 그림도구들뿐이라 큰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공모전, 이모티콘 제작, 패턴 디자인, 굿즈 판매 등에 손을 댔다.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조금 걸고 인생 한 방을 노렸다.
엉망이 된 생활리듬과 끊을 듯 끊을 듯 끊지 못하는 그림,
시커메지는 눈 밑만큼 어두컴컴해지는 마음.
'꿈', '그림'이란 단어가 선하고(?) 괜찮게 보이도록 할 뿐
게임중독이나 도박중독과 다를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