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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라 Jan 04. 2021

도장깨기의 추억

실패한 예술가의 고백 Vol.3






그림 그리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은 서른 즈음에 한 것 같은데,

그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낌새(?)는  있었다. 

얌전히 직장생활 하지 않을 것 같은 낌새.

틈날 때마다 그림책이나 작가들의 활동을 즐겨 구경했고, 동경했다.

독립서점, 독립출판, SNS 붐이 서서히 일어날 때라

'언젠가 나도 한 번?'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

그림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데, 입시미술에 대한 겁(비용 걱정까지)을 미리 먹고

내가 무슨 화가냐며 (그때는 미대를 가면 화가 아니면 미술 선생님밖에 길이 없는 줄 알았다)

문과와 예체능 사이 같아 보이는 '광고'로 노선을 정해 직진했다.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디자이너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보다 보니

잊고 있었던 비주얼적인 작업에 대한 갈망이 생겼던 것 같다.

틈틈이 디자인 툴도 배우러 다니고, 화실도 다니고, 취미 드로잉 모임도 결성해 다니다가

이렇게 좋아하는 일인데, 좋아서 자꾸 하다 보면 실력도 쑥쑥 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벌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과 결정이 어리석었다고 말한다면 좀 섭섭하다.

그땐 정말 자신이 있었고,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

글을 쓰고 싶었던 것보다 더 오래된 마음이라 이게 찐이고, 이건 변치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

회사에 얽매인 동안 하고 싶은 일들 목록을 작성했다.

- 드로잉으로 굿즈 만들어 팔기

- 플리마켓 나가보기

- 서일페 나가보기

- 독립출판 해보기

-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삽화 작업 해보기

- 내 그림으로 전시회 열기

- 내가 쓴 글과 그린 그림으로 그림책 작가 되기

온갖 그림과 연관된 일들이 업무 노트 한편에 적혀 있었다.

/

1. 드로잉으로 굿즈 만들어 팔기

처음으로 만들어서 독립서점에 입고하고 판매해보았던 '2017년 7, 8월 낱장 달력(가운데 튜브 탄 남자 그림)'

※ 사진은 제주 종달리에 위치한 '소심한 책방'에서 찍어 보내주셨던 사진 중 크롭하여.

원래는 책방 성향과 맞지 않아 입고 문의는 거절되었지만, 예전에 여행 갔다가 들렸을 때 좋았던 기억이 있어 

따로 한 장만 편지와 함께 보냈더랬다. 추후 '나다라 잡화집'을 독립출판했을 때는 입고를 받아주셨는데, 

앞서 보냈던 편지가 도움이 되었으리라 본다.


2. 독립출판 해보기(텀블벅, 굿즈 제작, 독립서점 입고)

그동안 그렸던 그림들을 모아 '나다라 잡화집'을 만들었다. 원래는 그림이 쌓일 때마다 2권, 3권 이어서 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1권을 내고난 뒤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꾸라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금은 그때의 SNS 계정도 없고, 책방들과의 컨넥션도 끊겨서 팔리지 않은 책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조차도 얼마 전 김해의 페브레로 책방이 문을 닫으며 남은 책을 보내주셔서 아주 오랜만에 이 책을 보았다.

벌써 4년 전... 그때 제 책과 엽서 등 굿즈들을 사주시고 제 활동을 기대하고 응원해주셨던 분들, 이 글을 보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보신다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했다는 인사도요!






3. 플리마켓(소소시장), 서일페 참여하기

소소시장 말고도 사설(?) 플리마켓이나 헬로인디북스 앞에서도 매대 깔고 판매도 해보았다. 

모든 게 신기하고 그저 참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상태가 되어갔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갖고 있는 재고 왕창 챙겨서 낑낑대며 끌고 가고, 친구 도움이 필수였는데, 나중에는 혼자 작은 캐리어와 빅백 하나에 보부상처럼 챙겨서 다녔다. 짐 펼치고 챙기기도 점점 빨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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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로잉으로 굿즈 만들어 팔기

- 플리마켓 나가보기

- 서일페 나가보기

- 독립출판 해보기

-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삽화 작업 해보기

- 내 그림으로 전시회 열기

- 내가 쓴 글과 그린 그림으로 그림책 작가 되기


위 업무 노트 한편에 써놨던 버킷리스트 중 4개가 지워졌다.

서일페까지 끝내고 나니 인스타 팔로워 수도 급격히 (물론 몇 백 명대로 그리 큰 숫자는 아닐 수 있으나 

내 기준에선 가장 높은 숫자를 찍었더랬다) 늘고, 이 기세를 몰아 쭉쭉 작업을 이어가면 될 줄 알았다. 

나머지 리스트들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서일페를 끝낸 후부터 멘탈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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