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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라 Jan 05. 2021

좋아하는 일을 포기한 이유

실패한 예술가의 고백 Vol.7







이 꿈을 이제 진짜 접어야겠다 생각하게 만든 계기는

최근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들을 보고 국내 모션그래픽 회사와 작은 해외 매거진 쪽에서

연락을 해온 것이다. 나로서는 이것저것 따져볼 것도 없이 잡아야 할 기회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다른 생각이 덥썩 덥썩 잘도 삼켜버렸다.


'내가 이걸 어떻게 해, 나 그 정도로 실력있지 않아,

일 맡기고 나면 다들 '속았다' 싶어질거야.

나조차 외면하려 애썼던 나의 텅 빈 실력이 탄로나게 될거야.'


그 공포는 실로 엄청나서 '당신의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요' 정도의 (그것도 DM으로) 단계에서도

머릿속을 백지로 만들었다. 해외 매거진 쪽에서는 나중에 어떤 주제에 대해 그림을 의뢰하고 싶었다는

얘기까지 했는데, 러프한 아이디어라도 스치기는 커녕 '모르겠으면 찾아보면 된다' 정도의

생각도 들지 않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신난다'라던가 '설렌다' 같은 감정의 기미도 전혀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림이 너무 좋고, 그림을 그리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고, 하루 종일 그림 생각만 하며 보내는 날도 많은,

어찌보면 자기계발이나 심리 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말하는 '하고 싶은 일'에 모든 조건이 충족하는데, 

네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을 주겠다는 곳이 나타났는데

나는 메두사를 본 것처럼 굳어버렸다.



/



사실 이번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초반에도

이런 저런 (내 기준에서 놀라운) 제안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반응은 위와 같았는데, 

그때의 거절은 정말 물리적으로 나의 연습생(?)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스스로 납득이 가능했다. 

아직까지는 자신감이 부족한 게 당연하다고. 아직은 안될 수 있지, 모를 수 있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일부러 내 그림스타일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좁고 명확히 만들어 버리기까지 한 상황에서도 나의 두려움은 여전했다.

극복할 수 없는 무대공포증을 지닌 가수 지망생이 이런 기분일까.


이렇게 해봐도 안되고, 저렇게 해봐도 안되네, 이제는 놓아도 되겠다, 놓아주자,

놓는다? 놓는다?... 마치 3, 2, 1, 영, 땡 이후로도 계속해서 끝나지 않는 카운트다운처럼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었다. 그러는 사이 '극복해야 해' 하던 마음도 점점 

'아 이건 안되는 거구나'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



그 일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더이상 탐이 나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혹시나, 역시나, 혹시나 하며 걸었다.

막다른 길이라도 보여줬으면 빨리 체념하고 돌아섰을 텐데,

꿈길은 그런 자비도 없다.

단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도착이라고 한들, 이제는 뒤돌아 나오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 길은 내 길이 아니었다고 평생 믿으며 살아가련다.



/



언제는 아니었냐마는, 이제 진짜 다시 '구직자'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도 좋지만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도 행복해지는 방법 중 하나란다.

전자만 추구하며 살아봤으나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지금껏 하지 않은 일을 해야하지 않겠나. 


2021년, 두려우면서도 기대된다.

무슨 일이 주어진대도 감사히 받고 열심히 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에게 필요한 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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